"아주 어릴 때부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아이에게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말만으로 만족하는 습관을 들여 주고,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일일이 따져서 자신이 마치 선생과 똑같이 지혜로운 인간인 양 착각하게 하여 논쟁을 좋아하는 반항아가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에밀』의 한 구절이 현재 우리 논술 교육의 현장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논술 능력은 교육과정에서 목표로 하는 각 교과의 사고 발달 단계와 각 교과 지식의 심화 단계, 행동 발달 단계 등에 부합하는 단계적인 과정을 체계적으로 통과해야만 점진적으로 발달한다.
논술 능력의 발달이란 기초적 사고 기능만을 수행하던 학습자가 발달적 사고 기능의 수행 과정을 넘어 복합적 사고 기능과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즉, 미숙한 필자가 성숙한 필자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논술 능력의 발달은 곧 사고 능력, 의사소통 능력(글쓰기 능력)의 발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고 변화(인지 발달)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논술 능력 발달에도 기초가 된다. 이러한 인지 발달 요인으로는 먼저 생물학적 성숙과 실험 관찰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합 조직하여 환경에 적응 하려는 사고, 즉, 활동이 있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통한 경험과 지식을 축척해 가는 과정으로 교육이 있고, 계속적이고 균형 있는 사고를 하기 위한 평형화(equilibration)가 있다. 즉, 인지 발달 요인들에 대한 반응과 조정이 정교해 지는 과정이 사고 발달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의사소통 능력으로서 언어 능력, 곧, 글쓰기 능력은 구체적인 대상에서 추상적인 대상으로 그 표현 영역을 확장하면서 발달한다. 따라서 논술을 고등사고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지 발달 과정과 글쓰기 능력의 발달 과정은 논술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 인지 발달과 사고 변화
Piaget에 의하면 인간은 출생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네 단계의 인지 발달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각 단계는 사고의 주체가 경험하는 세계가 확장되고, 좀 더 복잡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인지 능력을 발생시킨다. 이 단계들은 순서가 있으며, 개인마다 다른 속도로 발달 단계를 통과한다. 그러나 각 과정의 단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감각과 운동 기술을 사용하여 세계를 탐색하는 단계에서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 사용과 자아 중심적인 사고를 갖는 단계로 발달하고, 다음 단계인 구체물을 동반하는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단계로 발달한다. 그리고 융통성 있고, 효율적인 사고, 복잡한 추론, 문제 해결의 가설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일이 가능한 단계로 발달한다.
Bruner는 인지 발달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는 지식구조로, 시소 놀이, 저울대 사용 등과 같이 행동을 통해 환경을 조작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의 단계, 과학적 개념을 그림, 도표, 사진 등으로 표현하거나 지식 내용에서 세부적인 정보나 자료를 생략하고, 핵심적인 것, 즉, 시공간적 관계와 질적 특성만을 통해 표현하는 단계, 명제나 수학 공식 등 상징적인 언어나 논리적인 명제를 이용하여 지식을 추상적으로 표상하는 단계로 발달한다고 지식구조를 위계화 하였다. 이는 단언적 지식체계에서 절차적 지식체계로의 발달을 의미한다.
한편 사고력 이론에서는 사고 과정을 관찰, 추론 미시적 사고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초적 사고 기능 단계, 개념을 형성, 설명, 예측, 가설 설정이 가능한 발달적 사고 기능 단계,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 의사 결정,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의 수행이 가능한 복합적 사고 전략의 단계로 사고 과정을 위계화 하고 있다.
2. 글쓰기 능력의 발달
사고 변화와 인지 발달은 그대로 언어적 표현으로 연결된다. 그 결과 문자를 통한 언어 행위인 글쓰기 능력은 사고 발달의 단계에 따라 문자 이전 단계, 준음성적 단계, 음성적 단계, 전이적 단계, 정확한 단계, 형태론과 구문론 단계로 발달한다.
문자이전의 단계는 의사소통 이전의 단계로, 이때 아동들은 쓰기의 목적은 인식하지만 단어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여, 단어를 음소로 분리할 수 없다. 이 시기의 아동들은 낙서하면서 갈겨쓰기, 글자 같은 형식, 단어를 나타내는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준음성적 단계에서는 단어에서 문자가 제시하는 소리를 이해한다. 문자와 음성간의 결합을 이해하기 시작하여 철자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완전한 일대일 대응이 안 되기 때문에, 중요한 음성을 빼놓는다. 음성적 단계에서는 단어의 모든 표면적 특징을 제시할 수 있다. 음성적 철자 체계를 이해하고, 문자와 단어가 음성을 나타낸다는 인식을 가진다. 이 단계에서는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경향이 있다. 전이적 단계에서는 단어가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발음되는가를 인식하고 쓸 수 있게 된다. 또 단어들을 상호 비교하면서 형태소에 관한 지식을 인식하고, 새로운 단어에 적용 할 수 있다. 정확한 단계에서는 철자를 정확하게 쓰기 시작하며, 단어 의미에 대한 지식이 점차 증가한다. 형태론과 구문론 단계인 12세 쯤에는 철자에서 의미와 문법적 구조가 통제되는 방식을 점차 이해한다. 단어의 의미(혹은 형태소)와 문장 구조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지고, 기초적인 음성학적 규칙들을 이해한다.
좀 더 체계적으로 쓰기 능력의 발달 과정을 위계화 하면, 단순 연상적 쓰기 단계, 언어 수행적 쓰기 단계, 의사소통적 쓰기 단계, 통합적 쓰기 단계, 인식적 쓰기 단계로 그 발달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단순 연상적 쓰기 단계는 필자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문자로 옮겨 놓는 글쓰기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글쓰기는 개념 중심적 정보처리보다는 자료 중심적 처리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 단계의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쓸거리를 찾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찾아낼 수 없기 때문에 글쓰기를 힘들어 한다.
언어 수행적 쓰기 단계는 단순 연상적 쓰기 기능을 가진 학생이 국어의 어법, 문체, 규칙, 관습에 익숙해짐으로써 도달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국어에 관한 지식이 있다고 해도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어 사용법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그 지식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적 쓰기 단계는 읽는 사람을 고려하여 글을 쓸 수 있는 단계이다. 언어 수행적 쓰기 단계를 통과한 학생이 예상 독자에게 의도적인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필요한 장치를 마련하고, 여러 가지 글쓰는 기능들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단계이다. 의사소통적 쓰기는 상대방에게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쓰기 즉, 정보를 전달하는 쓰기이므로 정서 표현과는 다르다. 예상 독자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는 독자를 대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통합적 쓰기 단계는 학생이 쓰기 과정에서 예상하는 독자의 입장을 고려함과 동시에 필자 자신이 독자가 되어 독자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비로소 자신이 생산한 텍스트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내릴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필자는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독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사고를 확신시키기 위한 논증을 전개해 나간다. 즉, 잘 구조화된 이야기도 쓸 수 있고, 논리적 일관성을 갖춘 논증문도 쓸 수 있다.
인식적 쓰기 단계는 재생적 사고 역량이 충분히 개발된 다음에 도달하는 단계이다. 정보의 저장, 정보의 인출, 정보처리 계획 및 조정, 재고 및 교정 등의 복잡한 사고 과정들을 요구하는 단계이다. 다시 말해 인식적 쓰기 단계는 발달적 측면에서 여러 가지 하위 기능들을 완전하게 학습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쓰기를 통해 사고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확산된 사고를 할 수 있다. 또한 대단히 복잡한 지적 사고 작용들을 심층적 조작과 가치 판단, 명확한 의사결정, 종합 능력 등을 동원하여 창조적인 사고로 생산해 낸다. 그러므로 비판적 사고, 창의력, 문제 해결력 등을 요구하는 논술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단계는 인식적 쓰기 단계이다.
3. 논술 능력의 발달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이유는 첫째, 논술 과정 즉,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분석력, 비판력, 창의력, 종합력 등의 사고력을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논술 과정을 통해 학습 능력을 신장시키고, 지식정보화사회에 필요한 지적인 의사소통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이다. 셋째, 논술 과정을 통해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논술은 복합적 사고 단계와 인식적 쓰기 단계에 학습자가 도달했을 때 충실히 수행될 수 있다.
그래서 사고력 발달과 지적 능력의 발달, 의사소통 능력의 발달 등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만든 교육과정의 단계적인 학습이 충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논술 능력에 기초가 되는 하위 기능에서부터 종합적인 단계까지를 체계적으로 발달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교과 지식의 심화, 복합적 사고력과 사회적 가치에 대한 분별력 등이 최소한으로 갖추어지는 고등학교 2학년 정도가 되어야 고등정신활동으로서 논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교육과정 내에서 각각의 단계를 통과하는 속도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각 교과의 사고 발달 과정과 교과 지식의 심화 과정 등을 뛰어 넘는 그러한 논술 능력의 비약적 발달은 기대하기 어렵다.
장건태 에플논구술연구소 책임연구원, 맥 입시전략연구소 원장, 프레시안 논술칼럼니스트, 영남사이버대학교 논술지도학과 강사, 경원대학교 사회교육원 논술지도사 강사, 유니텔 교원 직무연수 논술 과정 강사, 교육사랑 원격연수원 논술 과정 강사, 한국학원총연합회 논술강사 연수 연사 <저서>논술지도론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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