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대통합에 모여드는 정치인들은 한미 FTA 체결 반대와 저지를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 이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기본자세다. 혹여 기존의 찬성론자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 문제의 실상이 드러난 이상 물건을 풀어보니 아, 이건 아니다, 라는 견해를 밝혀야 한다. 시간을 더 갖고 살펴보면서 최대한 논의를 집약해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리로 사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국민들의 삶을 감당하려는 정치 지도자의 출발점이다. 우리의 생존환경 전체를 바꿀 한미 FTA는 일단 작동하면, 어떻게 손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거대한 바퀴다. 그 바퀴에 치어 존재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를 이들은 세상을 향해 절규하고 있으나, 이 비극을 저지할 방법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은 오로지 밀어붙이는 것으로 일관하면서 이에 대한 저항을 과거의 총동원 체제 식으로 "토벌"하려 들고 있다. 지난 20년 간 어렵게 이루어놓은 민주주의의 소중한 성과를 파괴하는 독선적인 권력으로 역사에 남으려 드는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 민주주의 파괴하고 있다
한미 FTA에 반기를 든 노동운동은 "정치파업"이라는 이름을 붙여 불법행위라는 덫을 놓고 있는 중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당장에 피해를 입을 피해 당사자의 당연한 권리 주장이 이렇게 매도되고 있어도 대부분의 언론과 정치권은 꿈쩍하지 않는다.
노동환경이나 임금 문제가 아닌 것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불법이자 정치파업이라고 한다면, 한미 FTA가 노동환경이나 임금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권력은 과연 적법한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일까? 통상관련 협정이라고 하면서 노동자의 권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인가? 일부 피해산업분야가 정부에 의해서도 분명하게 지목되고 있으며, 그렇게 되면 그 분야의 노동자들의 생존은 아무런 위험에도 처하지 않게 된다는 뜻인가? 피해산업분야가 아닌 분야의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문제가 있다고 반박하려 한다면, 그것은 피해유무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분석과 진단이 모두 절대적으로 옳다는 말인가?
현 정권이 이 협정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어떤 자세를 보였는지 되풀이 말하지 않겠다. 한미 FTA 추진을 위해 스크린 쿼터와 쇠고기 시장 등을 먼저 내주기로 한 이른바 4대 선결과제에 대한 부정과 은폐에 더불어, 재협상 절대 없다고 주장하면서 슬그머니 미국의 요구와 일정에 그대로 끌려가고 있는 참담함에 대해서도 더는 토를 달지 않겠다. 여기에 대해 일체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도 신랄하게 지적하지 않겠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적극 협력하는 권력
문제는 이 정권이 국민들의 삶에 미칠 막대한 피해를 축소 선전해가면서 미국의 정치경제적 요구에 스스로 적극 협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일부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전체 국민들의 이익 증진인 것처럼 오도하면서 이 나라의 장래를 더욱 깊은 갈등과 대결, 그리고 절망의 지점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단히 무책임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도 엄청난 역사적 선택을 한 듯이 선전하고 있다. 명백한 기만이다.
이와 관련한 토론을 하겠다고 말해놓고 아직도 지키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미 FTA의 피해에 대해 비판하는 측을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한 대통령은 자신의 거짓말이 드러날까 두려워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을 기정사실화해놓고,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토론은 이미 토론이 아니라 홍보와 정치선전장이 될 뿐이다. 민주주의는 이로써 실종된다.
한미 FTA의 가장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이 협정이 추진되어 오는 과정에서 이미 드러나고 밝혀지고 있듯이, 이 나라 민중의 삶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오는 문제가 있어도 이를 제대로 제기하지 못하며 그 제기 행위 자체가 정치와 시장의 권력에 의해 불법화되고 마는 것에 있다. 이익은 고스란히 자본이 가져가고, 피해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충하는 식으로 책임의 전가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 나라 경제와 복지의 주체적 방어 장치는 해체되어가도 이를 새롭게 복구할 방법은 보이지 않게 된다. 정치는 이러한 현실을 추인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민들의 혈세로 구멍을 막는 방법에 대한 정파적 대결에 지나지 않게 된다.
식민지의 제도화, 손해의 책임 전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사이에 FTAA(Free Trade Agreement for Americas)가 추진되어갈 때 라틴 아메리카의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은 이를 가리켜 "미국에 의한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화가 제도적으로 고착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러한 비판으로 FTAA는 그 실체적인 정체가 드러나면서 라틴 아메리카 자신의 결속을 기반으로 하고 나서야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체결을 하겠다는 가닥을 잡아나갈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의 지역 경제적 결속에 바탕을 둔 조건에서 미국의 요구는 일방적으로 관철되어가기 어렵고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적 체결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이와는 달리 우리의 현실은 그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상대의 요구와 일정에 맞춘 방식의 협정은 이미 협정이 아니라 받아쓰기가 되고 만다. 상대가 이 나라 국민들의 삶을 배려하면서 협정에 나서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복잡한 전문적 용어로 채워놓은 한미 FTA의 내용은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 된다.
미국 시장에 대한 선점과 자유로운 출입에 따라 교역의 증가로 경제적 이익이 상승한다는 논리는 미국의 자본이 이 나라의 시장을 독점적으로 장악하게 되는 현실에는 눈을 감는 주장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고 나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자체역량이 파괴되어가는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미국 자본의 독점적 위치가 굳어지게 될 때 이 나라의 경제미래와 복지정책 그리고 국가적 자율성의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거 여권에 속했던 정치권은 대통합 논란에 휩싸이면서도 정작 중대한 정치적 비판과 대안의 제시는 하지 않고 있다. 내용은 없는 사람만 모인 껍데기만의 정치행위에 저토록 바쁜 것이다. 국민들의 절박한 삶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에만 매달리는 전혀 감동 없는 정치이다. 한미 FTA에 대한 반대와 찬성론자들이 한데 뒤섞여 이 문제는 그냥 없던 것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국민들의 절박한 요구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한미 FTA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를 생생하게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지 않다. 진보세력의 주장은 땅 속에 그대로 묻히고 있다. 1997년 IMF 관리체제의 문제를 제기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의 견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나라 금융시장의 지배구조가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되리라는 진단은 틀리지 않았고, 그로써 자본시장의 팽창과정은 부동산 투기와 제조업의 위축,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로 나타났다.
한미 FTA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대미종속과 농업을 비롯한 기반적 의의를 갖는 분야의 파멸,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로 귀결되어갈 것에 대한 논의는 이제 풍부하다. 이 비판과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자신의 비극을 스스로 예비하는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도약의 시대에 추락의 조건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잘못된 권력의 선택을 저지할 힘이 없는 사회는 "죽은 영혼의 사회"이다. "죽은 영혼의 사회"에서 잡은 권력은 권력자의 숨겨진 탐욕을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불과해진다. 이제 국민들은 더는 이러한 속임수에 이용당할 수 없다. 국민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에 부응하는 세력의 새로운 등장이 그래서 더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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