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전쟁 나간 인민군 아들의 소박한 사모곡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전쟁 나간 인민군 아들의 소박한 사모곡

[배달 안 된 '노획 편지']<8> 전쟁도 못 건드린 자식의 부모 생각

전쟁이 남기는 건 핏물 밴 총칼만이 아니다. 전쟁은 숱한 사연도 남긴다. 살아남은 자들이 가슴에 묻어놓은 사연도 있지만, 글로 남겨진 사연도 있다. 전쟁이 쓴 편지, 전쟁이 남긴 편지도 그런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1950년 한국전 당시 미군은 북한 점령지에서 북한의 공문서를 포함해 적지 않은 양의 '북의 기록'을 노획했다. 전리품이었다. 이 노획 문서들은 도쿄의 연합군 극동군사령부를 거쳐 미 워싱턴의 연방기록물 보관소로 이관되었다.

이 노획 문서 중에는 평양중앙우체국에서 노획한 개인 편지 1200여 통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동생이 중국 길림성(지린성) 집의 형에게 쓴 편지, 평남 안주 고향집의 아내가 '해방구'인 서울에 내려가 있는 남편에게 쓴 편지, 인민군 나간 아버지가 평남 용강 고향의 아들에게 '이제는 네가 오마니와 토론해 집안일을 다 해 나아가라'고 부탁한 편지도 있다. 고향을 떠나 자강도 만포의 직장에 가 있는 남편은 황해도 서흥의 고향집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몸 풀 날이 다 되었는데 안녕하신지'를 묻는다. 편지 대부분이 전쟁 직후인 10월에 쓰인 것들이다.

<프레시안>은 10월부터 기획 특집으로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에 보관되어 있는 이 노획 편지 가운데 20여 통을 골라 10회로 나누어 소개하고, 전체 노획 편지 616통의 주소록도 새로 공개한다. 편지가 쓰인지 62년이 지났고, 미 NARA 서고에서 일반에 공개된 지 이미 35년이 흘렀다. 그 모진 세월을 용케 견뎌내고 살아남아 한 번 더 '주인'을 찾아 나선 '잊혔던 편지들'이다.

필자 이흥환은 미 워싱턴의 KISON 편집위원으로, NARA의 노획 편지들을 모아 지난 4월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도서출판 삼인)라는 제목의 책을 엮었고, 책에 소개되지 않았던 편지들을 <프레시안>의 이 특집을 위해 다시 한번 가려 뽑고 주소록을 만들었다. 모두 616통이다.(☞관련 기사 : "미군 노획 인민군 편지, 62년만에 주인을 찾습니다")

*

전쟁통에 객짓밥 먹고 있는 자식들이 쓴 두 통의 편지이다. 배운 자식이든 못 배운 자식이든 부모 생각하는 마음들이 애틋하다. 첫 번째 편지는 평남 순천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아들이 고향 평양시의 어머니한테 보낸 것이다. 1950년 10월 3일에 썼다. 글 다루는 게 서툴고 철자법은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외려 흐트러진 철자와 투박한 글이 '어머니 생각'의 깊이를 더하면 더했지, 글 솜씨가 아무런들, 자식의 마음 길은 가로막지 못한다.

어머님 전 상소(상서)

▲ "어머님 전 상소" ⓒ국립중앙도서관
무정한 세월은 빠루기도(빠르기도) 하다. 벌서(벌써) 내가 평양에 같은 제가(갔던 지가) 1개월이 대여서(되어서) 그간 어머님이나 동생들이나 덕윤이나 몸 건강과 학교에 매일 출근하는지요. 순천에 있는 식구는 다 무사함니다. 누이님은 속골노(속골로) 몸풀노(몸 풀러, 아이를 나으러) 갔슴니다. 나는 공장에 아직가지도(아직까지도) 근무하고 있습니다.

나는 9월29일에 인민군대에 오라고 하여던만(하였으나) 우리 공장에(공장의) 지배인이 군사동원부에 가서 면대를 하여습니다. 어머님 그리 알고 안심하시요. 이전은(이제는) 아침과 저녁대에는(때에는) 바람이 부러(불어) 나나리(나날이) 추어오니(추워오니) 어머님과 동생들에 생각은 자주 나고, 어머님 평양에서 생활하기가 다 골난하어니(곤란하오니) 걱정 말고 내가 있는 날까지는 순천에로 다 모여 생활과 사랑쏘게(사랑 속에) 지내갑시다.

형님은 조국과 통일을 위하여 인민군대에 가수니가(갔으니까) 멀지 않은 날에 통일를(통일을) 가지고 올 터이니 걱정 말고 이 편지를 바다보고(받아보고) 속키(속히) 해답해 주세요. 순천에 올 날과 가사 헹펭을(형편을) 써서 보내주면 올 날과 비교하여서 내가 갈 씨가(갈 새가) 있으면 올 날 전으로 가고, 가지 못할 경우에는 어머님 동생들을 대불고(데리고) 오시요. 그러면 덕윤이는 어치하겟는지(어찌하겠는지) 편지가 기러도(길어도) 다 써서 보내주세요.

그새 형님한테 면노를(면회를) 같든지요(갔던지요). 내가 편지를 보낸거슨(보낸 것은) 도라왔소(돌아왔오). 또 편지를 형님한테 보내쏘(보냈오). 순천도 비행기는 나나리(나날이) 옵니다. 덕윤이야 학교에 가도 공숨를(공습을) 주이하라(주의하라). 이거수로(이것으로) 그만 끝.

1950년 10월 3일 김덕칠 서

(보내는 이: 평남 순천군 순천면 관하리 제승공장 김덕칠 / 받는 이: 평양특별시 감흥4리 7구3반 김칠성 댁 김덕윤)

형은 이미 인민군대에 나갔고, 평양 집에는 덕윤이 등 동생들이 어머니 슬하에 있다. 둘째 아들인 듯싶은 덕칠 자신도 인민군에 불려 갈 뻔했으나 공장 지배인 덕에 징집은 면했다.

평양 감흥리 생활이 힘들 테니 어머니더러는 순천으로 다 올라와 합쳐서 '사랑 속에서' 살잔다. '걱정 말고 내가 있는 날까지는'- 이 한마디를 들었더라면 어머니는 덕칠을 얼마나 듬직해했을까. 어머니 살뜰하게 살피는 자식이 동생에겐들 못할까. 편지 끄트머리에서 덕칠은 동생에게도 꼭 하고 싶은 말, 안 해서는 안 될 말 한마디를 덧붙인다. '덕윤이야, 학교에 가도 공습에 주의해라'.

**

평남 대동군의 '부친님 전'에 편지를 올린 이는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양 내무성에서 일하는 자식이다. 직장이 있는 평양이 함락되기 나흘 전인 1950년 10월 15일에 썼다. 전선이 다가오고 있다. 부모님 계시는 집안 걱정이 태산이다. 집에는 아내도 있다.

부친님 前(전)께 올립니다.

▲ "부친님 前께 올립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부친님과 모친님은 어린 동생 다리고(데리고) 나의 처(妻)와 함께 몸 평안히 계시요. 말씀드릴 것은 나의 사진과 xx(정수?)의 사진을 사진판에서 걷어서 깊히 보관하시요. 그리고 그 사진판에 닛치 안언 것도(넣지 않은 것도) 함께 깊히 잘 보관하시요. 정수가 두고간 서적도 함께 땅속에 잘 보관하시요. 그리고 방공호를 잘 파서 적에 공습을 방지하시요. 벼갈(볏가리)을 빨리 해서 하로(하루) 속히 사람을 싸서(사서) 우차로 실어다 탈곡해서 잘 보관하여 식량을 보존하시요.

나는 열락중대에(연락중대에) 편입될 것 갓음니다(같습니다). 그리고 본부를 따라 다닐 것 갓음니다. 나의 처를 부모님이 다리고(데리고) 어데(어디) 내보내지 말게 하고 집에서 함께 일하게 하시요. 자리를 잡고 서신을 계속 하겠음니다. 회답은 하려x 하시요.(잘 게시요.)

인수 씀 10월 15일

정수, 병수 소식이 있으면 알리시요. 수일(수일) 완전히 배치받을 떠이니(터이니) 곳(곧) 편지하겠음니다. 그때에 알리시요.

(보내는 이 : 평남도 내무성에서 장인수 / 받는 이: 평남 대동군 양화면 신리 255번지 장리구)

아들 장인수가 내무성의 어떤 직책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이 편지 한 장으로는 알 길이 없다. 왜 사진까지 끌어 내려 책하고 같이 땅속에 묻어두라는 지도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제멋대로 해석해 내뱉기보다 속으로 미루어 헤아리는 것도 남의 사신(私信)을 읽는 최소한의 예의라면 예의이다.

이 편지를 부모님이 받아 보았다면, 할 일 많을 뻔했다. 땅 파서 책도 숨겨두어야 하고, 방공호도 파야 하고, 사람 사서 탈곡도 해야 하고. 아들은 제 처 부탁도 했다. 어디 내보내지 말고 집에 함께 데리고 있으라고.

<미군에 노획된 인민군 편지, 62년만에 주인을 찾습니다>


{#8964360435#}
▲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흥환 엮음, 도서출판 삼인 펴냄) ⓒ삼인
한국전쟁 때 미군에 노획된 편지의 주인을 찾습니다.

편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 전역에서 미군에 노획된 것입니다. 미국은 이를 비밀문서로 분류해 놓았다가 1977년에 비밀을 해제하고 일반에 공개했는데요, 국내에는 극히 일부만 소개됐습니다.

미국 워싱턴 인터내셔널 센터(KISON) 선임 편집위원인 이흥환 씨는 2008년 11월 이 편지들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60여 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수취인이나 발신인을 찾아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선별해 지난 4월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도서출판 삼인 펴냄)라는 책을 냈습니다.

'도서출판 삼인' 블로그에 게시된 616통의 편지 주소를 보고 '나의 부모, 나의 형제'라고 생각되면 전화나 메일로 연락바랍니다. (도서출판 삼인 02-322-1845 / http://cafe.naver.com/saminbooks/)

☞ 배달 안 된 '노획 편지' 주소 확인하기
http://saminbooks.blog.me/140170605532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