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7월 05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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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탁했던 쯔봉(바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달 안 된 '노획 편지']<10> '부친님 전 상서' '어머니 전 상서'
아버지한테 쓰는 편지와 어머니한테 쓰는 편지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부친님 전 상서'에는 '어머님 전 상서'에서보다 의젓함이 많이 담겨 있지만, 그런 만큼 의외로 어리광도 꽤 들어 있고 은근한 응석도 배어 있다. 필요한 물건이나 돈 좀 보내달라는 아
이흥환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 엮은이
부상당한 인민군이 '사랑하옵는' 애인에게
[배달 안 된 '노획 편지']<9> 새색시와 애인에게 보낸 두 통의 연서
나는 당신하고 작별한 후 38연선에서 매일 놈들하고 투쟁하다가 드디어 6월25일 아침 5시에 조국과 인민이 부르는 정위에(정의의) 총검을 잡고 조국전쟁이 시작되였읍니다. 나는 전체 인민이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든 도중에 불명에수럽게(불명예스럽게) 병환에 기대여 서울
전쟁 나간 인민군 아들의 소박한 사모곡
[배달 안 된 '노획 편지']<8> 전쟁도 못 건드린 자식의 부모 생각
전쟁통에 객짓밥 먹고 있는 자식들이 쓴 두 통의 편지이다. 배운 자식이든 못 배운 자식이든 부모 생각하는 마음들이 애틋하다. 첫 번째 편지는 평남 순천군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아들이 고향 평양시의 어머니한테 보낸 것이다. 1950년 10월 3일에 썼다. 글 다루는 게 서툴
장모님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인민군 사위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7> "수일 내로 전방엘 나갈 것 같습니다"
부모님 전 상서 부모님 그간 기테후일행만안하시를(기체후일향만강하시기를) 복축이오며 가내 제절리(제절이) 다 편안하신지요. 저는 부모님 후원으로 객지에서 몸도 편안하오니 원념지덕택이웨다.
식솔들 뒤로하고 전쟁터 끌려나온 아버지의 편지 2통
[배달 안 된 '노획 편지']<6> "집안일은 이젠 네가 오마니와 상의해서…"
할 말은 이상 끈는다(끊는다), 찬화야 잘 있거라. 금자야 잘 놀거라. 나는 좁끔도(조금도) 걱정말라. 이만 철필을 논는다(놓는다).
김일성이 최후의 저항을 명한 날, 그 인민군은…
[배달 안 된 '노획 편지']<5> 전쟁은 남편이 편지를 쓰게 만든다
아내 이름 석 자는 불러본 적 없는 남편이었지 싶다. 이런 남편들은 편지 겉봉에 아내 이름 박아넣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문태석이다. 자기 이름이다. 드문 일 아니다. 흔했다.
전쟁터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아홉 문장 편지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4> "배 곯지 말아라"
그간 몸 평안한지. 여기 집안 시꾸는(식구는) 평안하니 안심하여라. 그리고 여러 친척도 다 평안하다. 그런데 무순(무슨) 이윤지(이유인지) 니가 편지하는 편지는 여기서 다 바다(받아) 보는데 여기서 하는 편지는 왜 너는 못 바다(받아) 보니. 그리고 여기서 가져간 돈을 쓸
아내가, 아들이 북에서 보낸 편지 두 통에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3> '해방구 남반부'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
남편은 서울에 파견된 후로 아예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월급 또박또박 잘 챙기고 있다.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원망스럽다. 분하고 원통하다. 광희 아버지의 객지 생활? 고생스러우리라는 것 다 안다. 하지만 당신도 알 건
1950년 '인민군 우편함'서 발견된 편지에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2> 중국 길림성, 서울 돈암동의 '형님'에게
매일 분주하실 줄 압니다. 그간 안녕하실 줄 믿습니다. 제는(저는) 근심하여 주시는 것보다 건강하니 염려마십시오. 조국전쟁에 총궐기하고 있는 이 마당에 인민군 해군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읍니다.
1950년 전쟁통에 인민군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 <1> "몸풀 달이 가까왓는데 그간 몸은 엇떴오"
아내는 군대 나가는 남편을 읍내(맹산읍)까지 마중 나왔던 모양이다. 눈물 없는 작별도 있던가. 아무리 편지라지만 아내를 내놓고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흔치 않았을 시절인데, 자신을 '남편'이라 부르는 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