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1> 아르누보 시대 돔(Daum)의 꽃병 작품으로 낙엽을 형상화하였다. 카메오 기법으로 로만 글라스에서 배운 기법이다. |
이러한 당시 분위기로 인해 유럽의 양대 박물관이 개관되었으며 시대의 유행은 결국 개인들의 미의식(美意識)에도 큰 영향을 끼쳐 개인이나 가정이 하나의 작은 뮤지엄이 되는 경향을 낳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앤티크로 집을 장식하거나 컬렉션 마니아들의 진정한 효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소더비,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들이 설립되자 시장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앤티크 대중화 시대를 열게 된다.
▲ <사진2> 일본의 옻칠 기법과 고전 양식이 조화를 이룬 이 의자는 직선으로 바뀐 루이16세 네오 클래식을 보여준다. |
그러나 1870년까지만 해도 '앤티크'(antique)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물건들을 칭하는 용어로서 오늘날 우리가 'antiquity'라고 일컫는 것이었다. 앤티크는 당시 curios(골동품) 혹은 curiosities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때부터 1980년까지는 100년이 넘은 모든 유산을 통틀어 앤티크라고 정의하였다.
앤티크는 관세를 부가하지 않는 관례를 유지함으로써 예술품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앤티크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가구, 책, 도자기, 유리, 쇠붙이, 주얼리, 패션까지 일일이 열거하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일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리를 하나의 예로 들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 <사진3> 아르데코 시대를 대표하는 랄리크의 시계 작품으로 고전 그리스 시대의 여신을 모티브로 한 환상적인 완성도로 격찬받는 다자인이다. |
기원전 18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문서에는 놀랍게도 유리의 정량조합 기술과 발색(發色)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후 이집트에서 유리구슬과 향수병이 화려하게 제작되었으며 로만글라스시대에는 일회용으로 사용할 만큼 기술이나 품질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하였다. 특히 현재에도 사용하고 있는 불로잉 기법을 창안하여 입으로 풍선을 불듯이 가볍게 유리가공을 할 수 있었으며 카메오 글라스를 만들어내는 기교도 당대를 풍미하였다.
▲ <사진4> 숲의 설경을 그려낸 아르누보 시대 돔의 뛰어난 작품이다. |
이후 르네상스의 융성 속에서도 예의 고도로 숙련된 유리산업이 있었다. 그 증거로 1540년에 발간된 반네지오 구린비치오의 <화공술(火工術)>에는 당시 야금술을 비롯하여 유리의 야사, 제조기법과 유리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금속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유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 고 극찬하고 있다.
▲ <사진5> 갈레의 자연주의 디자인의 아르누보 램프. 낭시파를 상징하는 갈레는 일본문화 모티브를 응용하여 자연과 유리 가구 디자인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
대표적인 르네상스인으로 네오나르도 다 빈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이면서 과학자였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당시 새롭게 발명된 베네치아의 유리거울과 다 빈치의 독특한 인연을 보면 그의 명저 <회화론(繪畵論)>에서 베네치아 평면거울을 이용한 회화 기법에 대해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다. 당시 거울은 귀부인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기호품에 머물렀지만 다 빈치는 냉철한 안목으로 기능만을 뽑아내어 훌륭한 회화론에 적용한다.
▲ <사진6> 패송 드 베니스 와인잔으로 손잡이 장식이 화려한 16세기 작품이다. 일본 하꼬네에 있는 프레스트 유리박물관 소장품이다. |
유리의 역사에서 베네치아는 특별하다. 산 마르코 광장 건너편 코너에는 매우 큰 규모의 베네치안 글라스웨어를 전시판매하는 쇼룸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 쇼핑 코너에서 유리거울을 구입하기 위해서 멀리 북유럽으로부터 알프스를 넘어 마차를 타고 귀부인들이 모여들었다. 물론 거울뿐만은 아니었다. 그 쇼룸에는 이제 막 개발된 크리스탈로라 불리는 투명한 유리제품들과 선(線)가공으로 그려진 레이스 장식의 유리제품들과 샹들리에 같은 공예품들이 황홀한 미학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취향의 다양한 축제와 파티, 그리고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를 즐기고자 하였을 터이고 플로리안 카페에서의 커피타임도 목적 가운데 하나였을 터이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면 유럽 전역에서는 무라노 섬에서 도망친 유리기술자들이 거의 식별하기 어려운 베네치안 글라스를 만들었는데 이 유리 제품들을 패송 드 베니스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프랑스어로서 베네치안 풍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패송 드 베니스(façon de Venise)는 현재 앤티크 시장에서 컬렉터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한다. 그 이유는 웬만한 안목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 <사진7> 폼페이 발굴에서 불어온 네오 클래식 스타일의 아름다운 피아노이다. 고전시대 기둥이 등장하고 다양한 클래식 모티브를 장식에 사용하였다. |
베네치아는 매력적인 도시국가로서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줄곧 아드리해의 제왕 자리를 지켜왔다. 베네치아의 부는 대부분 해외교역을 통해서 창출되었지만 당시 가치로 추산해 볼 때 유리산업 몫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무라노 섬의 인구는 3천 명을 넘었다고 한다.
19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나타난 아르누보는 유리예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의 아르누보를 이끌었던 카메오 유리로서 낭시파의 거장, 에밀 갈레와 돔 형제, 미국의 티퍼니 등은 중세 고딕 건축에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얻고 유리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예술품을 낳았다. 이것들은 현재 매우 훌륭한 컬렉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경매시장에 등장하면 가격이 경쟁적으로 상승하여 이제 티파니의 램프가 1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 <사진8> 아르누보를 상징하는 갈레의 카메오 글라스 램프로서 불을 밝히면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장식성이 뛰어나다. |
그리고 유리만을 전문으로 다루어서 아르데코 시대를 빛낸 랄리크는 그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하였다. 특히 향수병을 디자인하여 오늘날 사용하는 향수병의 모티브가 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많은 앤티크 컬렉터들로부터 격찬을 받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가 빚어낸 유리조각(glass sculpture)들 가운데는 누드가 유난히 많지만 신성한 느낌까지 자아내게 할 정도로 유려하다. 이것은 역시 클래식 시대 조각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그의 독창적인 해석의 결과이다.
그러나 유리는 구입이 까다롭다. 그 이유는 모조품이 성행하기 때문인데 가급적이면 믿을 수 있는 딜러나 옥션하우스를 통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와인 악세사리로서 빅토리안 양식의 디캔터 한두 개쯤을 3백-6백 달러에 구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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