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로마, 런던, 밀라노 같은 유럽 도시들은 여행자의 천국처럼 보인다. 한낮에 기차나 지하철을 타보면 온통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프랑스 인구가 약 5천만 명이 좀 넘는데 찾아오는 여행자들이 7천여만 명이라고 하니 가히 여행자들의 나라가 아닌가.
▲ 파리의 한 벼룩시장에서 5EUROS라는 푯대가 꽂혀있는 가게 앞에 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다. |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유럽은 양파껍질과 같아서 벗겨 볼수록 감칠맛이 나는 매력을 지녔다. 껍질을 벗기는 기술이 좀 필요하긴 하지만, 양파의 속을 들여다 볼 생각이라면 그 껍질을 벗기는 도구가 필요하다. 사전에 준비할 것도 필요하고 지식도 요구된다.
특히 역사와 문예사조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혹은 네오 클래식으로 분류가 가능한 시대사조의 키워드를 알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이 돌아다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도 된다.
유럽인들이 가장 몰리는 곳이면서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곳을 찾는다면 벼룩시장을 꼽을 수 있다. 파리의 유명한 생뚜앙 벼룩시장 한 곳에만 지난 한 해 약 1천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추정이다. 그것도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에서라면, 도대체 거기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일까.
▲ 런던의 포토벨로 마켓의 어느 골목이다. 책과 프린트 등이 진열된 좁은 골목에 뭔가를 골라보려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
우리에게 낯선 이 문화적 현상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뜻한다. 관광 상품을 취급하는 곳도 아니고 카지노 호텔이나 유흥업소가 밀집한 곳도 아니면서도 그 무엇이 이곳을 다녀온 이들을 지속적으로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일까.
사실 오늘의 벼룩시장은 단순히 시장이 아니다. 그 안에 문화와 예술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지식의 공원이다. 예를 들면 유럽 어디엘 가보더라도 그러하지만 <노팅힐>이라는 영화의 현장인 포토벨로에도 주말에 가보면 새벽부터 수십만 인파가 발 디딜 틈을 주지 않고 밀려간다. 왜 그렇게 많은 인파가 그곳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그곳뿐만이 아니다.
▲ 프랑스의 이른 아침, 한 벼룩시장에서 쏟아놓은 듯 무질서한 무더기 앞에 한 여성이 무언가 쓸 만한 것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
좀 역사가 있는 지방 동네에서도 벼룩시장은 축제의 현장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백만 명이 매년 유럽을 여행한다. 그러나 벼룩시장을 즐기는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다.
벼룩이 들끓는 구닥다리 물건을 파는 시장이라고 하여 벼룩시장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벼룩시장이라는 곳에서 벼룩 찾기는 쉽지 않아도 그 정신만은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대부분이 모여 있는 서유럽의 곳곳에서, 여행자들은 어렵지 않게 헌 옷가지와 허접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는 삶의 잔해를 거래하는 시장을 곳곳에서 만난다. 그런데 간혹 그곳에서는 아주 귀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 발견된다고 해서 뉴스거리로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 한국 사람이 영국에서 산 우표 한 장이 물경 1억원을 호가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우표를 벼룩시장에서 구입하였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벼룩시장에서 이런 것들을 누가 팔고 사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아주 세분화된 시장 시스템이 정교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히려 벼룩시장이라기보다는 보물찾기 공원이라고 해야 맞을 것만 같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벼룩시장을 돌아보면서 돈은 싸게 지불하고, 아니 거저에 가까운 돈을 주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건져볼 강태공의 심정으로 그곳에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벼룩시장은 이제 여행자에게 필수 코스가 되어 있으며 여행자를 안내하는 각종 책자에도 올라 있다.
▲ 1940년대 파리 벼룩시장의 모습이다. |
세계가 불황에 빠져도 꿈쩍 않는 경제특구가 있으니 이곳은 다름 아닌 유럽의 벼룩시장들이다. 아니 오히려 불황의 시기에 더 활황(活況)이다. 우리도 IMF 구제 금융사태가 발생하자 느닷없이 여의도에 쓰던 물건을 팔고 사는 거대한 포럼이 나타났다. 그리고 '아나바다' 운동을 전개하고 벼룩시장이 간헐적으로 등장하였다. 물론 언론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러나 유럽의 벼룩시장들이 언제나 호황을 유지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 분야를 산업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대규모의 기계를 설치하고 굉음을 내며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 곳만을 산업현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관광객의 메카로서 국제거래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럽의 벼룩시장은 거대한 산업분야로 자리 잡아 온지 오래다.
만일에 우리가 벼룩시장을 지역마다 잘 키워낼 수 있는 저력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일자리와 함께 창업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신산업을 일구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 재건축 아파트를 가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쓰다 버리고 간 많은 잔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직도 쓰기에 충분한 전자제품, 장난감, 가구 등이 그대로 섞여 있었다. 사실 그날, 내 아내는 모자, 거울과 같은 괜찮은 물건을 건졌으며 나도 읽을 만한 책 몇 권을 가져왔다.
유럽의 벼룩시장에 가보면 온갖 쓰레기 같은 물건들부터 고급스러운 중고품까지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쓰레기와 버금갈 만한 하찮은 물건들도 누군가 필요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시장은 출발한 것이다. 파리의 벼룩시장 역사만 보더라도 처음에는 넝마주이들이 성곽주변 공터에서 자신들이 주워온 물건들을 펼쳐놓자 구입자들이 나타났으며 자연스레 시장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연 누가 쓰레기를 사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벼룩시장은 근본적으로 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단 가재도구와 옷가지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뜯겨졌을 때도 폐자재를 거래하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쓰레기장으로 보내지 않아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 의해 재분배되는 것이다. 좋은 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렁이를 키워 산성화된 독성을 분해시켜 살아있는 흙으로 환원시키듯이 벼룩시장은 흙 속에 있는 지렁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도 폐가가 된 재건축 아파트를 지나칠 때는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그 안에 널려져 있을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상상해 보면서 만약 이것들을 전문적으로 거래할 만한 시장만 있다면 그 엄청난 쓰레기더미도 확실하게 줄어들 것일 뿐만 아니라 자원의 재활용에도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금전적인 이익도 발생된다면 아무리 낡았더라도 누군들 자신이 쓰던 친숙한 물건을 버리고 싶겠는가.
▲ 헌 책을 파는 할머니 가게. |
만약 환경 운동가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분명히 벼룩시장 운동을 시민운동 차원에서 시작해 보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시민운동으로만은 성공하기 어렵다. 경제적 활동과 연결될 때에만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그 이유는 시장이라는 역동성이 뒷받침되면 자발적인 경제 주체들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벼룩시장은 시장으로서 선진 사회에 필수 요건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산업화 사회를 거치며 기계적 대응만이 모든 수단에 우선된다는 사고로 사회를 운영해온 측면이 있다. 환경문제 역시 기계적 대응에 머물러 있기에 너무도 많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제는 문화 환경적인 대응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터이다.
언젠가 유럽의 유명한 장식 디자이너가 저술한 책에는 벼룩시장에서 찾아낸 각종 장식 용품들을 이용한 여러 실내 장식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조금만 손을 보면 훌륭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거울, 촛대, 프레임, 벽 패넬(wall panel), 의자, 드로잉 등을 활용한 것이었는데 그 독특성이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였다.
사실 런던에 벼룩시장과 파리의 벼룩시장은 그 색깔이 다르다. 그 이유는 그들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영국의 예술사조와 프랑스의 예술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의 아트 앤 크라프트 시대의 가구나 램프 등은 프랑스의 같은 시기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따라서 살아있는 예술 사조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벼룩시장이야말로 예술의 활화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술 사조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예술가들의 땀과 정열의 산물이라면 이 벼룩시장은 그들이 살아서 머물고 있음이다.
특히 파리에서는 각종 아르누보 시대의 아름다운 예술품들을 끝없이 만날 수 있는데 지난 번 나는 뮤샤(Mucha)가 그려놓은 프레임까지 있는 포스터를 그곳에서 발견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트데코 스타일의 가구들과 로코코 스타일의 도자기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 낼 수가 있었다.
런던에서는 빅토리안 시대의 장식성 높은 홀 체어와 조지안 시대의 마호가니 가구들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렇듯 벼룩시장이라 하여 하찮은 물건만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시대의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므로 컬렉터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에게도 끝없는 영감의 샘물을 흘려 보내준다. 다 알려진 이야기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자주 찾는 곳이 벼룩시장이라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분출하는 활력을 얻고자 함이리라.
▲ 커피를 좋아하는 파리 시민들이 쓰던 빈티지 기계들이 보인다.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 가까이 살았더니 장사 지내는 흉내를 내기에, 맹자 어머니가 집을 시전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물건 파는 흉내를 내므로, 다시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공부를 시켰다는 내용으로,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인간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만일 아무런 취미 활동도 없는 사람이 암기력만 좋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잘 수행했다고 하였을 때 그가 생각하는 세계관은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실패하는 경험도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교육의 진정한 목표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벼룩시장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세상에 모든 물건은 소중한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것이고 두번째로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양하게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며 선현들의 손길을 체험하면서 일류의 미래가 결코 과거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세번째로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성을 익힐 수 있음은 물론이고 헌 물건도 소중히 다뤄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원보호를 책으로 외우는 것보다 훨씬 다가올 것이 분명하고 별도의 환경운동을 할 필요가 굳이 없을 지도 모른다.
벼룩시장이야말로 이렇듯 교훈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음을 우리 사회만 모르고 있다면 너무도 커다란 손실이리라. 그러나 다행히 우리 사회에도 벼룩시장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이 벼룩시장 대열에 많이 참여 하기를 바라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