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LA까지 암트랙 기차 안에서 상영된 영화는 딱 두 편, 짐 쉐리단 감독의 2002년작 <인 어메리카(천사의 아이들)>와 존 포드 감독의 1956년작 <수색자>였다.
원래 전수천 화백의 생각은 이번 여정이 근 6000Km에 달하는 장거리인 만큼 기차 속에서 학술 세미나를 포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시킨다는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영화 상영이야말로 참가자들 간에 친화력을 자연스럽게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상영이 예정돼 있던 영화들은 대륙횡단의 구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예컨대 이번 프로젝트의 동선과는 정반대로 LA에서 뉴욕까지, 그러니까 서에서 동으로 미 대륙을 횡단하는 장면이 담긴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랜드 오브 플렌티>는 뉴욕~워싱턴DC 구간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스티븐 킹 원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은 광활한 옥수수밭의 평원(스티븐 킹이 줄곧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려내는 바로 그 옥수수밭. 스티븐 킹은 옥수수밭이야말로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미국의 핵심(core)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옥수수밭의 아이들'이나 '그것(It)' 등등처럼 그가 쓴 수많은 공포의 얘기들이 옥수수밭이 많은 미국 중부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곧 미국의 정중앙, 중심에서 지금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미국은 지금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이 펼쳐지는 세인트루이스에서 가든시티까지 곧 미주리주와 캔사스주에 이르는 구간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런가 하면 로렌스 캐스단 감독의 <그랜드캐년>은 말 그대로 그랜드캐년 지역을 관통하면서 보여줄 영화였다.
하지만 실제로 상영된 작품은 앞서 말한 두 작품뿐이었다. 아무리 여러 다기능의 시설이 완비돼 있는 암트랙이라 할지라도 영화상영에 필요한 조명, 음향, 스크린 등등의 인프라가 최악의 조건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짐 쉐리단 감독의 <인 어메리카>는, 전수천의 기차가 미국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와중에, 진정한 어메리칸 드림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캐나다 국경을 거쳐 변방에서나마 미국사회에 힘겹게 정착하려고 노력하는 아일랜드 가족들의 눈물나는 이 이민 소사(少史)는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 얼마나 있는 자들의 편에만 서 왔으며 없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닫혀 있는 사회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할리우드에는 이 영화말고도 이민실화를 그리는 영화가 얼마든지 많다. 따라서 새로울 건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어메리카>가 기차 안 '드라이브 인 씨어터'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다른 영화에는 없는 무엇, 그러니까 영화 전편에 흐르는 자존심 같은 무엇이 느껴져서였다.
영화 속의 주인공 가족은 궁색하지만 구걸하지 않고, 차별받지만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고 또 존엄하다는 점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 우리 모두의 진정한 꿈은 어쩌면 그렇게 주인공 가족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고 또 함께 살아내는 데에서 찾아지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의 미국은 바로 그 점을 잊고 있는 셈이다. 캔사스주 안에 있는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가든시티에서 뉴멕시코주의 앨버쿼키, 아리조나주의 그랜드캐년에 이르기까지 전수천의 기차는 끝없는 황야를 질주해야만 했다. 지평선에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은 한국과 같은 작은 반도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서부의 황야는 역설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바깥 세계와 얼마나 단절돼 있는가를 보여준다. 황야의 중심부에서 산다는 건 IT공학의 지옥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바일도 필요없고 인터넷도 필요없다. 이라크전의 무의미함을 알리며 미 전역을 투어중인 신디 시핸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극동의 작은 나라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6자회담의 중요성도 여기서는 그저 하찮은 일일 뿐이다. 위기를 맞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정권의 향배 같은 건 더더욱 관심밖일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애들이 굶어 죽든 말든, 총선후 독일의 대연정이 신호등 연정이 됐든, 자마이카 연정이 됐든 그건 정말 알 바 아닌 일이 될 것이다.
광활하다 못해 지루하고 지겨운 황야는 이곳의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더 나아가 바깥의 사람들을 차단시켰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진짜 미국의 모습, 차가운 미국의 현실일 것이다. 따라서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움직이는 기차로 드로잉 작업을 하는 전수천의 행위예술은 어쩌면 그것 자체가 파격일 수 있다. 무관심의 사회에 경적을 울려라! 바로 그것이야말로 전수천의 기차가 동부 뉴욕에서부터 힘겹게 힘겹게 달려온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 안에서는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진다. 우리는 지금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얼마나 유의미한 일인가. 상대적 가치는 어느 정도이고 절대적 가치는 또 얼마만큼인가.
그럴 때마다 로렌스 캐스단의 영화 <그랜드캐년>이 떠오른다. 영화는, 부와 명성을 가진 백인 변호사가 우연한 일로 흑인 할렘가의 청소차 운전사와 만나게 되고 그 두 가족이 자신들의 인생을 심기일전 하기 위하여 그랜드캐년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영화 제목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는 그랜드캐년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가족들은 그랜드캐년의 어마어마한 풍광에 얼이 빠지게 되는데, 그 장면 역시 그랜드캐년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리버스 샷(reverse-shot)만으로 처리한다. 그러니까 결국, 로렌스 캐스단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했을 것이다.
전수천의 암트랙도 마찬가지다. 동부에서 서부로 길고 긴 여정을 떠난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정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더 중요했던 일이다.
안타깝게도 전수천의 대형 프로젝트(이번 행사를 위해 쓰여진 돈이 7억 원이어서 대형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발상 자체가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의미에서) '움직이는 선 드로잉' 작업은 아직까지는 미완성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모두들 행위의 과정만을 주워 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번의 대장정은, 아직까지는, 피상의 체험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전수천 화백에겐 앞으로의 과제가 더더욱 남다르고 막중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록한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그는 자신의 작업을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의미로 심어내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진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는 그같은 작업이 다 끝나고 나서, 그러니까 보다 많은 대중들을 새롭게 만나고 나서야 이루어질 것이다.
전수천의 기차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미국을 알기 위해, 세계를 알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몇번이고 몇번이고 뉴욕에서 LA까지, 또 LA에서 뉴욕까지 횡단에 횡단을 거듭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