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에서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4차 평가회의에서 협약 가입국인 119개국 중 114개국 정부 대표가 모여 미국이 제안한 제6의정서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제6의정서는 초안이 제출된 순간부터 가뜩이나 실효성 없는 협약을 심지어 후퇴시키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바 있다.
| ▲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4차 평가회의 ⓒCMC |
무기 사용을 적법화하는 무기금지협약
단독으로 10억여 개의 집속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은 CCW 제6의정서를 통해 크게 4가지의 협약 수정안을 제안했다. △불발률 1% 미만의 집속탄을 규제에서 제외시킬 것, △1개 이상의 자기파괴 메커니즘을 장착한 집속탄을 규제에서 제외시킬 것, △1980년 1월 1일 이후 생산된 집속탄을 규제에서 제외시킬 것, △가입국들에게 협약에서 금지된 집속탄 사용이 가능한 12년의 유예기간을 허가할 것이 그 내용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로서 국제적으로 생산 및 사용, 비축, 이전이 전면 금지되어 있는 집속탄의 생산, 사용, 매매, 비축을 적법하게 허용하기 위한 예외 조항으로 협약 내용을 수정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협약 수정안은 회의 기간 동안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총 2차례에 걸쳐 재수정되었으며 한국, 인도, 중국, 아르헨티나, 벨라루스, 파키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에스토니아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적극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이 국가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집속탄을 규제하는 CCM에는 가입을 하지 않고 있는 국가들이다. 호주, 독일, 스웨덴, 이탈리아, 스위스,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CCM 가입국임에도 불구하고 CCM의 협약과 상충하며 비인도적 관점에서 더 저급한 수준인 미국의 제6의정서에 동조했다.
인도주의에 등 돌리는 한국
한국에서 집속탄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네트워크 '무기제로'가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기도 한 국제단체 CMC는 현지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각국 정부의 입장 표명을 실시간으로 전달해 왔는데, 그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미국의 초안에 "허례가 아닌 진정한 의미로" 매우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했으며, 초안에서 규제 완화 범위가 줄어든 재수정안에 대해서는 "견딜 수 없는 재정적 부담"을 야기하고 안보 문제를 가증시키며 "덜 만족스러운 인도주의적 상황"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드러냈다고 한다. 이는 집속탄 사용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인도주의적 국제사회와 정면으로 상충하는 입장이다.
지난 14일 '무기제로'가 외교통상부 군축비확산과에 보낸 'CCW 집속탄(확산탄) 의정서 관련 질의'에 관해 받은 회신에서 외교부는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 상 우리의 안보 여건에 변화가 없는 한 확산탄의 전면 폐기를 규정하고 있는 확산탄금지협약(CCM) 참여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명시하며 CCW의 실효성과 제6의정서의 후퇴적 조항에 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는 확산탄의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우려를 잘 인식하고 있으며, 확산탄의 인도적 영향과 우리의 안보 이익을 최대한 조화한다는 원칙하에 제6의정서 관련 협상에 참여중"이고, "단, 정부 간 협상이 진행 중에 있는 관계로 구체 내용 및 동향은 알려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는 핵심을 제외한 형식적인 답변만을 보내 왔다.
| ▲ 집속탄 생존자이자 CMC 대변인인 브라니스라브 카페타노비치(Branislav Kapetanovic)가 CCW 제6의정서 협상 의장인 다농(Danon) 대사에게 59만명에 달하는 제6의정서 반대 서명을 전달하고 있다. ⓒCMC |
인도주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노르웨이, 캐나다, 오스트리아, 멕시코, 라이베리아, 라오스, 뉴질랜드, 말리, 남아프리카공화국, CMC와 국제 적십자위원회는 제안된 미국의 수정안에 강력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제6의정서에 반대하는 국가들의 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발률 1%라는 수치는 가장 안정적 형태인 단단한 표면에서조차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수년간의 시험을 통해서 증명되었으며, 설사 실험에서 1%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드러나는 불발률은 10%가 넘었다. 또한 수천수만의 소폭탄이 피해 지역을 뒤덮어 초토화시키는 실전 상황에서는 1%라는 수치조차 지나치게 높다.
둘째, 자기파괴 메커니즘 1개 이상 장착 문제는 광범위한 피해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 피해자를 양산하는 집속탄의 태생적 비인도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전자식 자기파괴 메커니즘과 전자식 자동불발 기제 2개 모두를 장착하도록 요구하는 CCM의 협약보다 후퇴한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인도주의 협약에 의해 금지된 무기의 사용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셋째, 1980년 이후 생산 집속탄에 대한 사용 허가 역시 바꾸어 말하면 30년 이상 된 집속탄만을 금지하겠다는 의미로 실질적인 금지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CMC에서 14일자로 나온 보도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집속탄은 태국, 캄보디아, 미국, 조지아(그루지야), 러시아에서 사용된 바 있으며 그 중 어느 집속탄도 1980년 1월 이전에 생산된 것은 없었다고 한다. 즉 현실적으로 실전에서 사용되는 집속탄이 1980년 이후 생산품인 이상 그 이전의 집속탄을 금지하는 것은 전혀 실효성이 없음이 명백하다.
CCW는 미국의 제6의정서로 인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을 넘어 집속탄의 사용을 적법화하는 반인도주의로의 경계에 서 있다가 국제사회의 치열한 노력으로 겨우 고비를 벗어났다. CMC 활동가이자 정책 자문위원인 그레스 오스턴(Grethe Ostern)은 CMC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는 단순한 외교 게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다. 약화된 기준에 대한 이번 전면적 거부는 유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시민사회와 협력한 중소국가들이 국제정치의 의제를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만인에게 평등"한 죽음의 무기, 집속탄을 멈추자
실험실과 같은 최상의 상황이 보장되지 않는 실전에서 이상적인 기술적 해법은 없다. 또한 설사 비약적인 기술 발전으로 자기파괴 메커니즘을 기술적으로 장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차별적 폭격을 퍼붓는 집속탄 자체의 비인도성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최소한의 인도주의의 붕괴를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논리의 핵심은 바로 그것, 집속탄의 태생적 비인도성에 있다.
현존하는 국제인도주의법(IHL)과 CCM의 국제협약 내용을 위반하고 국제적 인도주의법의 수준을 격하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뻔한 CCW 제6의정서의 협상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다행히 생명의 가치가 무기 산업을 이겨낸 이번 경험을 통해 인류의 미래는 전쟁과 인간, 그 사이에서 인간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 결과가 결코 달갑지 않을 한국 정부는 세계적으로 지탄받는 집속탄의 생산국, 비축국, 수출국으로서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인가. 야만과 인도주의의 경계에서 아직 갈 길이 먼 한국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이유이다.
| <용어 해설> ● 집속탄 집속탄은 하나의 대형 컨테이너 안에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650개까지의 소폭탄이 들어있는 형태의 폭탄을 일컫는다. 집속탄이 발사되면 안에 들어있던 소폭탄이 퍼지며 축구장 수십 개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일거에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데,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밀타격이 어렵고 불발률이 높아서 타격 지역을 거대한 지뢰밭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대인지뢰와 함께 대표적인 비인도 무기로 꼽힌다. ●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onvention on Certain Conventional Weapons) 1980년 체결되어 현재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119개의 가입국을 보유하고 있는 CCW는 무기 금지를 위한 본래의 목적을 이행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협약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다. 규제 대상인 무기의 정의가 모호하여 통제에 허점이 많고, 무기를 규제하는 협약의 내용 역시 명확하지 않아 오용 및 자의적 해석의 여지를 허용하며, 실질적으로 비인도 재래식 무기의 최대 생산국이자 사용국인 미국, 중국, 이스라엘 등에 의해 협약의 이행 및 개정이 주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CCW의 가입국 119개 중 2/3에 가까운 76개국은 동시에 CCM의 가입국이며, 한국은 2001년부터 CCW의 가입국이 되었으나 이를 핑계로 CCM 가입은 거부하고 있다. ● 집속탄금지협약(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 CCM은 비인도 무기 억제 협약으로서의 CCW의 무력함을 비판하며 집속탄금지연합, 유엔, 국제적십자위원회 등 시민사회 영역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재래식무기 중 특히 그 비인도성을 국제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집속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CCM은 협약 당사국에게 집속탄의 생산·보유·비축·이전을 금지하고, 비축분을 폐기하며, 피해자 지원 활동 및 집속탄 정화 작업과 이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이행할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실질적 무기 억제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과거 집속탄 최대 생산·사용·비축 국가들을 포함한 111개국이 서명했으나, 정작 집속탄 생산량 1위인 미국을 비롯하여 한국, 중국, 인도, 러시아, 파키스탄 등의 주요 생산국들은 가입을 하지 않고 있다. (☞홈페이지) ● 한국과 집속탄 한국은 2000년부터 CCW 가입국이지만 35개 집속탄 생산국 중 하나이며 86개 비축국 중 하나이다. 2011년 CMC 선정 8대 집속탄 생산기업에는 한국기업 한화와 풍산이 포함되어 있으며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투자증권 등 총 26개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한화(20%)와 풍산(18%)에 투자해 피 묻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집속탄의 비인도성을 '무책임하게 사용되는 것이 문제일 뿐, 불발률을 낮추고 자기파괴 메커니즘을 장착하는 기술적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으로 치부하는 한국 정부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CCW의 가입을 핑계로 실질적으로 집속탄을 규제하는 CCM 가입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속탄의 생산 및 사용을 기준으로 CMC에서 매년 선정하는 '부끄러움의 전당'(Hall of Shame)에 5위로 당당히 그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집속탄금지연합(Cluster Munition Coalition) CMC는 집속탄 금지를 위해 세계 100여개국의 350여개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적 연합 단체이다. 2008년 CCM이 국제사회에서 채택된 이래로 집속탄의 위험성을 전 세계 시민사회와 각국 정부에 알리고 CCM을 보편화하여 집속탄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적극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홈페이지) ☞ 집속탄 관련 활동 국제 감시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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