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초입에서 일본 열도는 물론, 전 지구를 공포에 빠뜨렸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때문입니다. 그 사고가 일본에서 났으니 망정이지, 중국에서 났더라면 우리의 하늘과 거리는 그저 모래먼지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방사능 가루에 뒤덮이고 말았을 테니 말이죠. "중국의 핵 발전 기술은 이제 겨우 중학생 수준"이란 어느 핵 전문가의 말은 우리의 모골을 더욱 송연하게 만듭니다.
중국의 핵발전소가 아직 미숙해서 위협적이라면 한국에는 노쇠한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잦은 고장에도 은퇴를 거부하고 있지요. 곪은 상처는 숨기면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발표합니다. 핵에너지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핵발전소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물건 중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풍력 발전 엔지니어인 저도 '풍력 발전기는 절대로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감히 확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난 수십 년간 수만 대의 풍력 발전기가 설치되었고 그에 의해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는 매우 적다'고 말할 뿐입니다. 조작자의 실수뿐 아니라 태풍, 해일, 지진 등의 자연재해도 고려해서 말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핵발전소도 '지난 수십 년간 지어진 수백 기 중 대형 사고가 난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 번의 사고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수십, 수백만 명에 이르고 심지어 그 피해가 대를 거쳐 이어지기도 한다'고 해야 옳습니다.
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미국, 옛 소련, 영국, 일본과 다르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전시에 핵발전소가 공격을 당하면 부산 시민들이 제일 먼저 피난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야 합니다.
핵에너지는 가격이 저렴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가격은 터무니없이 적은 보험금 덕에 가능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시를 가정해 책정된 배상 금액은 고작 500억 원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피해자에게 향후 40년간 배상해야 할 금액은 100조 엔(1370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결국 사고가 난다면 천문학적 배상금은 세금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 울산 등 대도시 근처에 핵발전소가 밀집한 한국에선 피해 금액이 더 늘어날 텐데 말이지요. 보험료를 발생자 부담 원칙에 따라 부과한다면 핵에너지는 그 어느 에너지원보다도 비싸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자력을 저렴한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소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핵 발전을 지지합니다. 당장 핵발전소를 폐쇄하면 전기 부족 사태가 오는 게 아닐까 불안해들 합니다. 대놓고 싼 전기를 쓰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 <잘 가라, 원자력>(염광희 지음, 한울 펴냄). ⓒ한울 |
독일에서 실제로 시행되고, 이미 성과를 내고 있음을 이 책은 상세히 보여줍니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고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하며 핵 발전이 현재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등 현재 독일이 갖고 있는 구조와 환경은 우리나라와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에너지 수급 문제를 두고서 두 나라가 쓰는 답안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핵발전소 폐쇄와 에너지 절감으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핵발전소 확대와 에너지 사용 증가로 2030년에는 우리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독일의 두 배가 됩니다. 현재도 우리가 독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독일이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2030년 59퍼센트의 전력을 핵발전소에서 얻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잘 가라 원자력>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이 몇몇 정치인의 혜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2011년 핵발전소 주위로 45킬로미터의 인간 띠를 이어 핵발전소 폐쇄 시위를 벌인 일이나 '100퍼센트 재생 가능 에너지 마을' 프로젝트에 독일 면적의 25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113개의 시, 군이 참여하고 있는 사실은 에너지 전환이 시민과 지역 사회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절감이라는 독일 에너지 정책을 제가 몸소 체험한 결과를 덧붙이자면 '별로 불편하지도 비싸지도 않다' 입니다. 저는 화력, 핵을 사용하지 않는 전력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일반 전력 요금제보다 조금 높습니다만 '전기는 비싸다'는 인식 덕에 한국의 일반 가정집보다 아껴 쓰게 됩니다. 사람이 없는 방에 불을 수시로 끄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 되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가끔 한국식 양문형 냉장고를 그리워하지만 두 식구 살림은 제 키만한 작은 냉장고로도 충분합니다. 김치 냉장고도 당연히 없지요. 전기레인지로 취사를 하는데도 한 달 전기 요금은 저희 부부가 평범한 식당에서 한 번 외식하는 정도 나옵니다. 제가 다녔던 대학엔 강의실은 물론 도서관에도 에어컨이 없습니다. 한국처럼 후덥지근하지 않다 해도 30도를 웃도는 꽤 더운 여름에 학생들은 부채질을 하며 공부를 합니다. 은행, 상점, 레스토랑도 모두 창문을 활짝 여는 것으로 에어컨을 대신합니다.
핵발전소에 의존하지 않아도 전기세 폭탄 따위는 없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값싸서 풍요롭게 쓰지만 위험한' 에너지원에서 '좀 더 높은 가격에 아껴 쓰지만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앞서 가고 있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정부, 시민, 지역, 기업 등의 사회 구성원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절약이라는 두 축으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잘 가라 원자력>은 상세히 보여줍니다. 책의 제목처럼 '원자력과 이별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한 토론의 장을 여는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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