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냈다. 기골이 장대하고, 유난히 부지런하셨던 분. 일제 만주 군관학교와 한국 전쟁의 살아있는 역사. 고모부를 말이다. 그는 육군대령으로 예편해,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오랜 세월 필부로 살다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기억은 오래될수록, 계기가 없으면 되살리기 힘든 법이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석 앞에서, 고모부와 고모에 대한 기억을 차분히 더듬었다. 눈물이 났다.
나의 뿌리는 황해도(이북) 신막이다. 일제 강점기 때 할아버지는 기관사였고, 우리 집은 고향 일대를 주름잡는 천석꾼 집안이었다. 조부모는 슬하에 아버지, 손위 형(행방불명), 누나(고모) 3남매를 두었고, 고모부는 함경도 출신 군인으로 만주 군관학교 1기생이었다. 우리 집안은 일제 치하에서, 소위 지주 계급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일제시대 '지주'라면 '친일'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 말하자면, 친일파(?)였던 셈이다. 6.25 전쟁이 일어났고, 가족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타향살이는 고단했다. (기관차나 땅을 가져올 순 없었다!) 이제 끼니 걱정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고모부 이야기는 '만주 군관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본은 1932년, 만주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만주철도를 스스로 파괴하고,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고 덮어씌우는 자작극을 벌인다. 이른바 '만주사변'이다. 일본은 같은 해 3월 1일 괴뢰 만주국을 세워 그 일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는데, 군대의 필요성을 느낀 만주국은 1939년 체계적인 군사 교육을 위해 현재의 '장춘'에 군관학교를 세우게 된다. 이게 바로 '만주 군관학교'다. 이 군관학교 출신으로는, 1기생 김동하, 윤태일, 방원철 등 13명이 있고, 2기생 박정희, 이한림, 등 11명이 있으며, 7기생을 마지막으로 총 44명의 생도를 배출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5.16 쿠데타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고모부의 행적은 묘연하다. 다만 한국전쟁 중, 투항한 인민군을 지휘해 북한군과 여러 차례 교전한 무용담은 고모부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굳이 고모부가 인솔했던 걸 보면, 그도 투항한 인민군 지휘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엔 그랬다. 친일군관이 인민군이 되고, 일본군 소위가 남로당 프락치가 되던 시절이었다. 외세를 등에 업어야 했고, 이념의 과잉도 있었다. 살기 위해 그랬을 터다.
만주 군관학교 출신인 고모부를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더구나, 일제 치하에서 민족을 배신하고, 해방 후 조국을 등졌으며, 전쟁 후엔 민주주의를 억압한 군인을 이해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의 광기가 기회주의를 배양했고, 종내 인간을 생존기계로 전락시킨 게 안타까워서다. 전쟁 후, 고모부는 CIC라는 육군 특무부대에서 근무하시다가 대령으로 예편하셨다 한다. 군관학교 출신들처럼 성공(?)은 못했지만, 그 후로 "반공"에 대한 신념은 버리지 않으셨고, 책도 내셨으며, 군인답게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사신 듯하다.
한국 전쟁 62주년, 우리는 다시금 "인간"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건 인류가 '피의 오물'을 뒤집어쓰고, 근대를 경험하며 깨달은 바다. 자유, 평등, 생명, 그리고 존엄성을 가진 인간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은 전쟁을 부추기고, 자본은 탐욕을 불러온다. 깨달은 가치를, 사람들에게 계속 일깨워야 하는 이유다. 나이 먹고 모든 게 희미해져도, 인간으로서 결코 잊어선 안 되는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그 '무엇'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환기시켜, "인간"으로 살아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프리모 레비다.
▲ <주기율표>(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돌베개 |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는 이른바 비활성 기체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 이들은 정말로 활성이 없어서, 그러니까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하고 있어서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활성 기체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7쪽)
사실, '반 유대주의'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믿음 말이다. 유대인에 대한 거부는 이러한 치명적인 신앙에 근거한다. 미신은 히틀러의 광기와 섞이며 극단으로 치닫는다.
저자가 이탈리아 민병대에 체포되어, 감방에 갇힌 채 여러 날 지났을 때였다.
"내 감방에는 희미한 전등불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도 켜있었다.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97쪽)
그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언급돼 있지 않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금"쪽 같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감방에서 만났던(곧 풀려나게 될) 한 죄수를 질투하는 대목에선 가슴이 저릿했다.
수용소 시절, 뮐러라는 독일인 박사가 자주 오기도 했었는데, 그가 저자에게 물었다 . "왜 그렇게 불안해하나?" 그 말을 들은 레비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훗날 독자들이 레비에게 물었다. 수용소 상황을 독일인이 알고 있었냐고. 그가 대답했다.
"대부분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 독일 국민은 전체적으로 저항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이것이 인간인가> '독자들에게 답한다' 중)
케네디 대통령의 인용으로 더 유명해진,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에서 중립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고의적 태만도 죄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바나듐"이라는 화학 첨가물로 다시 이어진 뮐러와 레비의 인연은 서신만 교환하는 것으로 끝난다. 끝내 조우하지는 못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호국보훈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고, 공 있는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서, 그들의 공로에 보답'하라는 뜻일 테고, 6월인 이유는, 현충일과 6.25 전쟁을 염두에 둔 듯하다.
하지만 호국이든 보훈이든 인간이 하는 일이다.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인간은 생존기계가 아닐뿐더러, 누구든 함부로 생명을 앗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또한 끊임없이 증언해야한다.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5.18 민주화운동 32주년 기념, 제8회 청소년 대회에서 서울보훈지청장상을 수상한 서울 연희초등학교 5학년 유승민 군의 증언을 들어본다.
29만 원 할아버지
우리 동네 사시는/ 29만 원 할아버지/ 아빠랑 듣는 라디오에서 맨날 29만 원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세요?/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할아버지네 집 앞은 허락을 안 받으면 못 지나다녀요?/ 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할아버지 때문인가요?
호기심 많은 제가 그냥 있을 수 있나요?/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죠/ 너무나 끔찍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왜 군인들에게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셨어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아세요?/ 할아버지가 벌 받을까 두려워/ 그 많은 경찰 아저씨들이 지켜주는 것인가요?
29만원 할아버지!/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세요/ 물론 그런다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유족들에게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 되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대답해보세요!/ 29만원 할아버지!
대답해보세요. 각하!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