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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지 못한 철학자의 삶,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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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지 못한 철학자의 삶, 슬프다!

[프레시안 books] 제임스 밀러의 <성찰하는 삶>

<성찰하는 삶>(박중서 옮김, 현암사 펴냄)의 저자 제임스 밀러는 미국의 탁월한 지성사 연구자 중 하나이다. 그는 마르크스에서 메를로퐁티에 이르기까지 지식인들을 그 역사적인 삶과 관련하여 연구하여(<역사와 인간 존재>(1982년))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어 루소, 신좌파 사상가, 미셸 푸코, 로큰롤을 연구하여 지성사가로서 그의 명성을 높여 왔다.

저자가 최근(2011년) 발간한 이 책은 열두 명의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철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 소크라테스, 칸트, 니체 등만 아니라 대체로 사상가로 알려진 사람들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에머슨도 포함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통해 자기의 삶을 형성하려 했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들은 실천적 삶 속에서의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사상에 이른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처럼 성찰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현대 프랑스 철학자 푸코의 사상적인 영향이 아닌가 생각된다. 알다시피 푸코는 초기에 인간 과학의 인식 틀인 에피스테메를 연구하다가 1970년대 초부터 에피스테메를 구성하는 사회적인 권력의 문제로 관심을 돌렸다. 이런 푸코가 말년에 도달한 사상이 곧 '자기 배려'라는 철학적인 개념이었다. 푸코에게서 자기 배려는 로마 시대의 철학인 스토아주의나 에피쿠로스주의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현자의 삶'을 추구하려는 목표를 가진다.

▲ <성찰하는 삶>(제임스 밀러 지음, 박중서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현자의 삶이란 실천적인 행동가의 삶과 구별된다. 후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이야 어떻든 간에 역사 속에서 어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완성에 이르는 삶이다. 대체로 정치가들의 삶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겠다. 반면 전자 곧 현자의 삶이란 물론 삶 속에서 어떤 목표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목표의 달성이 아니다. 이런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를 어떤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는가, 얼마나 완성된 인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체로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삶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여기서 완성된 인간이란 결코 단순히 도덕적인 인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덕적 인간이란 일정한 도덕적인 규범을 정해 놓고 이 규범에 자신을 복종시킨다. 그는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곤란 속에서 자신이 세운 규범에 충실함을 통하여 도덕적인 존재로 평가된다. 그런데 푸코가 말하는 완성된 인간은 자신의 철학에 기초하여 그 철학을 수행하기 위하여 상정된 철학적인 주체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소크라테스는 진리의 세계에 이르기 위하여 순화된 영혼이 존재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평소에 죽음의 연습을 해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며 의연하게 죽은 것은 바로 이런 순화된 영혼의 완성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종교 개혁가 루터가 보름스 의회에서 벌어졌던 가톨릭 교회의 심문대 앞에 서자 "저는 여기 서 있습니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경우를 들어 보자. 이때 루터는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종교 개혁이라는 이상을 추구해 왔고 그것은 심판을 받아 화형을 당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추구해야 하는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푸코는 완성된 인간에 대해 '자기 배려'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진실성, 또는 진정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강단 철학 또는 아카데미즘의 철학은 철학적 주체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강단 철학은 각각의 철학이 그 과제, 예를 들어 진리의 인식이나 존재의 이해에 얼마만큼 성과를 거두었는가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강단 철학은 그런 철학자들이 그런 성과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 하는 진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런데 저자 제임스 밀러는 지성사가라는 본분에 비추어 오히려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진정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사실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먼저 어떤 철학자가 스스로 설정한 철학적인 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과제에 관하여 어느만큼 성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서 철학자 자신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이런 과제에 어떻게 도달했고 이를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문제 삼는 역사적 연구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제임스 밀러는 탁월한 지성사 연구자답게 이런 힘든 일을 이 책에서 수행하였다.

저자의 글은 철학자들을 다루면서도 역사적으로 서술되어 결코 어려운 느낌을 받지 않기에 또 번역조차 매우 평이하게 번역되어 있어 철학에 두려움을 느끼는 일반인도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삶과 철학의 일치라는 문제로 고투해 왔고 그러기에 철학적 선구자들을 볼 때에도 그들의 삶에 대해 눈여겨 본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책 <성찰하는 삶>을 보면서 다시금 깨우치는 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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