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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성에 갇힌 건축, '마음'으로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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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성에 갇힌 건축, '마음'으로 구하라!

[프레시안 books]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

"자유낙하 하는 와중에 지도를 자문(Consulting)하는 것에 대하여". 오싹하지 않은가. 십 수 년 전 건축가 토마스 한이 쓴 건축 비평의 제목이다. 제목과 함께 전문을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있었다. 이 풍자적 제목의 글은 "비참한 도시 상태와 문화적/교육적 낙후성에 대해서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90년대 한국 건축계의 "무기력하기만한 현학성"을 날선 어조로 비판한다. 생각해보라. 곧 땅에 곤두박질쳐버릴 사람에게 전문가랍시고 지도를 설명하는 '학구적인' 우둔함에 대해서.

<마음을 품은 집>(구본준 지음, 서해문집 펴냄)이라는 이 편안한 제목의 건축 이야기가, 생뚱맞게도 한국 건축의 비장한 운명을 냉소적으로 비평하는 글에 대한 기억을 끌어냈다. 서점에 책이 풀리기도 전에 페이스 북을 통해 <마음을 품은 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건축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주문, 책이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 (정말 책 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아무래도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토마스 한의 비평에 웃으며 대답하는 듯하다. "일단 긴장 풀고, 낙하산의 손잡이를 당기시죠."

정말 그랬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건축은 소수 엘리트 건축가와 관료, 고급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기업의 문화였다. 건축가들의 대화는 심오하고 철학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고 누구도 건축을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건축가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예술에 조예가 깊으며 공학적인 사고도 가능한 심각한 철학자'의 모습이었다. 건축 비평의 날 선 태도는 토마스 한이 지적한 것처럼 그러한 폐쇄성과 현학성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 <마음을 품은 집>(구본준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이 책은 그동안 건축 책들이 담고 있던 난해한 어휘들 하나 없이 일상적인 언어들로 독자들의 마음을 무장해제한다. 이 책은 집을 양식이나 기능으로 분류하는 대신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의 감정으로 나눈다. 정말 희로애락을 통해 건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랬다." 집이 줄 수 있는 감정이란 게 별 거 있겠나 싶어 방심하다가 슬프도록 기쁜 이야기로 첫 장부터 눈시울을 붉히게 될지 모른다.

큰 기쁨은 한없는 참척의 슬픔을 추스르고 또 추스르고 얻어졌다. 서대문 이진아 도서관은 사고로 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가 죽은 딸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아버지가 미국서 유학중인 작은 딸 진아를 보고 온지 며칠 후에 딸은 사고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 50억을 기증했고 유일한 조건은 딸의 이름으로 도서관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진아 같은 아이들이 풍경 좋은 방에서 "마음 편하게 찾아와 원 없이 책만 보다 돌아갈 수 있는 쉼터 같은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도서관 근처 아파트에 살던 세진 엄마는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완성될 때까지 1년 가까이를 한자리에서 건물이 자라나는 사진을 찍어 도서관의 탄생을 기념해주었다. 하나의 건물이 탄생하기까지 이렇게 특별한 이야기들이 한 데 모일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개인의 비극 속에서 탄생"하게 되었지만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즐겁고 의미 있는 공간"이 되는 건축,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건축만큼 아름다운 건축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분노의 건축은? 건축이 품은 분노는 그 건축이 기념하거나 추모하는 대상과 관련된다. 또는 집짓는 과정이나 다 지어진 집이 자아낸 노여움도 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전자에 해당한다. "암울했던 20세기 한국 현대사에서 그 누구보다도 끔찍한 상처를 입어야 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집이다.

이제는 몸을 가누시기도 힘든 할머니들은 지금까지 20년 넘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해왔다.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는 수요 집회다. 이 집회가 10년쯤 이어지면서 평생의 한을 씻지도 못한 채 할머니들 한두 분씩 세상을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수많은 수요일이 더해져도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집을 지어' 분노의 대상을 견고하게 드러낼 계획을 한다.

박물관 건립의 싹이 튼 2004년 이후로 10년간 어려운 모금 끝에 독립공원에 부지까지 기증받으며 희망적인 진행을 보이던 사업은 몇몇 단체의 저항으로 부지를 이전하면서 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의 수모와 상처를 남겼다. 모금액의 일부를 부지 마련에 사용하면서 박물관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전화위복일까. 슬픔으로만 가득한 이 비극적인 박물관에 사려 깊은 건축가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작아지되 "스토리텔링을 추구한 동선"으로 할머니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공간을 만들어낸 건축가들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그 분노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지어졌으되 완성되지 않은 박물관이다." "일본이 스스로의 범죄를 인정하고 할머니들에게 사죄할 때, 그래서 할머니들의 한이 풀릴 때 이 박물관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이 분노의 집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라는 이야기를 통해 온전히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을 품은 이야기'는 각각의 감정 아래 16개의 집을 품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태는 추상적인 것. 제목이 주는 편안한 기대와 다르게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공간의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과 건축 내외부의 현장감 있는 에피소드들로 촘촘하게 얽혀있다. 건축의 양식과 공간은 눈에 보이지만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엮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기술, 건축의 마음을 상정하는 저자의 안목, 여기에 이 책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있다.

같은 감정으로 묶이는 건축물의 시공간적 다양성 또한 흥미롭다. 불과 한해 전 완공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과 수백 년 전 지어진 '도동 서원'은 분노(怒)의 집 짝패로 묶여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 마을 묘역'과 스리랑카의 '시기리야 요새'는 슬픔(哀)의 감정으로 엮인다. '창덕궁의 정자'와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건축 사무실" '문훈 발전소'는 즐거운(樂) 집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위치한 집을 다양한 근거들을 이용해 하나의 감정으로 묶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는 저자의 오랜 답사와 취재의 기록들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마음은 감상과 다르다. "사진 한 장 때문에 비행기를 탈" 정도로 건축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많은 저자는 오랫동안 건축가들과 함께 하는 건축 기행과 취재를 통해 자신만의 안목과 이야기 거리를 쌓아왔다. 그렇다고 이미 기사로 썼던 소재를 다시 활용하지도 않는다.

무관해 보이는 개별적인 건축과 사건들이 이리저리 조합되며 공통된 주제로 엮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예를 들어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아이고'의 쇠락과 한국 최초의 도시 빈민 저항 운동이었던 '광주 대단지 사건', '세운상가'는 공통적으로 도시 계획의 처참한 실패를 설명하는 도시적인 사건들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는 근/현대의 건축가들이 난해한 언어로 이론의 장벽을 구축하는 데 골몰하는 동안 "현대 건축을 바꾼 것은 엘리베이터와 에어 컨디셔닝 시스템"이라 일갈하는 독특한 도시 건축 비평의 텍스트들을 남겨왔다. 상식과 현학적 전문성, 일상과 비일상 사이를 오가며 구성되는 그의 비평은 현대 도시 건축에 대한 어떤 글보다 예리한 통찰을 담고 있다. 중요한 점은 그 글이 역사책을 뒤져서가 아니라 '현장 취재'를 통해서만 쓰일 수 있다는 것. 이러한 방식의 도시 건축의 글쓰기를 저널리즘적 건축 비평으로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꼼꼼한 취재를 통해 "책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건축의 미시사를 구축해내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소위 건축 전문 잡지라고 하는 매체와 학술적인 저서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건축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해준다. 어떤 이론가와 역사학자가 건축과 연결된 "우리의 마음"과 꿈을 이렇게 쉽게 풀어내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 사이에 인간이 있고 그 세 가지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늘 추상적이기만 하던 건축의 오랜 주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은 마음을 품은 집에서 또렷해진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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