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7월, 전경련의 초청 형식으로 키신저가 한국을 방문했다. 여기서 ‘초청 형식으로’라는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 키신저와 같은 비중의 인사가 방한할 때는 실제 방한 동기가 정부 또는 여당 초청인 경우에도 형식상의 초청기관은 전경련 같은 민간 기구가 나서주기를 바라는 때가 많다.
키신저의 한국 방문은 이전에도 이미 수차례 있었지만, 당시 진행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파악하고 또 한국 측에서는 그의 조언도 필요했던 시기였다. 또 당시 시장개방에 가속도를 가하던 중국의 변화와 이를 둘러싼 한반도, 특히 북한의 움직임 역시 키신저의 관심 중 하나였다. 또 이러한 한반도의 움직임은 미국 정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약 2개월 전 바로 5월 27일 서울의 쉐라톤 워커힐에서 제8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었다. 이 회담의 주요 성과는 바로 8·15를 기하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상호교환과 예술단 교환공연을 하기로 합의한 것, 그리고 다음 회담을 평양에서 가지기로 한 것이다.
***중국통 키신저의 조언**
키신저의 방한은 정주영 회장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중국 시장의 개방은 한국에 있어서도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막상 변화의 실상과 전망이라든가, 미국 등 강대국의 입장, 한국 경제계의 바람직한 대응책이 무엇이고,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가 등의 문제들을 가지고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키신저는 중국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중국 최고위층의 넓은 지면을 바탕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 중국 개방의 주역이었을 뿐 아니라 한 시대의 세계외교 무대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또 정회장 개인으로서도 2년 전 중국 방문이 취소된 후 독자적인 모색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키신저와 중국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 하는 것은 지난 1999년 키신저의 회고록 발간을 앞두고 '뉴욕 타임스'가 요약 보도한 내용 일부에서 잘 알 수 있다.
?75년 10월21일, 모택동 관저에서 임종을 앞둔 모택동과의 대화
모: 곧 하늘나라로 갈 것 같소. 하느님을 만난다면 이젠 대만을 미국의 보호 하에 두는 것이 더 좋겠다고 그에게 말하겠소.
키신저: 주석님 말에 하느님도 꽤 놀라겠습니다.
모: 아니오, 신은 당신들을 축복하지 우리를 축복하지 않았소. 내가 군벌에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좋아하지 않았소. 그는 당신들을 좋아하오.
세기의 외교주역, 정치학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키신저는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마자 한국 경제에 대한 관심부터 표명했다. 외교적 수사가 상당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회장이 먼저 연 말문**
"우선 정회장께서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한국에 관심을 쭉 가져왔지만 아무래도 경제에 대해서는 정회장께 먼저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한국 경제는 발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키신저 박사께서도 알고 계시는 바대로 여러 분야에서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진국들의 보호무역 정책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 구미 각국이 자국의 실업자 문제, 국제수지 적자 등을 핑계로 무역장벽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추세로 간다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낮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장률을 낮춘다면 어느 정도까지…?"
"한 6∼7.5%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6∼7%라구요? 놀랍군요. 미국이라면 6% 성장만 해도 대단히 좋아할 텐데 말입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분명히 다르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는 이미 다 큰 어른이나 마찬가집니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이제 어린애나 마찬가집니다. 미국이 한 걸음만 내디뎌도 우리는 열 걸음 이상을 쫓아가야 겨우 뒤따라갈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1%와 미국의 1%는 분명히 다르죠."
"정회장의 말씀을 듣다 보니 문득 제 친구가 하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이봐, 일본사람들이 참 부지런하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참 게으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네. 그게 바로 한국 사람들이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하더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가난한 우리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일본은 이미 세계적인 채권국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일을 안 해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인들은 아직도 세계 어느 민족보다 부지런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2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2의 일본이 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시장 개방 놓고 신경전**
"제2의 일본이 되기 싫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경제적인 문제 특히 세계 경제와의 관계를 볼 때 일본처럼 폐쇄적이 되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일본을 보십시오. 서구 여러 나라보다 오히려 무역 장벽이 더 높지 않습니까? 그건 함께 공존하자는 자세가 아니라 혼자 잘 살자는 자세밖에 안됩니다. 반면에 한국은 개방적인 나라이고, 앞으로 경제가 더욱 발전하게 되면 더욱 개방적일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정회장의 이야기는 실제 현실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 속에 숨겨진 메시지가 더 큰 것이었다. 그것은 한국보다 훨씬 더 높은 무역장벽을 둘러치고 미국 상품에 대하여 벽을 쌓고 있는 일본에 비하여 한국 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지나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키신저 역시 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우리 미국이 볼 때는 일본만큼 한국도 까다롭습니다."
"그건 한국과 일본의 경제상황을 똑같은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한국이 안고 있는 해외부채라든지 경제 규모, 내수시장 규모 같은 걸 보면 일본과 상대가 안됩니다. 한국의 GNP는 현재 일본의 5분의 일, 25년 전 일본과 같습니다. 그때 당시 일본 시장이 얼마나 개방되어 있었습니까. 또 지금 한국의 5배만큼 시장을 개방하고 있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한국의 시장은 우리 능력을 훨씬 초과할 만큼 많이 개방된 상태입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부분에서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군이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체제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런 안보적인 도움에 병행해서 경제적으로도 계속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곧 일본에 대해서도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미국 정부 내에서 미.일 무역마찰과 관련한 규제조처를 법적으로 마련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미·일 무역마찰로 인해 일본에 대한 제재가 가해진다는 것은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똑같은 조치가 우리에게도 취해질 수 있다는 신호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를 감지한 정회장의 이야기는 보다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시장 개방 말고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지난번 다우케미칼의 한국 시장 진출 실패 때문에 받은 영향이 큰 것 같은데, 그건 아주 잘 못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다우케미칼이 실패했던 것은 시장 평가를 잘 못했고, 당시 불황 때문에 제품이 잘 팔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마치 그것을 한국 내의 문제 때문이라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다우케미칼 조차도 다시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키신저 박사는 이야기를 자신의 본무대인 중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정회장께서는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주요 경쟁 또는 새로운 기회의 대상이 어떤 나라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홍콩을 비롯하여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이 한국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그중 싱가포르는 조금 주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은 벅찬 상대”**
"대만 역시 어떤 점에서 한계에 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는 풍부한 자원으로 곧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중국 역시 경공업을 앞세워 곧 세계의 전면에 나설 것으로 봅니다. 만일 중국이 세계무대에 진출한다면 우리로서는 상당히 벅찬 상대를 만난 것이 되겠지만 저는 그래도 빨리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무대에 나섰으면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중국 시장에 기대하는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중국은 이미 교류가 있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충분치 못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오랜 교역국가입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자원 보존 면에서도 보완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히 인천에서 배를 띄우면 중국까지 9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는 것이 아주 큰 장점입니다."
"제가 볼 때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것은 물자의 교역 못지않게 기술 이전인 것 같습니다. 한국과 교역을 하게 되면 중국의 현대화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한국이 보여주어야만 한·중 무역이 제대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도 곧 중국에 진출을 하겠지만, 과거 한국에 기술을 이전해주었다가 졸지에 경쟁 상대가 되어버린 경험을 살려 중국에는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일본과 다른 접근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 좋은 말씀입니다. 일본의 경제 대외정책은 정말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현재 일본의 경제 주역들은 2차세계대전 시대의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마치 전쟁을 하듯이 경제를 운영하고, 공격과 수비의 개념으로 보호 장벽을 둘러치고 있는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의 주역들이라는 이야기에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키신저에게 정회장이 물었다.
"중국 시장에 대한 원칙은 섰지만 아직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사께서는 중국 시장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중국은 두 세력간의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두 세력이란 바로 전형적인 모택동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현대화를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등소평을 지지하는 세력입니다. 이미 죽었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모택동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전형적인 중국 사람이자 공산주의자입니다. 반면에 등소평은 아주 특이한 인물로서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등소평식 현대화에 찬성하고는 있지만 이에 반발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의 미래는 아직도 불투명합니다."
"불투명하다면 다시 폐쇄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모세력과 등세력 각축**
"최근 등소평이 공식석상에서 누차 이야기했던 것이 아마 좋은 해답이 될 것 같군요. 등소평은 각종 연설에서 '현재 중국은 현대화라는 거대한 실험을 치르고 있다. 따라서 그 결과가 좋다면 이 방식대로 계속 추진할 것이고 문제가 발생한다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등소평은 이런 이야기를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새삼 꺼낸다는 것은 반발세력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도 되고, 등소평이 그만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시사하는 것이 많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키신저 박사가 보기에 두 세력간의 무게 추는 어디로 기울어질 것 같습니까?"
"앞으로 3년간이 중국으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금과 같은 현대화 정책을 앞으로 3년 정도만 더 지속한다면 중국은 다시는 과거 체제로 돌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은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데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겠지만 과거 ‘철밥통’ 체제로 돌아가는 데는 더 크고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죠. 따라서 이미 되돌아 갈수 있는 회귀점을 지나갔다고 봅니다. 이번 11월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때 가서 등소평을 비롯하여 호요방과 조자양 등 중국 지도부를 만나보면 나의 이런 생각이 보다 구체화될 것입니다. 과거에 저는 중국 현대화와 관련하여 조자양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더 일한 만큼 더 잘살 수 있다는 유인정책이 골자가 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랬더니 조자양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그렇다면 공산당이 아닌 사람들을 중국에 더 많이 들여놓겠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중국 사람들은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 3년만 더 현대화 정책이 지속된다면 중국 공산주의는 결국 하나의 관념으로서만 그 명맥을 유지할지 모릅니다.“
***키신저의 통찰력**
정주영 회장과 키신저는 중국 이야기를 끝으로 대담을 마쳤다. 키신저로서는 한국 경제 전반에 관한 자신의 안목을 나름대로 확인하고 수정하는 기회가 되었고,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중국 시장에 대한 최고의 정보와 견해를 일찌감치 접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날의 이야기는 대부분 현실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중국의 변화는 키신저가 예견한 바로 그대로였다. 비록 시기에 다소 차이가 있고, 우여곡절들이 있기는 했지만.
키신저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간 4년 후, 그가 예견한 3년에서 일년이 더 지난 1989년 6월, 중국에서는 '천안문 사태'라 불리는 세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천안문 사태의 발발**
1989년 4월 전 총서기 호요방의 죽음을 계기로 전국 각지의 학생, 시민들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자유와 민주를 외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 시위는 일파만파로 번져 수십만에 이르는 군중으로까지 불어났다. 결국 중국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인민해방군과 장갑차, 탱크까지 동원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였다.
이후 중국은 대단한 혼란을 겪었다. 서방 국가들 역시 중국을 예의 주시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다시 전열을 정비, 중국식 사회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실제 경제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학생, 시민들이 외친 자유와 민주라는 구호가 과연 자본주의적인 자유와 민주인지, 혹은 공산주의적 자유와 민주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공산주의는 이제 적어도 소위 '인민'들의 머릿속에서는 그 색깔이 나날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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