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의 원래 제목은 ‘이스트 사이드 스토리’(East Side Story)로 설정돼었었다. 셰익스피어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보자는 아이디어로,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 감독이면서 안무가인 제롬 로빈스, 극작가인 아더 로렌츠가 모임을 가졌다.
뉴욕의 남쪽 이스트 사이드를 무대로 유태인인 로미오와 아이리쉬 가톨릭 신자인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를 플롯으로 삼았다. 그런데 아더 로렌츠가 작업을 하던 중 1920년대 코미디극인 ‘애비의 아이리쉬 로즈’(Abie's Irish Rose)가 벌써 같은 내용으로 작품화한 사실을 발견, 당분간 이 작업을 보류했다.
4년 후 번스타인은 L.A 신문에 갱들의 싸움이 헤드라인 기사로 나온 것을 보고 로렌츠를 다시 만났다. 미국인 스트리트 갱단 ‘제트’(Jets)의 전 리더인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 그리고 푸에토리코 갱단 ‘샤크’(Sharks)의 두목인 그녀의 오빠 버나도와의 관계로 바뀐 내용을, 당시 젊고 유능한 음악가인 스티븐 손다임이 작사를 맡아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는 새 이름으로 1957년 뉴욕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Winter Garden) 극장에서 첫 막이 올려졌다. 흥행은 대성공이었고 런던에서도 1천여회가 넘는 공연 성과를 거두면서,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토니 역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워렌 비티 등도 물망에 올랐지만, 신인 배우인 리처드 바이머가 선정됐다. 여주인공 마리아 역에는 바바라 루나 등 많은 배우가 오디션을 거쳤으나, 영화사 측은 나탈리 우드를 본 순간 그대로 캐스팅해버렸다.
나탈리 우드는 제롬 로빈스와 매일 16시간이 넘는 강훈련을 했으나, 곡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결국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에서 오드리 헵번의 목소리를 더빙했던 마니 닉슨이 목소리를 맡기로 했다.
헐리우드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 영화사는 이례적으로 감독 2명을 복수로 선정했다. 극적인 것과 기술적인 면은 로버트 와이즈, 음악과 무용은 제롬 로빈스에게로 각각 역할 분담을 시켰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년),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1965년)으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베테랑 감독. 지독한 완벽주의자, 고집쟁이 천재인 제롬 로빈스는 무용수들이 거의 겁에 질려 춤을 추는 등 혹독한 고문처럼 연습을 시켰다.
그래도 스텝들은 무용수들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경찰도 통제가 힘들었던 위험 지역인 지금의 68가 서쪽, 110가 등에서 촬영했을 때는 실제로 그 지역 갱들을 고용, 지붕에서 돌이나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일들을 막고, 거리 관중들을 통제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1961년 영화의 대대적 성공 후에도 인기는 계속돼, 1980년 브로드웨이에서 또 막을 올렸고, 1987년에는 오페라 가수인 호세 카레라스와 키리테 카나와가 번스타인의 지휘로 전곡을 녹음했다.
1997년에는 미국 국립필름등록소(National Film Registry)에서 국가 보물(National Treasure)로 선정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전설을 끊임없이 낳는 마력을 지닌 시대적 명화임을 새삼 실감케 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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