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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도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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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탄도 떨고 있다

현지 르포-공습 이후 헬기와 전투기로 뒤덮여

뉴욕 맨하탄 남쪽 31가 아파트의 25층.
밤하늘을 찢는 소리에 잠을 깼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름다운 맨하탄의 야경은 사라지고 공중에는 헬리콥터만이 가득 날고 있었다. 서치 라이트를 밝게 켜고 공중을 돌고 있는 경찰 헬리콥터가 눈에 들어오는 것만도 무려 16대.

그 위로 제트 전투기의 소리도 들린다. 하늘을 모두 비행기로 덮어 놓은 듯하다. 이들이 내는 비행음이 마치 전쟁터에 와있는 느낌을 들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공격이 개시된 후 거리의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다. 2블럭마다 무장 경찰이 늘어서 행인들을 감시하고 있다. 맨하탄으로 들어오는 다리는 모든 사람이 차에서 내려 경찰의 검문 검색을 받아야 하고 트렁크도 샅샅이 뒤진다. 보통 몇 시간씩 걸려 맨하탄에 들어올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게 좋다. 지하철, 기차역인 펜 스테이션과 그랜드 센트럴은 경비가 더욱 삼엄하다.

7일부터 보복 공격이 시작됐다며 미국인들은 좋아하고 있지만 정작 뉴욕 시민들은 더 깊은 불안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CIA와 FBI는 해외 정보를 종합, 2차 테러 가능성이 100%인 것으로 분석 발표했다.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탄저병 감염 사망 소식도 가슴을 뜨끔하게 했다. 화생방 공격에 대비해 이미 많은 가구가 방독면을 비치해 놓은 상태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16에이커(약 1만평)가 그동안 출입금지였다. 지난 9일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 신분증을 확인하고 15분 동안의 ‘가정 방문’이 허가됐다. 버려두고 떠났던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안고 나오는 사람들, 생필품을 챙겨가지고 나오는 사람들로 큰 혼잡을 이뤘다.

지역 방송 기자인 사이먼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 때마다 죽음의 장소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밝고 활기차던 맨하탄의 분위기는 간 곳이 없고 우울과 불안만이 가득하다. 해가 지면 대부분의 거리는 인적이 뜸하다. 레스토랑, 바 등도 일찍 문을 닫는다.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도 얼굴에 밝은 빛은 찾아볼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 순간에 죽어 거의 매일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8일 콜럼버스 데이에는 5번가에서 시민 행진이 있었다.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상의 깃에는 성조기 뱃지를 단 시민들의 모습은 전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이 날도 또다른 테러에 대비, 경찰이 인간 바리케이드를 길 양 옆에 쌓고 길가에 나온 시민들을 격리, 그 가운데를 행진하는 극도의 조심성을 보였다. 한 신문은 이 날 거리 표정을 콜럼버스 데이가 아닌 독립기념일처럼 비장했다고 표현했다.

한 심리학자의 추정에 따르면 맨하탄에 사는 뉴욕 시민 70%가 이번 사건으로 불면증이나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맨하탄에서 허드슨 강을 건너면 뉴저지다. 이 곳에 사는 40대 교포 주부 조지나씨는 사건 당일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차를 몰고 가다 사건을 목격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도 페리로 강을 건너오는 부상자, 사망자들을 목격했다. 그 후 아이는 심한 정서 불안을 보이고 있다.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재미있는 현상은 테러 공포 속에서도 전당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귀금속 등을 현금화하는 것이다. 미국 최대의 전당포 체인인 캐시 아메리카 인터내셔널(CAI)의 주가는 연초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추가 테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일하는 한국 교포들은 그동안 몇 번이고 건물을 뛰쳐나와야 했다. 폭탄이 설치됐다는 제보에 따라 경찰이 취한 조치다. 모두 사무실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한국 교포들중에는 테러 참사 직후 사건 현장 근처에서 성조기와 부족한 물을 고가에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긴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미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거져 나눠주는 성조기를 8달러에 팔았다는 것. 그러나 한인들은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 예배를 성대하게 치르는 한편 성금도 120만 달러나 모아 전달하는 등 아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교포들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다. 32가 코리아 타운은 예전에 비해 매출이 급감했다. 특히 여행업, 호텔, 콜택시 등이 타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 청과, 네일, 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교포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

특히 맨하탄 일대 한인업소들은 또 다른 테러 가능성에 대비, 차량의 맨하탄 진입이 통제되면서 제 시간에 납품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테러 사건의 여파는 맨하탄에 그치지 않고 뉴욕 업스테이트와 뉴저지, 롱아일랜드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본국도 추석 성묘를 앞당기는 것이 보편화됐지만 여기도 지난 달 30일이 일요일이어서 하루 앞당겨 성묘를 다녀오는 교포들이 많았다. 한국과는 달리 차례상을 차리지는 못하고 공원묘지에 가서 꽃을 놓는 것이 고작이지만 교포들의 주요한 행사 중 하나다.

이번 추석이 우울한 것은 테러 사건으로 인해 경기가 매우 나쁘다는 것. 그로서리나 식당을 운영하는 교포들은 “매출이 평소보다 조금 나아졌으나 예년의 추석 경기에 비해서는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포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미국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것 같다. “전쟁 통에도 살아 남았는데...”라는 한 아주머니의 말처럼 돌이켜 보면 우리는 거의 격랑 속에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교포들은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잘 돌아다닌다. 특이한 것은 유태인들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맨하탄의 공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의 뜻대로 만들어도 끝날 것 같지가 않다. 빈 라덴을 붙잡아도 그럴 것이다. 미국은 슬기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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