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대법원은 이른바 ‘한국논단’ 사건에서 언론 자유의 한계에 대해 새로운 판례를 내렸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을 한 언론이 기사내용의 진실을 입증할 부담을 사적(私的) 사안과 공적(公的) 사안으로 나누어 공적 사안의 입증 부담을 완화했으며 정치적 이념에 관한 입증은 ‘구체적 정황’의 제시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한국논단 사건은 1997년 월간지인 한국논단이 민노총 등 9개 진보적 노동 또는 사회 단체에 대해 ‘북한 조선노동당의 이익을 위한 노동당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자 이들 단체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2심에서 9개 단체가 모두 승소했다.
대법원은 새 판시에 따라 ‘정치투쟁’을 천명했던 민노총에 대해 승소 부분 중 일부를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하고 현대차, 기아차, 대우조선 노조의 승소 부분도 파기했다. 반면 민변, 전국연합, 참여연대, 언노련의 승소를 확정지었으며 인권운동사랑방은 심리미진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공적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에 관한 의혹 제기나 주관적 평가가 진실에 부합하는지를 따짐에 있어 엄격하게 입증해낼 것을 요구해서는 안되고 구체적 정황의 제시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해 주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구체적 정황을 입증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공적 존재가 해온 정치적 주장과 활동 등을 입증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정치적 이념을 미루어 판단하도록 할 수 있고 공인된 언론의 보도 내용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공지의 사실이나 법원에 현저한 사실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새로운 판례로 언론 자유의 폭을 넓혔다는 점과 그동안 판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점을 감안해 차형근 변호사의 평석과 판결문 전문을 게재한다. 단 판결문 분량이 많은 관계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평석**
2002년 1월 22일 대법원이 선고한 2000다 37524호, 2000다 37531호 판결은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밝힌 판결로서 향후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 판결이 종전 대법원 판결에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던 부분을 적시하고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언론기관의 면책요건으로 종전 대법원판례가 설시하였던 표현목적의 공익성 및 표현내용의 진실성(오신의 상당성)과 관련하여 양 요건의 해석을 민사판결에서도 형사판결과 마찬가지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즉 표현목적의 공익성과 관련하여서는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사실을 적시한 것을 의미하는데 행위자의 중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私益的)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무방하다”는 것이 형사판례의 입장이었고 표현내용의 진실성(오신의 상당성)과 관련하여서는 “진실한 사실이라고 함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는 것”이 형사판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종래 하급심의 민사판결에서는 세부에 있어 진실과 부합되지 않거나 과장된 표현이 있는 경우로서 특히 범죄보도 사건의 경우에는 명예훼손을 인정한 판결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민사에서도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이 생존함에 필요한 숨쉴 공간이 있어야 하므로 진실에의 부합 여부는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객관적 진실과 일치할 것을 요구하여서는 안된다”고 판시함으로써 향후 그런 문제가 쟁점이 된 하급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번 대법원 판결은 1999. 6. 24. 헌법재판소가 97헌마265호 결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정도는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공적 관심사안인지 사적인 영역 안에 속하는 사안인지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공적인 존재의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는 일반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여서는 안되고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는 것도 입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구체적인 정황의 뒷받침이 없는 악의적 모함이나 모멸적인 표현은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종래 하급심은 위에서 살펴본 사안을 구별함이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언론이 가지는 비판의 기능을 상당히 약화시킨 감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공익이론을 연상케 하는 위 대법원의 판결은 언론의 비판기능을 지지하는 판결로써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판결문**
주문
원심 판결 중 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원고 현대자동차노동조합(현대노조), 원고 대우조선노동조합(대우노조), 원고 기아자동차노동조합(기아노조), 원고 인권운동사랑방에 대한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피고들의 원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원고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원고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원고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에 대한 상고를 기각한다.
이유
1.원심의 판단
가. 원심판결 이유 및 원심이 인용한 제1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그 인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이 부분은 원심에서 전재함)
(가) 한국 논단 1997년 2월호 중 “노동운동인가, ‘노동당 운동’인가?”(20~25쪽)
1) “노동 ‘노’자와도 관계없는 친북투쟁”이라는 소제목 아래, “(중략) 더구나 왜 하필이면 국가기간산업이며 이제 겨우 수출주종산업으로 부상하려는 자동차, 조선, 중공업, 전자, 통신 종사자들이 걸핏하면 ‘총파업’인가? 이건 급여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행위가 아니라, 체제와 국가전복을 궁극목적으로 한 공산게릴라식 빨치산 전투가 아닌가? 붉은 띠에 쓰인 ‘김영삼정권 퇴진’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중략)
“불법단체인 소위 ‘민주노동’은 ‘노동악법 저지투쟁’이 목표라고 했지만, 실은 ‘정권 타도투쟁’이 그 저의에 깔려있음을 현명한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이들은 1988년 6월 노동운동의 계급투쟁화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등을 목적으로 친북좌익단체인 ‘범민련’과 함께 행동을 시작한 NL(민족해방)계 운동권 출신 김영신 등 10여명을 중심으로 위장취업, 노사분규조성 등을 일삼다가 1995년 11월 소위 ‘조선노협’, ‘영남지역노조협의회’ 등과 연대하여 ‘민주노총’을 설립했다.
이후 이들은 ‘국민연합’ 등 체제부정 세력들과 연대하여 ‘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해체’, ‘대선자금 공개’, ‘5·18 학살자 처벌’ 등, 노동의 ‘노’자와도 관계없는 대중정치투쟁만을 전개해 왔다.”(20,21쪽)
2) “자본가 대 노동자, 계급투쟁이 기본구도”라는 소제목으로, “재작년 봄(95년 4월)에 이르러서는 소위 ‘노동법개정 투쟁’을 내걸고 25개 단체들로 ‘범대위(노동법, 안기부법 개악 철회 및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전국 동시다발 ‘평화대행진’ 전개와 함께 민노총의 총파업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범대위는 ‘전국연합’, ‘한총련’, ‘민변’, ‘참여연대’, ‘경실련’ 등 30개 단체로 구성됐는데, 이들은 ‘민노총’과 한국노총에 함께 파업압력을 가하고 있다. 합법단체인 한국노총은 좌익불법단체인 민노총과의 경쟁심에서 더욱 파업지향인 것도 같다.
이들의 기본구도는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계급투쟁으로 되도록 과격한 행동을 지향, 궁극적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이 정부를 불신케 하여 정부를 전복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북한의 조선노동당의 이익을 위한 ‘노동당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21,22쪽)
이어, “정당한 노동행위 아닌 빨치산 전법”이라는 소제목 아래, “사정이 이렇거늘, 정부는 단호하고도 일관된 법의 집행으로 이들의 불법행위를 철저히 다스려야 함에도 오히려 ‘노동운동’을 내건 불법 불순세력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니 일단 멱살을 잡은 저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지지 않을 수 없다.”(21,22쪽)
위 기사 중 “이들이 ~ 분명하다”는 부분은 다시 23쪽에서 고딕체 굵은 글씨로 재인용되고 있다.
(나) 한국논단 1997년 3월호 중 “일부 좌익노조 호화생활 해부”(26~31쪽)
1) “일부 좌익노조 호화생활 해부”라는 제목 바로 밑에 ‘1천억 넘는 무노동 유임금, 노조 갹출금 체제파괴 공작비에’라고 제목에 대한 설명을 단 후, (중략) “극소수의 노동자가 ‘혁명의 주력군’이다.”라는 소제목 아래,
(중략) “그 중에서도 지금 우리 사회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김일성의 이른바 사회기본계급인 노동자들이다. 물론 노동자라고 모두 다 김일성의 교시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죽은 김일성과 그 ‘유훈’에만 충실한 것은 우리 사회 1,200백만 근로계층의 극히 일부라고 볼 수 있는 소수의 혁명주도분자들이다.
김일성의 ‘교시’와 ‘유훈’에 충실하고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며 이를 뒤집어엎기 위한 구실로 노동운동을 악용하고 있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우선 작년 12월 28일 결성된 노동법 범대위(공동대표 김상곤 등) 참가단체들이 그 주축이다. 이들은 ‘전국연합’을 비롯, (중략) 참여연대, (중략) 등 45개 단체인데, 그 대부분이 좌익이며 사회주의적 노동당을 지향하는 정치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김상곤(민교협), 신창균(범민련), 천영세(전국연합), 오세철(지식인연대), 최영도(민변), 문규현(정사단), 최지선(전불련), 김중배(참여연대) 등이다. 이들은 범대위 대표자회의를 통해 노동계에 정치투쟁을 전개토록 유도하며 파업수위를 조절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쟁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과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좌익노동단체가 민노총이다.”(27,28쪽)
2) “연간 수십억 원 거둬 쓰는 민노총”이라는 소제목 아래, (중략) “민노총은 노동귀족화 되고 있는 대기업 노조간부들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 첫째, 조합원 3만4,000명을 거느린 현대자동차에서는 1인당 월급여의 1%씩을 또박또박 공제하여 월 2억5,000만원, 연간 30억원을 뜯어내고 있는데, 그중 8,000만원을 민노총에 상납하고 있다.
그렇게 모인 돈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노조간부 사무실의 인건비, 사업비, 유지비 등에 22억4,000만원, 임투 등 투쟁의 기금에 2억5,000만원, 민노총 등 상급단체 납부에 2억4,000만원을 각각 쓰며, 그 중에서도 한총련에 1억2,240만원, 민노총에 8,160만원이 지급되었다.
1996년 한 해 동안 현대자동차노조 한군데에서 모인 돈들이 대한민국의 체제파괴활동과 공작비로 쓰인 것이다. 그 밖에도, 기업 내 노동조합 간부의 소위 판공비가 2,400만원, ‘기밀비’와 ‘의전활동비’라는 것이 9,600만원이나 된다니 이들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노조인가, 아니면 정치단체 또는 정보기관이란 말인가? 열린 입이 닫히질 않는다.”(27,28쪽)
3) “노조가 판공, 기밀비에 ‘의전활동비’까지”라는 소제목 아래, “대우조선의 경우를 보자. 조합원은 8,320명, 조합비는 기본급의 1%를 공제하여 연간 8억1,500만원을 거두어들인다. 이들의 사용 내역은 사업비, 인건비가 5억, 투쟁기금 1억, 상급단체 상납급 1억2,600만원, 조합장 판공비 1,200만, 기밀 의전활동비가 3,000만원인데, 기아자동차의 경우 아산공장 노동조합장 판공 기밀비가 3,450만원이 별도로 지급되고 있다.”(29쪽)
“도대체 노조의 인건비, 사업비는 무엇이며, 조합장의 판공비는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산하 조합원들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것이 명분인 조합장의 ‘기밀비’, ‘의전활동비’란 대체 누구를 위해 어디다 쓰이는 돈들인가?”(29쪽)
4) "더욱 한심한 것은 언론노조의 형태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노련)은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프레스 센터 18층에 상황실이라는 것을 차려 놓고 산하 각 언론매체 노조에게 매우 파괴적인 지령을 내리고 있었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이들은 툭하면 정치투쟁 대열에 끼지를 않나, 세계 수준을 웃도는 임금인상 투쟁을 벌이지 않나······그야말로 배부른 돼지들의 고약한 난장판을 보는 것 같다. (중략) 이들은 언필칭 ‘공정보도’를 내세워 실은 정부 여당이나 발표는 묵살하고 민노총의 발표만을 보도하도록 각 산하 언론노조에 지령했다. (중략) 이런 지령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의 하나가 지난 1월 14일 일부 KBS 노조원들의 조선일보사 급습 사건이었다.”(30,31쪽)
(다)한국논단 1997년 8월호 중 “공산당이 활개치는 나라”(20~23쪽)
“공산당이 활개 치는 나라”라는 제목 바로 옆에 ‘대한민주공화국인가?, 조선인민공화국인가?’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후 ‘북한산 술 팔아 자금마련’이라는 소제목 아래, “특히 ‘전국연합’은 1994년 3월에 결성된 북한당국의 ‘출소 공산주의자 구원대책위’의 전위대로서, 각종 탄원서를 제출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친북 이적활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중략)
전국연합의 ‘인권운동사랑방’(대표 서준식)은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말지나 컴퓨터 통신 등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의 생활상을 수시로 게재, 그들이 마치 부당하게 복역한 것처럼 왜곡하거나 사망자를 ‘애국자’로 미화하기도 한다. 예컨대 말지 1997년 5월호는 출소 공산주의자 권양섭이 최근 사망하자 ‘평생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고 미화한 것이 그것이다.”(21,22쪽)
나. 원심은 다음과 같은 판단에 기초하여 위 한국논단 기사들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각 기사의 내용을 원고별로 보면 원고 민변, 전국연합, 참여연대, 민노총은 계급투쟁으로 궁극적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정부를 전복하는 활동을 하여 북한 조선노동당의 이익을 위한 노동당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교시와 유훈에 충실하고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며, 사회주의적 노동당을 지향하는 정치투쟁을 하는 단체이고, 특히 원고 민노총은 범민련과 함께 행동을 시작한 민족해방(NL) 운동권을 중심으로 설립되어 한국노총에 파업압력을 가하고 연간 수십억 원을 대기업 노조간부들로부터 거둬들여 호화생활을 하여 노동귀족이 되었으며,(중략)
해방 이후 좌우의 이념 대립과 한국전쟁, 휴전 후 남북이 대치하며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법체계를 감안하여 볼 때, 특정단체가 대법원 판결로써 이미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판단된 ‘북한’, 이적단체로 판단된 ‘한총련’, ‘범민련’과 관련이 있고, ‘노동당 운동’, ‘좌익불법단체’, ‘출소공산주의자 구원 대책위’, ‘공산게릴라식 빨치산 투쟁’, ‘김일성의 교시와 유훈에 충실’, ‘대한민국 체제 파괴 활동’, ‘친북 이적활동’, ‘공산당’이라는 표현을 통해 지명되는 경우 그 단체는 불법단체로서 수사기관의 현실적인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반국가 반사회 세력으로 낙인찍혀 그 사회활동의 폭이 현저히 위축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임에 비추어 이 사건 각 기사의 내용은 비유나 비판적 의견의 제시를 넘어 충분히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2)원심은 한국논단의 위 기사 내용이 진실한 사실인지 여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가) “노동운동인가, 노동당 운동인가?”에 관하여
1)원고 민노총이 친북 좌익단체인 범민련과 함께 행동을 시작한 민족해방계 운동권 출신 김영신 등 10여명을 중심으로 위장 취업, 노사 분규조성 등을 일삼다가 설립된 단체라거나, 공산게릴라식 빨치산 전투를 하고 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2)원고 민변, 전국연합, 참여연대, 민노총이 1995년 4월에 결성된 범대위에 가입한 사실은 인정되나, 위 사실만으로 위 원고들이 계급투쟁으로 궁극적으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의 정부를 불신케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활동을 하여 북한 조선노동당의 이익을 위한 “노동당운동”을 전개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달리 그렇게 볼 증거가 없다.
(나) “일부 좌익노조 호화생활해부” 기사에 관하여
1) 원고 민변, 전국연합, 참여연대, 민노총이 김일성의 교시나 유훈에 충실하고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적 노동당을 지향한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
2) 원고 민노총이 한국노총에 파업 압력을 가하였다거나 연간 수십억 원을 노동귀족화하고 있는 대기업 노조간부들로부터 거둬들여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
3) 원고 현대노조의 1995.9.1.부터 1996.2.29.까지 예산액 항목 중 기밀비가 2,000만원, 직무판공비가 7,000만원이고 그 중 기밀비 1,040만원, 직무판공비 2,117만439원을 집행한 사실은 인정되나 위 인정사실만으로 원고 현대노조의 노조간부들이 위 기밀비와 직무판공비를 직무이외의 용도에 사용하고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그렇게 볼 증거도 없다.
또한 원고 현대노조 예산편성 중 의전활동비라는 항목이 있다거나 한총련에 1억2,240만원을 지급하였다는 증거가 없고 달리 위 기밀비나 직무판공비를 포함한 조합비를 대한민국의 체제파괴할동과 그 공작비로 썼다고 볼 증거도 없다.
4) 원고 대우노조가 1996.11.10. 결산한 바에 따르면 기밀비 1,140만원, 직무수당 1,855만원, 직책수당 145만원, 직무판공비 968만5,810원을 지출한 사실, 원고 기아노조에서 1995.9.24.부터 1996.9.30까지 기밀비 960만원, 직무판공비 3,450만원이 예산으로 책정되어 기밀비로 950만원, 직무판공비로 3,447만8,660원을 집행한 사실은 인정되나 위 인정사실만으로 원고 대우노조 기아노조의 노조간부들이 위 기밀비와 직무판공비를 직무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여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그렇게 볼 증거도 없으며, 별도의 의전활동비 항목이 있다고 볼 증거 또한 없다.
5) 원고 언노련이 공정보도를 내세워 정부 여당의 견해나 발표는 묵살하고 민노총의 발표만을 보도하도록 각 산하 언론노조에 지령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다) “공산당이 활개치는 나라”라는 기사에 관하여
1) 원고 전국연합이 공산당이라거나 1994.3.에 결성된 북한당국의 “출소 공산주의자 구원대책위”라는 단체가 실재한다거나, 위 원고가 그 단체의 전위대로서 친북 이적활동을 한다고 볼 증거가 없다.
2) 원고 인권운동사랑방이 월간 말지 1997년 6월호에 권양섭에 관한 기사를 쓴 사실은 인정되나 위 인정사실만으로 공산주의자들을 애국자로 미화하였다고 볼 수는 없고, 또한 위 원고가 출소 공산주의자인 권양섭을 ‘평생 조국을 위하여 헌신하였다’고 표현하였다거나 ‘공산당’이라고 볼 증거가 없다.
(3) 또한 원심은 피고들이 그 기사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한국논단은 월간지이므로 신속한 보도를 필요로 하는 다른 언론 매체보다 신중한 사실확인의 노력이 필요함에도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였다고 볼 증거가 없고, 이 사건 각 기사의 근거로 든 모 수사기관의 정보도 그 구체적인 수사기관의 명칭, 취재경위, 이 사건 각 기사와 관련된 해당 수사자료를 피고들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 이를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근거라 볼 수 없으며, 원고들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친북활동을 한다는 취지의 이 사건 각 기사의 내용이 공지의 사실에 속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따라서 여러모로 피고들이 이 사건 각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4)원심은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면책을 주장하는 피고들의 주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의 자유로운 형성과 전달에 의하여 다수의견을 집약시켜 민주적 정치질서를 생성 유지시켜나가는 것이므로 표현의 자유 특히 공익사항에 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받아야 할 것이고, 그러한 여론 형성과 전달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는 민주정치에 있어 필요불가결의 자유로서 헌법 제21조 제1항에 의하여 보장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헌법 제21조 제4항 전단이 규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되는 한계가 있다 할 것이고, 만약 언론 출판이 그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경우에는 법의 보장을 받을 수 없다 할 것이다.
한편 헌법 제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생명권 인격권 등을 보장하고 있어 어떤 개인이 국가 권력 또는 타인에 의하여 부당히 인격권의 침해를 받았을 경우에는 인격권의 침해를 이유로 그 침해행위의 배제와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그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와 언론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두 법익이 충돌하였을 경우에는 사회적인 여러 가지 이익을 비교하여 언론의 자유로 얻어지는 이익 가치와 인격권의 보호에 의하여 달성되는 가치를 비교 형량하여 그 규제의 폭과 방법을 정하여야 할 것이데, 그와 같은 취지에서 볼 때 언론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에는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진실한 사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또한 그러한 증명이 없더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그에 따른 책임을 면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위 각 기사가 진실하다거나 피고들이 진실하다고 믿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에 대하여 그 입증이 없다.”
2. 당원의 판단
가. 일반론
(1) 언론매체의 어떤 기사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여 불법행위가 되는지의 여부는 일반 독자가 기사를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그 기사의 전체적인 취지와의 연관 하에서 기사의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다가 당해 기사의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대법원 2001.1.19. 선고 2000다10208 판결, 1997.10.28. 선고 96다38032 판결 각 참조).
그리고 타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으로 행해질 수도 있고, 의견을 표명하는 방법으로도 행해질 수 있는바(대법원 1999.2.9. 선고 98다31356 판결 참조),
어떤 의견의 표현이 그 전제로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는 물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 취지에 비추어 어떤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면 명예훼손으로 되는 것이다(대법원 2000.7.28. 선고 99다6203 판결).
(2)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바, 이러한 자유의 보장은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여 여러 견해의 자유로운 개진과 공개된 토론을 허용하고 이로써 보다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에 따른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이다.
한편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생명권 인격권 등을 보장하고 있고, 인격권의 내용으로 명예를 침해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포함되며, 이에 헌법 제21조 제4항은 ‘언론 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언론 출판의 자유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명예나 권리 등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될 한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언론 출판의 자유와 인격권으로서의 명예보호와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는 한계설정의 문제가 제기되는바, 우리 대법원은 일찍이 이를 조정하는 방법으로서, 어떤 표현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그 표현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진실한 사실이거나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기준을 채택하였다(대법원 1988.10.11. 선고 85다카29 판결참조).
여기서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을 의미하는데, 행위자의 주요한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무방하다고 할 것이고(대법원 1996.10.25. 선고 95도1473 판결 참조),
여기서 “진실한 사실”이라 함은 그 내용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사실이라는 의미로서 세부에 있어 진실과 약간 차이가 나거나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더라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대법원 1998.10.9. 선고 97도158 판결 참조).
자유로운 견해의 개진과 공개된 토론과정에서 다소 잘못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피할 수 없다. 무릇 표현의 자유에는 그것이 생존함에 필요한 숨쉴 공간이 있어야 하므로 진실에의 부합 여부는 표현의 전체적인 취지가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고 세부적인 문제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객관적 진실과 일치할 것이 요구되어서는 안된다.
(3) 한편 언론 출판의 자유와 명예보호 사이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표현된 내용이 사적(私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 공적(公的) 관계에 관한 것인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도 유의하여야 한다.
즉 당해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표현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이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당해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언론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것일 경우에는 그 평가를 달리하여야 하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의 여부도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이상 헌법재판소 1999.6.24. 97헌마265 결정 참조).
(4) 당해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일 때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 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
그런데 사람이나 단체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흔히 위장되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성질상 그들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증명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가 진실에 부합하는지 혹은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따짐에 있어서는 일반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엄격하게 입증해 낼 것을 요구해서는 안되고, 그러한 의혹의 제기나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구체적 정황의 제시로 입증의 부담을 완화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 정황을 입증하는 방법으로는 그들이 해 나온 정치적 주장과 활동 등을 입증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정치적 이념을 미루어 판단하도록 할 수 있고, 그들이 해 나온 정치적 주장과 활동을 인정함에 있어서는 공인된 언론의 보도내용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여기에 공지의 사실이나 법원에 현저한 사실도 활용할 수 있다.
(5) 그러나 아무리 공적인 존재의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문제의 제기가 널리 허용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정황의 뒷받침도 없이 악의적으로 모함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함은 물론 구체적 정황에 근거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어휘를 선택해야 하고, 아무리 비판을 받아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멸적인 표현으로 모욕을 가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
언론자유의 폭 넓혀<2>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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