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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주주의와 문화적 평등을 위하여

<프레시안-문화예술단체 공동기획> 2002 대선후보 문화정책평가 <4ㆍ끝>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등 21개 문화단체들은 지난 11월 4일 2002년 대통령 선거 후보자들에게 <문화정책에 관한 공개 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이 질의서는 20개의 질문들로 이뤄져 있다. 이 기사는 이 질문들 중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문화정책 및 지역문화 균형발전'과 '남북문화교류 활성화'에 관한 각 후보자들의 답변을 비교 분석한 것이다. 편집자.

***한 줌도 안 되는 무리와 공존하라!**

"한 줌도 안 되는 무리와 공존하라!" 문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나'가 모여 우리가 되고, 다양한 우리가 모여 더 큰 우리가 됨으로써 사회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회적 소수자의 문화는 사회적 다수자의 문화가 존재할 근간이 된다. 다양한 소수문화들이 모여 각기 다른 생각과 사고를 통합, 교류, 조정해 가는 과정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다수자의 문화만 살아남아 문화가 획일화되고, 사고의 폭과 깊이가 동일해지는 과정이 바로 파시즘이다.

이런 점에서 소외된 계층, 권력과 부와 문화와 인권으로부터 차별 받아 온 집단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무엇보다 문화의 몫이 된다. 삶의 방식이 달라도 존중받아야 할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곧 문화이기 때문이다.

2002년도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들은 이러한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문화적 인식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을까? 으레 그렇듯이 말로는 '우등생'이다. 하지만, 세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의구심이 먼저 든다. 이번엔 거꾸로 가보자. 가장 지지율이 낮은 세 후보. 이한동, 장세동, 김영규 후보부터.

이한동, 장세동 후보는 이 질문에서만큼은 닮음꼴이다. 여성에 대한 문화정책적 배려, 특히 청소년 문화진흥에 대한 의지는 예상외로 강인하다. 하지만, 추상적 말만 무성하고, 구체적인 공약은 없다. 김영규 후보도 이 점에 대해서는 마찬가지. 그러나, 자율적 주체로서 청소년의 권리확대를 주장하는 일갈은 마음에 든다. 권영길 후보도 이런 점은 궤를 같이 한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강조하는 육아문제 해결을 통한 여성의 문화적 권리확대는 구체적이다. 청소년 연령기준 18세 통합조정과 18세 선거권 부여도 긍정적.

노무현 후보의 경우에는 여성의 문화적 권리 확대에 대한 구체적 공약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청소년 정책은 단연 으뜸이다. 권 후보와 마찬가지로 연령기준, 선거권 18세 하향 조정을 거론하며, 청소년 문화진흥을 위한 하드웨어 확충 등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한 점은 돋보인다. 이회창 후보는 여성정책 일반과 연결시켜 여성의 문화권리 확대를 얘기한 점에서는 노무현 후보와 같았지만, 청소년을 능동적 자율성을 지닌 문화적 주체가 아닌, 일방적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 가장 보수적인 인상을 준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 중앙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한 지역일 뿐"**

오랫동안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문화예술인이 있다.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무시 못할 경험의 폭이 있으며, 아직도 배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정말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필자는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어느 토론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 때문에 몇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그의 말은 "많은 돈을 들여 어마어마한 공연장 하나 지어주는 것보다 지역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인력양성을 지원해 주고, 규모는 작더라도 그 지역에 딱 맞는 문화공간 하나를 제대로 지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요컨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요점은 자생력 확보에 있다는 얘기였다.

얼마 전 다시 그를 만났을 때에는 이런 말을 했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고, 중앙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한 지역일 뿐이다". 서울을 중앙으로 보고, 지역을 시골이라고, 지방이라고 폄하하지 말아라. 서울을 무수히 많은 지역 중 하나로 보는 관점이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위한 올바른 시각의 출발점이라는 얘기였다.

필자는 수년 동안 해마다 얼마 동안을 지역문화 발전 논의와 관련된 자리에 있곤 했는데, 정말이지 이 두 마디 말처럼 딱 맞는 말을 본적이 없다. 한마디로 지역에 그럴듯한 인력양성 기관이 없으니 자꾸만 서울로 몰려들고, 해당 교육기간이 끝나도 서울에 눌러 앉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후보가 문화기반시설 확충, 지역문화활성화를 위한 예산 지원 등과 함께 지역문화 자생력 확보를 위한 지역별 전문인력 양성계획을 수립하겠다고 한 점은 높이 사줄 만하다. 청와대를 어린이 문화광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상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공교롭게도 지지율 상위 3위안에 랭크된 후보들 모두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만한 답변으로 임했다. 권영길 후보는 소외된 지역부터 배려하겠다는 약속을, 이회창 후보는 지역균형발전법 제정을 각각 확약함으로써 좋은 인상을 줬다. 하지만 이 후보의 경우에는 세종로 문화광장화에 대해 교통문제 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보여준 점이 다른 후보들과 대비됐다.

***햇볕정책, 그늘을 피해 양지로**

문화예술교류는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남과 북이 가장 쉽게 취할 수 있는 교류의 방편이다. 따지고 보면 문화예술만큼 정치적인 것이 또 어디 있을까만, 쉽사리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까닭에 지니는 친화력이 문화예술을 가장 흔한 교류 '품목'의 하나로 만든다. 딴은 살갑게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미덕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거대 야당의 유력 후보인 이회창 후보는 이처럼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류의 방편조차도 상대적으로 홀대하는 느낌이다. 낡은 법제도는 그대로 두고 적용의 탄력성만으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발상이 우선 그렇다. 북한 문화예술 유통 자유화에 대해서도 "남북상황에 따라 변화될 문제"라고 애써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마디로 냉전적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햇볕정책의 계승자다운 답변을 선보였다. 하지만, 문화교류 예산이나 교류전담기구 설치 문제 등에 있어서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로 임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죽인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주고 싶은 대목이다.

남북문화교류에 있어서는 오히려 권영길 후보가 햇볕정책의 양지를 좇는 후보로 평가됐다. 권 후보의 남북관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햇볕정책'이란 말보다 '평화정책'이란 말이 더 어울릴 듯 싶다. 평화정착을 통한 상호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남북 간 문화교류를 단계적으로 지속 확대하고, 이를 위해 법제도를 정비하겠다는 구상이다. 문화교류예산도 당연히 함께 확충된다. 냉전이 끝나고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런 태도는 긍정적이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해 남북 양자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바보처럼 5년을 기다릴까?**

이밖에도 대통령 후보들을 검증할 만한 다른 문화적 의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생활체육 정책이랄지, 문화유산에 대한 견해, 관광정책에 대한 포부, 도서출판 진흥을 위한 비전 제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 단체가 받은 답변서에서 이런 것들은 큰 차별성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문화가 차별성을 가져야 할 만큼 첨예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는 첨예한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듯 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늘 존재한다. 후보들의 옷매무새 하나, 말투, 어법,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모두 문화의 씨앗이 잉태돼 있는 까닭이다.

앞으로 또 다시 5년을 기다리지 않으려면, 그 씨앗들이 싹이 파란지 노란지,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살핌'의 길 위에서도 여전히 문화예술단체의 노력은 지속된다. 2002년 12월 19일까지. 또 그 후로도 오랫동안. 비교우위의 문화대통령이 절대우위의 문화대통령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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