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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52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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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52ㆍ끝>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나는 이 이야기를 허공에 썼다. 역시 허공에 불과한 왼손 검지손가락 끝으로. 어머니가 왼손잡이셨고, 나도 그렇다. 오늘날엔 왼손잡이 인간이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느러미발을 완전 대칭으로 움직인다. 어머니는 빨강머리였고 앤드루 매킨토시도 그랬지만 그 자식들, 나와 셀레나는 그 숱 많은 뻘건 머리칼을 물려받지 않았다. 오늘날의 인류도 그것을 물려받지 않았는데, 물려받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빨강머리가 없다. 나는 멜라닌 결핍증 환자를 직접 본 적이 없지만, 이제는 멜라닌 결핍증 환자도 없다. 물개는 지금도 이따금 멜라닌 결핍증에 의한 백색종이 나온다. 백만 년 전이었다면, 그런 물개의 모피가 오페라나 자선 무도회에 입고 갈 코트 감으로 여성들의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모피 같은 것도 옛 조상들에게 훌륭한 코트 감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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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지고 허공에다 글을 쓰는 것이 허망하지 않냐고? 내가 쓴 글은 아버지의 글, 혹은 셰익스피어, 베토벤이나 다윈의 작품에 못지 않게 오래갈 것이다. 알고 보면 그들도 모두 허공으로 허공에 쓴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 향기로운 바람 속에서 다윈의 이런 생각을 떠올려본다.

진화는 퇴화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것이었다.

맞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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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의 출발점인 1백만 년 전, 우주라는 시계장치의 지구 부분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지구의 부속품 중에 인간이라는 것들이 어디에도 맞지 않게 되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부속품들까지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라면 나는 그 고장이 수리 불능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 부속품의 설계에 몇 가지 수정을 가하고 나니, 지구 부분의 시계장치도 지금 같은 모양으로 영원히 재깍거리며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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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초자연적 존재나 비행접시를 타고 다니는, 내 아버지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외계인이 인류를 자연과 조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나는 '자연 선택의 법칙'이 아무런 외부 도움 없이 그 수리 작업을 마쳤다고 선서하고 증언할 용의가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양환경에서 가장 많이 살아남은 것은 최고의 어부들이었다. 두 손과 두 발이 지느러미와 아주 흡사하게 된 그들은 최고의 수영선수들이기도 했다. 고기를 잡는 데나 쥐고 있는 데나 어느 모로 보아도 튀어나온 턱이 손보다 나았다. 그리고 모든 어부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물 속에서 보내면서, 유선형에 가까울수록, 총알 모양에 가까울수록, 그러니까 두개골이 작을수록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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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내 이야기는 다 끝났다. 미처 다루지 못한 몇 가지 사소한 이야기가 있는데, 특별한 순서 없이 여기에 덧붙이기로 한다. 이젠 정말 서둘러서 이야기를 마쳐야 한다. 아버지와 푸른색 터널이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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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람들도 자기가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알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내가 보기에는 잘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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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은 살아생전에 재생산을 했는가? 해병대에 입대하기 직전 산타페에서 뜻하지 않게 한 여고생을 임신시킨 적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교장이었고, 그녀와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사이였다. 우리는 그저 장난을 친 것뿐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이 다들 그러지 않았던가. 그녀는 낙태를 했고, 비용은 그녀 아버지가 댔다. 딸이 될 아이였는지 아들이 될 아이였는지는 우리 둘 다 알아볼 생각도 안 했다.

그 일에서 한 가지 확실한 교훈을 얻었다. 이후로는 나나 상대방이 피임기구를 사용하고 있는지 항상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결혼은 한 적이 없다.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 백만 년 전의 전형적인 피임기구를 장착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보기 민망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도무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그것도 손이 아니라 지느러미발로 끼워야 한다고 상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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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무기간중 잡목과 풀이 덩어리를 이룬 자연 뗏목이, 태운 것이 있든 없든, 어디서 온 것이든, 하나라도 이곳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일이 있었는가? 없었다. 바이아 데 다윈 호가 좌초한 이후 어떤 종이든 대륙의 것이 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온 적이 있었는가? 없었다.

하기야 내가 이곳에 있었던 시간이 백만 년뿐이니, 또 모를 일이다. 사실 백만 년이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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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해서 베트남에서 스웨덴까지 갔는가? 내 가장 좋아하던 친구와 제일 미워하던 놈을 수류탄으로 죽인 악랄하기 그지없는 적, 그 늙은 여자를 내 손으로 쏘아 죽이고 우리 소대원들이 그 마을을 깡그리 태워 없앤 후, 나는 소위 '신경쇠약'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나는 친절하고 애정어린 치료를 받았다. 그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장교들의 방문도 받았다. 우리 소대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 마을 사람을 쉰아홉 명이나 죽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누군가가 나중에 그 수를 확인한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외박을 나왔다가 알코올과 마리화나로 이빠이 오른 상태에서 사이공의 창녀에게 매독을 얻었다. 그 병 역시 오늘날엔 없는 종류다. 그 병의 증상은 타일랜드의 방콕에 도착해서야 나타났다. 나를 그곳에 보낸 것은 소위 '안정과 휴식'을 위해서였다. 이 말이 더 많은 창녀와 마약과 술을 의미하는 은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매춘은 당시 쌀 다음으로 타일랜드의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이었다. 그 다음은 천연고무, 그 다음은 티크 목재, 그 다음은 주석이었다.

나는 매독에 걸렸다는 걸 부대에서 모르길 바랐다. 그 사실이 발각되면 치료기간 동안 봉급이 삭감될 것이었고, 또 그 기간만큼 베트남 근무가 늘어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방콕에서 개인병원을 찾았다. 그곳의 동료 해병이 나 같은 환자를 취급하는 젊은 스웨덴 의사를 추천했다. 그곳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의사였다.

첫 방문 때, 그는 내게 전쟁에 관해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우리 소대가 그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에게 저지른 짓을 발설하고 말았다. 그는 당시의 내 느낌을 물었고, 나는 그 끔찍한 상황에서도 별 느낌이 없었던 것이 그 경험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고 대답했다.

ㆍ ㆍ ㆍ

"나중에 많이 울었습니까? 불면증은 없었고요?" 그가 다시 물었다.
"아뇨. 사실 난 잠만 자고 싶어서 입원했던 겁니다."

울음? 떠오르지도 않은 생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울보는 아니었다. 해병대가 나를 사나이로 만들어주기 전에도 그다지 잘 우는 편이 아니었다. 빨강머리에 왼손잡이셨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나를 버리고 나가셨을 때도 울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그 스웨덴 의사가 한 말이 드디어 나를 울려놓고 말았다. 마침내! 마침내! 내가 울고 또 울자, 그도 나만큼이나 놀랐다.

그가 한 말은 이 것이었다. "이름이 트라우트군요. 제가 좋아하는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 선생과 혹시 친척이라도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의사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사람으로 내가 뉴욕 주 코호스 밖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필사적으로 글을 쓰셨던 아버지가 헛되이 사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음을 타이의 방콕까지 와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ㆍ ㆍ ㆍ

의사의 말에 어찌나 울었던지 진정제까지 맞아야 했다. 한 시간 후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병실엔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좀 괜찮습니까?"

"아뇨. 아니, 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종잡기가 어렵네요."

"한잠 자고 계시는 동안 당신의 증상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아주 강력한 처방이 있습니다만 쓰고 안 쓰고는 당신 맘입니다. 큰 부작용이 따를 수 있으니까요."

나는 그가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라 매독균이 항생제에 얼마나 강한 저항력을 얻었는지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커다란 뇌는 이번에도 틀렸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스웨덴으로 정치망명을 하고 싶다면 방콕에서 스웨덴까지 나를 데려다줄 친구들을 소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어를 못 하는데요." 내가 말했다.

"배우면 되지요." 그가 말했다. "배우게 될 겁니다. 틀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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