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의 시대는 갔다,고 떠들어댄 일부 평자들은 성급했다. 여전히 그는 한국영화계에서 중요한 배우다. 이번 <음란서생>은 한석규의 가능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그가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더 이상 한 군데에 고여 있지 않음을 증명해 냈다. <음란서생>뿐만이 아니다. 그는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듯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거나 혹은 출연할 예정으로 있다. 새영화 <구타유발자들>은 곧 개봉예정이고 그의 본색에 걸맞는 멜로영화 <미열>은 막 촬영이 시작될 참이다. 따라서 그 말이 맞다. 한석규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
<음란서생>에서 육의전의 장사치 황가(오달수)는 한석규가 맡은 김윤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리를 감히 저의 보물이라고 말씀 드려도 될지?" 그런 황가의 고백을 슬쩍 빌리면 한석규는 국내 영화계에서 여전히 보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진맛(영화속에서 뭔가 더 외설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깊은 맛을 느낄 때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됨)'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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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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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음란서생>은 놀랄만한 변신이었다. 영화 초반부 김윤서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상소를 쓰라는 집안 어른들의 요구에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움츠려 있는 '겁쟁이'가 아니다. 우연히 접한 음란서적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되고 그는 음란서를 쓰면서 생의 보람을 찾는다. 가히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그 욕망에서 기쁨을 찾는 캐릭터를 한석규란 배우에서 보게 되는 건 이번이 거의 처음인 셈이다. 김윤서가 일필휘지로 붓을 휘두르며 자기가 하는 짓이 즐거워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은 이러한 변신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당대의 문장가라는 지식인적 아우라를 여전히 지니고 있지만 음란하고 난잡한 말과 체위를 즐기는 모습은 기존의 한석규 페르소나를 완전히 뒤집는다. 결국 갖은 고초를 겪고 귀양살이를 하게 되어도 그는 여전히 음란서를 쓰면서 즐거울 수 있다. 김윤서를 통해 한석규는 우울하고 고뇌하던 과거의 캐릭터들을 청산하고, 현 시대의 욕망을 체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의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전형적인 현대 남성상이라고 생각됐던 한석규가 사극을 통해 이런 변신을 이뤘다는 것도 꽤 흥미로운 사건이다. <음란서생>의 초반부에는 또 이런 장면이 있다. 김윤서(한석규)가 의금부도사 이광헌(이범수)의 숙소에서 깨어나는 장면이다. 스크린의 전경에는 이광헌이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배경 저 멀리서 윤서가 일어나 점잖게 갓을 매기 시작한다. 이광헌과 함께 그림을 표구하던 저잣거리 범죄조직을 찾아 나서긴 했지만 동생을 고문했던 가문의 숙적 이광헌과의 관계가 단 한번의 수사로 친밀해질 수 없을 터다. 게다가 남의 숙소에서 실신해 있었으니 이광헌의 불친절한 핀잔에 영 서먹하고 어색한 마음이 들 것이다. 배경에서 그는 어정쩡하게 갓을 매고, 쭈빗거리며 걷기 시작한다. 시선의 사각지대가 되기 쉬운 배경에서 한석규는 작은 동작 하나로 그 상황에 처한 윤서의 난처함을 드러낸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장면에 불과하지만 한석규는 동작 하나 놓치는 게 없다. 이처럼 한석규가 영화적인 디테일을 터득한 배우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예는 이 영화, 이 장면뿐이 아니다.
. 가장 영화적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데뷔 초부터 한석규는 당대의 그 어떤 배우보다 '영화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였다. 물론 TV드라마로 데뷔해 <서울의 달>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영화계로 넘어와서야 그의 연기는 비로서 물이 올랐고 경력 역시 만개하기 시작했다. 과장된 몸짓과 발성으로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연극적 연기와 극적인 클로즈업과 표정에 의존하는 TV 드라마의 연기는 사실 한석규란 배우와 썩 궁합이 맞아 보이지 않았다. 한석규는 이 양쪽 예술 영역이 간과하는, 일상의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린 듯한 디테일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영화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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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프레시안무비 |
<8월의 크리스마스>야말로 이른바 한석규다운 연기의 대표적인 영화에 속한다. 죽음을 앞둔 사진사 '정원' 역을 맡은 그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 영화에서 시한부 삶에 따른 체념과 생의 미련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연기해냈다. 곧 울어버릴 것 같은 여동생 옆에서 무심하게 수박씨를 뱉고, 잠이 든 다림(심은하)을 향해 선풍기를 돌려주던 장면에서 우리는 클로즈업된 한석규의 표정이 아니라 한석규의 미세한 동작들을 기억하게 된다. 90년대 중후반 한석규의 연기가 그토록 사랑 받았던 것은 그의 섬세하면서도 일상적인 연기들이 '영화적 연기'를 본격적으로 필요로 하던 당시 영화계의 요구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 90년대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한석규는 자타가 인정하는 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의 페르소나였다. 지금의 한국영화 살림은 설경구, 최민식, 송강호를 비롯한 숱한 배우들과 스타들을 자랑스런 식구로 거느릴 정도가 됐지만 90년대 한국영화계의 '스타배우'는 오로지 한석규뿐이었다. 사람들은 한석규의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몰려갔고 그의 영화를 보며 90년대를 지나왔다. 그는 당대 최고의 흥행배우로 불렸고, 그가 출연한 영화는 대체로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보는 눈에서만큼은 어떤 배우도 따라올 수 없다는 찬사도 뒤따랐다. 안성기, 박중훈 등의 배우가 여전히 건재했지만 그는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고 다양한 장르영화들이 출현하고 신선한 작가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계에서 그들과는 좀 다른 질감을 가진 배우였다. 영화 데뷔작인 <닥터봉>은 당시 충무로의 트렌드를 그대로 따른 선택이었지만 그 뒤 그의 출연작들은 한국영화계에서 한 가지쯤 굵직한 의미를 지닌 영화들이다. 흥행의 마이다스로 불리는 강제규 감독이 연출한 <은행나무 침대>와 <쉬리>는 한국에서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최초로 확인한 영화들이었다. 장윤현 감독이 연출한 <접속>은 통신과 OST로 현대적 감수성의 유행을 몰고 왔고, <넘버3>는 그 뒤 폭발적 흥행 뇌관이 된 깡패/조폭영화의 모태가 되었으며, <텔 미 썸딩>은 하드코어라는 신종의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산업의 경계에서 작가적 비전을 모색한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감독들의 데뷔작이었다. 이렇게 90년대 한국영화계의 세 가지 전환 및 진화와 한석규의 필모그래피는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는 90년대 그가 출연한 영화들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당시 유일한 '스타배우'로서 그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고 이것이 산업적 안전망이 되어줌으로써 한국영화계가 질적 전화를 마련할 수 있는 데 기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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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록 개인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99년 이후 2000년대로 넘어오는 3년간 그의 영화경력에 공백이 생겼다는 것은 한국영화계 전체를 조망해보면 꽤나 의미심장한 것이다. 한국영화계의 비약이 이뤄지면서 2000년대 이후 한석규의 위상은 예전만 못했다. 이는 그가 90년대 수행했던 역할을 이제는 나눠 안을 배우들이 많이 출현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2000년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남성성에 한석규의 페르소나가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단 2000년대 출연작품들을 보라. <이중간첩><주홍글씨><그때 그사람들><미스터 주부 퀴즈왕><음란서생>은 여전히 시나리오에 대한 한석규의 심미안을 보증해주는 웰메이드 영화들이긴 하지만, 2000년대 한국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영화들은 아니다. 한석규의 크레딧이 든 영화 간판이 걸렸다 하면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던 90년대에 비하면 관객동원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한석규를 보러 영화관을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컨셉에 더욱 의존해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 한석규가 출연하느냐, 아니냐는 이제 부차적인 옵션이 된 것이다.
. 고뇌하는 인텔리의 전형 다양한 영화들을 넘나들긴 했지만 한석규가 맡은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다. 공통적으로 지적이고 인텔리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유약하거나 심약한 남자,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운명에 굴복하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캐릭터가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여성과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으로 사랑을 획득하지 못한다. <은행나무 침대>에서 수현은 전생의 연인과 현생의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며, <접속>의 방송국PD 동현은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자신에게 적극적인 여성을 부담스러워 한다. 비록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사진사 정원은 단 한번도 다림에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텔 미 썸딩>의 조형사는 용의자에게 유혹을 느끼면서도 선선히 다가서지 못한다. 사회적 억압과 비극적 운명에는 거의 희생당하기 일쑤다. <초록물고기>의 막동은 도시의 비정함에 순수를 훼손당하고 결국 원치 않은 살인 끝에 두목에게 죽음을 맞는다. <그때 그사람들>의 주 과장은 상사가 기획한 거사에 어이없이 휘말리고, <이중 간첩>의 림병호는 분단된 조국에서 남북을 오가다 역사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런 한석규 캐릭터를 다른 배우와 극명하게 대비해 볼 수 있는 예가 <쉬리>에서 최민식과의 대결 신이다. 남조선의 배부른 돼지들을 비난하며 통일의 당위성을 설파하던 박무영의 분노 앞에서 남쪽 비밀요원 유중원은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한다. 그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난처하게 박무영을 바라볼 뿐이다. 이 장면은 한석규와 최민식이라는 두 배우가 대표하는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을 단박에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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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석규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목표에 따르는 주체적 의지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머뭇거리고 고뇌하면서 선뜻 행동에는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 그가연기한 배역들의 특징이었다. 여기에는 강한 남성성의 상실, 번민을 권하는 사회라는 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당시의 시대적 공기도 어느 정도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시대의 흐름이 달라진 2000년대 이후 당대의 시대상과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배우군에서 한석규는 급격히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최근작들을 보면 한석규 캐릭터에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미스터 주부 퀴즈왕>은 흥행이나 비평 모두 신통찮은 반응을 얻은 범작이지만 한석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남자로 출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만하다. 주인공 진만은 정리해고의 물결 속에 일찌감치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했지만 이 상황에 비관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업주부로서의 적성을 발견하고 오히려 이 주부로서의 정체성을 즐긴다. 퀴즈대회에 나가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도 여느 출연작에서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결국 한석규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건, <미스터 주부 퀴즈왕>이든 <음란서생>이든, 새영화 <구타유발자들>이든 그가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변화한다는 건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있다는 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석규는 여전히 조용하다. 그는 공식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굳이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영화가, 그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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