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던 바트 베르트리히 쿠어호텔 퓌어스텐호프에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3개 국어가 통용됐다. 기자회견장 한 편에는 '구텐 탁'이란 독일어 인사가 끊이지 않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프랑스어 '봉주르'란 말이 터져 나왔다. 호텔 주변에는 이탈리아어 '포르자 스위체라(스위스 이겨라)'를 연호하는 팬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스위스는 지역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다르다. 하지만 스위스 정치, 경제의 주도권은 독일어를 쓰는 취리히 지역에서 잡고 있다. 스위스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실력보다는 그 선수가 어느 지역 출신이며 어떤 언어를 쓰느냐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를 쓰는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 분위기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와 잉글랜드 출신의 로이 호지슨이 스위스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하면서 실력 위주의 선수 선발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도 독일어 쓰는 사람들이 스위스 축구를 독점하는 현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위스 축구는 2000년대 이후 확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주축은 '세콘도'들이었다. '세콘도'란 스위스로 건너온 이민 2세를 뜻하는 말이다.
24일(한국시간) 스위스가 한국을 2-0으로 제압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선수들도 '세콘도'였다. 정확한 왼발 프리킥으로 스위스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던 하칸 야킨과 그 공을 헤딩슛으로 연결한 필리페 센데로스도 모두 '세콘도'다. 한국전에서 날카로운 감각을 보였던 야킨은 터키 혈통의 이민자다. 골을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중앙 수비수로 책임을 완수한 센데로스의 아버지는 스페인계이고 어머니는 세르비아계다.
그밖에도 오른쪽 측면 돌파로 스위스 공격의 물꼬를 튼 트란퀼로 바르네타는 이탈리아계 이민 2세이며 재능있는 미드필더 리카르도 카나바스는 스페인계 이민 2세다.
스위스의 빠르고 정교한 역습 작전은 언어가 다양한 스위스의 장점을 잘 접목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수비에 치중하며 기회를 엿보다 순간적인 역습으로 나서는 이탈리아 축구 스타일, 프랑스 축구의 쇼트 패스 게임, 그리고 엄격한 훈련을 통한 조직력을 중시하는 독일 축구의 전통이 잘 어우러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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