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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신'인가? '정치의 비정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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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신'인가? '정치의 비정함'인가?

[지방의회 돋보기] 한미FTA 협상중단안의 '사실상 폐기'

5.31 지방선거 다음 날 당선자 교부증을 받으러 갔을 때 일이다. 전주의 1급 호텔에는 수많은 기자들과 축하객들이 모였다. 도지사와 네 명의 비례의원들에게 당선교부증이 주어지고 한마디씩 소감과 각오를 밝히는 순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차례가 왔을 때, 간단한 인사와 각오를 밝힌 뒤 경직된 분위기를 풀 겸 노래도 한 자락 불렀다.
  
  그래서인지 처음 어색하던 분위기는 행사가 끝난 뒤에는 친근감을 표하는 말들로 돌아왔다. 많은 의원들이 필자의 지인들을 거론하면서 동질감과 유대감을 표했다. "앞으로 당을 떠나 협력해서 일해보자"고 했다. 한 기자는 "민주노동당의 유일한 의원인 만큼 기대가 크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내심 걱정했던 민주노동당에 대한 편견이 없는 듯해서 기뻤다. 홀로 싸우기 보다는 다른 당 소속 의원들과 좋은 관계를 통해 모든 일을 잘 풀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필자의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중 한미 FTA 문제를 다루는 의원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상임위 간담회에서 필자는 한미 FTA 협상과 관련해 "의원들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도의회의 입장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원장은 "혼자 외롭게 하지 말고 함께 공유하면서 하자. 자료는 오 의원이 준비해보라"고 했다. 참으로 기뻤고 자신감도 생겼다. 열심히 자료를 준비했다. 11명 의원의 서명을 받아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위한 전북도의회 결의안'도 제출했다.
  
  그러나 7월18일 열린 본회의에서 상정된 결의안이 채택되려는 순간, 열린우리당 소속의 한 의원이 "한미 FTA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그러나 정부의 졸속협상을 비판하면서 도의회에서 이렇게 졸속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결국 필자가 한 발 물러났다. "이번 기회에 한미 FTA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것을 전제로 28일 폐회 때 채택하기로 동의해줬다.
  
  폐회까지 열흘의 시간동안 의원들이 한미 FTA에 관심을 가지도록 필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심지어 <MBC> 'PD수첩'에서 한미FTA 2탄이 방송될 때는 37명 전체 의원들에게 시청을 바란다는 문자도 보냈다. 또한 한미 FTA 협상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회를 준비하고 의원들을 한사람씩 직접 만나 참석을 요청했다. 참석율은 저조했다. 하지만 설명회에 참석한 의원들은 "한미 FTA 협상 전반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해줬다.
  
  하지만 폐회일이 다가올수록 의장과 열린우리당 몇몇 의원들로부터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중앙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협상에 대해 지방의회가 중단 결의안으로 채택할 수는 없지 않느냐. 협상 중단 결의안이 아니라 반대 건의안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숱하게 왔다. 급기야는 본회의 하루 전 모 의원이 찾아와 "오 의원이 원안대로 가기를 고집한다면 당 대표들끼리 부결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결국 28일 본회의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이 발의한 수정동의안이 찬성 21, 반대 15로 채택됐다(전북도의회는 열린우리당 22명, 민주당 13명, 무소속 2명, 민주노동당 1명이다). '한미 FTA 농업보호 촉구 건의안'이라는 이름의 이 수정 동의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한미 FTA 찬성안이었다. 실로 교묘하고 악랄한 수법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다수결은 따라야 할 룰이다. 그러나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힘내라. 당을 떠나 지지한다"고 얘기했던 사람들이 '사실상 한미 FTA 찬성안'에 서슴없이 손을 드는 모습에서 다수결의 논리에는 '비정한 정치'가 작동되고 있음을 느꼈다. 소속한 당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무소신이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농민, 노동, 시민단체 회원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이들의 처사에 야유를 보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의회에 들어와 처음 접하는 배신의 현장이었다. 의원 개인의 권한과 소신, 자율성이 철저히 무시된 채 거수기로 전락한 그들을 봤다. 우리 농민들과 국가의 이익보다 알량한 당론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 정치의 한계는 차라리 슬픈 코미디 같았다. 근거 없는 자부심과 우월감이 넘쳐나는 이 정치꾼들과 4년 내내 맞닥뜨려 싸워야 하는 현실도 암담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희망을 봤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15명의 의원이 함께 해줬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없는 기초의회에서 한미 FTA중단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공무원들도, 정책연구원들도 한미 FTA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연구해야겠다고 했다.
  
  필자의 활동을 성원해주는 90여개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무엇보다 활활 타오르는 민심을 믿는다. 비록 결의안은 부결됐지만, 한미 FTA 협상의 부당함에 대해 의회 안팎에서 다시 힘을 모아낼 수 있는 자신감의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오는 8월 말에는 도의회 차원에서 한미 FTA 토론회가 열린다. 필자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의안이 부결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토론회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을 줄 안다. 그러나 의회 안팎에서 한미 FTA의 부당성이 봇물 터지듯 밝혀지는 상황에서 필자 역시 주어진 몫을 당당하게 해낼 것이다.
  
  오은미 의원은 전북 순창의 회문산 자락에서 남편, 아이 셋과 함께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입니다. 여성농민노래단 '청보리사랑'에서 활동하는 등 그동안 농민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북 도의회 내에서 풀어내겠다는 의지도 야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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