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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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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특집] 9.11 이후 로드무비 부쩍 늘어

9.11 이후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는 부쩍 로드무비가 늘었다. 주인공들은 툭하면, 짐을 싸서 여행길에 오른다. 그것도 그냥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혹은 서부에서 동부로 대륙을 건너가는 '횡단여행'을 치른다. 왜 할리우드는 횡단을 꿈꾸는가. 그 횡단의 한복판에서 할리우드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의 영화평론가 A.O.스콧은 이를 두고 '치유의 미학을 찾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다소 오래된 글이지만 9.11 이후 할리우드의 새로운 경향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을 번역해 싣는다. - 편집자
카메론 크로의 <엘리자베스타운>에서 쾌활한 스튜어디스인 클레어 콜번은 남자 주인공 드류 배일러에게 켄터키에서부터 오레곤 집까지 자동차로 여행하라고 권한다. 드류는 클레어가 준 정교한 멀티미디어 가이드, 즉 지도와 각종 설명, 그리고 CD를 갖추고 대륙횡단 여행길에 나선다.
엘리자베스타운 ⓒ프레시안무비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사랑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드류의 자동차 여행은 영화 카메라까지 끼인 3각관계(미국, 자동차, 카메라)를 연상시킨다. 이런 삼각관계는 버디영화, 도주영화, 실존적 방황영화,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이종결합 영화에 이르기까지- <델마와 루이스>, <레인맨>, <이지 라이더> 등 - 다양한 작품들에 등장해왔다. 이런 영화들은 무엇보다도 우리(미국인)로 하여금 끝없이 포토제닉한 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되살리게 한다. 또한 영화 산업과 미국의 나머지 간의 인식차를 새삼 생각케 만들기도 한다. 클레어는 켄터키 루이스빌부터 테네시주 멤피스를 거쳐, 미시시피강과 오클라호마에 이르기까지 드류를 조심스럽게 데려간다. 그러는 동안 자동차 오디오에서는 제임스 브라운부터 U2, 스티븐 포스터에 이르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엇보다 미국의 자연풍경은 비주얼적인 광대함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민주주의의 자취 등을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드류는 직장에서의 해고와 아버지의 죽음 등을 경험하면서 대륙횡단 여행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보다 큰 이슈가 서로 씨줄날줄처럼 얽힌다. 크로 감독은 대가족 내의 긴장, 개인 내면의 긴장, 작은 마을에서의 안락한 삶과 성공욕구 간의 긴장 등을 탐구하고 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낡았지만 의지할 만한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치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유사한 치유적 관광 에피소드는 빔 벤더스의 영화 <랜드 오브 플렌티>의 마지막 부분에도 등장한다. 벤더스의 미국 풍경과의 애정관계는 84년 <파리 텍사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스앤젤레스의 가난한 동네에서 주로 일어나는 이야기인 <랜드 오브 플렌티>는 <엘리자베스타운>과 그리 다르지 않게, 미국의 단절된 관계, 가족의 소외 등을 다루고 있다. 이타적이며, 정치적으로 진지한 젊은 여성인 라나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아저씨 폴을 찾기 위해 로스앤젤레스로 온다. 결국 라나와 폴은 죽어가는 라나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미국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발견하는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랜드 오브 플렌티 ⓒ프레시안무비
<엘리자베스타운>에서처럼 <랜드 오브 플렌티>도 감동적이다. 미국 자연풍경의 아름다움이 미국 사회 내의 가장 추악한 면까지도 달랠 수 있을 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거의 신화적인 필요성에 대해 부분적으로 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 풍경을 그 어떤 분열도 통합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클레어가 선택한 장소들을 이런 아이디어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드류는 멤피스에서 로레인 모텔에 가는데, 이곳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살당한 곳이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드류가 들르는 기념관은 연방건물 테러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클레어는 이런 기념관들의 상처를 달래는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그들의 존재 이유인 미국 내의 정치 테러리즘의 측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략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 그리고 관광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안전과 친근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25시 ⓒ프레시안무비
<엘리자베스타운>과 <랜드 오브 플렌티>는 결론 부분에서 다소 다른 목적에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 또 다른 영화를 연상시킨다. 바로 스파이크 리의 2002년 영화 <25시>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뉴욕의 생생한 모습, 분노와 무드를 그려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다.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몬티 브로건은 무기 중간상이다. 그는 7년형을 치르기 위해 뉴욕주 북쪽으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는 서부로 가라고 제안을 한다. 작고 황량한 마을에서 아버지는 몬티가 과거의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유혹적인 시나리오다. 테렌스 블랜차드의 음악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눈에 눈물이 고여온다. 같은 주제를 크로와 벤더스가 변주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차이점은 스파이크를 미국을 센티멘털하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판타지의 파워, 그리고 그것이 판타지임을 인식하는 힘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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