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명박 당선인, 영어를 입시에서 지워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명박 당선인, 영어를 입시에서 지워라"

[기고] 영어 교육, 해법은 우리 안에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외우면 잊어버리는 영어 단어 암기를 위해 쏟아 부은 수많은 시간들, 난해한 영어 문장을 문법이라는 칼로 갈기갈기 찍어 그 뜻을 이해하려던 잔인한 시간들, '누구는 책을 통째로 외운다고 하더라', '누구는 사전을 씹어 먹었다더라'는 황당한 괴소문에 시달려 지새운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수학 문제를 풀던 기억보다, 국어를 이해하는 시간보다, 세계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시간보다, 사물의 이치를 이해하는 시간보다, 8절지 앞뒤를 빈틈없이 휘갈겨 영어 단어로 채우던 시간이 더욱 똑똑히 떠오른다. 그렇게도 수많은 시간을 보냈건만, 정작 대학생이 되어 폼 삼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던 <타임> 기사 한 줄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AFKN> 뉴스 한 마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따라 부르고 싶던 팝송 가사 한 줄을 받아 적을 수 없었다. 물론 외국인이 말을 건네면 친구 등짝을 밀며 숨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럴 바에야, 그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 더 풀었으면 지금 펀드 수익 계산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언제나 손해 보는 개미 신세는 안 되었을 텐데, 과학 공부 더 했으면 '컴맹' 소리 안 듣고 컴퓨터도 같이 조립할 줄 아는 '쿨'한 아빠가 되었을 텐데, 역사 공부 조금 더 했으면 '왜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켰어?'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한바탕 역사강의를 하며 으쓱했을 텐데…. 다 집어 치우고, 그 시간에 기타라도 제대로 배웠으면 지금쯤 기타 치며 멋진 노래 한 곡 폼 나게 불러 봤을 텐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가? 우리네 젊은 청춘을 바친 영어 공부인데 말이다. 고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오한 철학도 아니고 암호 같은 물리 이론도 아닐진대 말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이상한 것이 있다. 이상하게도 외국에 몇 년 나갔다 온 사람들은 <타임>도 읽고, 미국 영화도 자막 없이 보고, 외국인 만나면 거침없이 얘기도 하고. 더더욱 신기한 건 어린 아이들은 더 금방 배운단다. 사실 그 쪼그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영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수 많은 공신들의 비법을 총동원해도 되지 않던 일들을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는 게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아무리 그래도 '문법만큼은 나한테 안 되지', '문법이라는 게 사람으로 치면 뼈대와 같은 건데 그걸 모르면 사상누각이지' 하며 스스로 위안해 보지만 씁쓸한 건 왜일까?
  
  뭐가 잘못된 건가? 외국에서는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인가? 세상 방방곡곡을 다니며 신기한 것 있으면 금방 찾아내고 빨리 배워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내기로 유명한 우린데, 어찌된 일인지 이런 마법은 도통 찾아내지를 못한다. 아마도 외국에서 국가기밀로 교묘히 보호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집에 앉아서는 그 마법을 찾을 수 없기에 짐 싸들고 마법을 찾아 나선다. 순전히 그 '마법'을 찾아서. 먹고 살아야 하기에 마법을 찾아 엄마와 아이들로 구성한 특공대만 보내고 한국의 아버지들은 기러기처럼 후방에 남아 먼 발치에서 먹이를 모으며 가족을 그리며 기다린다. 그 놈의 '마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영어 공부 조금하고도 말도 할 수 있고 제대로 읽을 수도 있고, 조금 하니 다른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어 더 똑똑해지고, 마법을 찾아 가족들이 생이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심지어 국가 경쟁력도 높아지고 더 잘 살게 될 그런 방법은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는 것인가?
  
  있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아주 손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영어를 입시에서 지우는 것이다. 무슨 미친 소리냐고? 세상은 영어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판에 영어 한 줄 못하는 인간 만들자는 말이 될 법이나 하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읽어 온 사람들 모두 이쯤에서 ⓧ를 누를 것이다.
  
  물론 입시에서 아예 없애자는 애기는 아니다. 영어 평가를 통해 점수화 하지 말고 합격/불합격만 판단 하자는 것이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냐고? 언어를 입시의 중요 과목으로 채택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야기된다고 본다.
  
  자, 처음으로 되돌아가 자문 해보자. 왜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가? 그리고 얼마만큼 영어를 잘하기를 원하는가?
  
  국제 변호사 수준이고자 하는가? <CNN> 방송 앵커 수준이길 원하는가? 노벨 문학상에 나오는 영어 수준이길 원하는가 말이다.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자 신문 읽어 감 잡을 수 있고 배낭여행 떠나면 영어로 값진 세계여행 할 수 있고 대학 들어가면 원서 읽을 수 있고 <CNN> 뉴스나 미드(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으면 족하지 않은가. 국제 변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에 맞는 영어 공부를 따로 더 하면 될 것이고 말이다. 기업에서도 모든 사원들이 영어 통역사이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세익스피어의 난해한 수수께끼 같은 문구를 해석하며 논리공부를 하는 건지, 영어 학습을 하는 건지, 영문학을 공부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문제를 풀 능력을 갖추기 위해 밤잠을 쫓아내며 공부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언어는 긴 시간을 요구하는지라 이제는 초등학생까지도 외국을 전전하거나 그러지도 못하면 친구들이랑 뛰어 놀 시간에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이 모두 우리가 필요 이상의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영어는 언어다. 그저 삶에 필요한 말이다. 학교는 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면 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말을 하고 들을 수 있는 능력'말이다. 그 다음은 개인의 몫이고 그 개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의 몫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 배운 기본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한 전문 언어 능력은 각자가 따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배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 영어를 더 이상 개인의 능력을 대변하는 척도로 활용하는 관습이 최소한 학교에서는 사라져야 한다. 개인의 능력은 다른 지식과목을 통한 지식의 습득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올바르다. 배운 만큼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니 이런 과목들은 당연히 입시에서 성적으로 평가 할 일이다.
  
  영어교육은 일정한 수준의 단어력, 독해력, 문법력, 회화력, 청취력만 테스트를 하고 일정 이상만 되면 합격하는 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리하면 더 이상 당락을 결정하는 한점 한점이 중요한 과목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어 사교육 문제, 그리고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적잖이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학생 개인에게는 끝 모를 단순 반복학습인 영어공부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 많은 시간을 창조적이고 지적인 학습에 더 쓰게 돼 지적 자극을 통해 학습의욕이 증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학력저하 문제 해소 등에도 기여하리라 본다. 무엇보다도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영어를 습득하면 보다 진취적인 국제적 감각을 키워나가는 초석을 다지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예를 들어 회화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선생님도 더 필요하고 시청각 시설도 더 필요하겠지만 그런 것들은 현재 영어 교육으로 인해 지출되는 사회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간단히 몇 가지 가능한 방법으로 먼저 영어권 교민들을 영어 교육에 활용하거나, 방송에서 영어 프로그램 더빙 대신 영어/자국어 자막을 넣는 방법 등을 쉽게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생활과 문화가 다른 영어권 외국인 영어 교사를 초빙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어린 청년들이나 은퇴 후 고국을 그리워하는 노년교민층을 활용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조그만 아이들이 친구랑 놀면서 몇 개월이면 깨우치는 영어, 1~2년 외국생활 만으로도 가능한 생활영어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에서 벗어남으로서 우리의 역량을 비효율적으로 허비하지 않고 보다 진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지금이 그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인 통념에서 벗어나 발상의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처음으로 되돌아가 세운 목표의 진정한 의미를 되물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마법은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잠시 우리가 처음의 목적을 잊고 있었던것 뿐이다. 자 이제 알았으니 영어에서 해방되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