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래 전, 신형원이라는 가수를 세상에 알린 이 노래는 알 듯 모를 듯한 우리네 인생을 얘기하는 듯하다. 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때가 있다.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이상한 노릇이다. 유리벽 밖으로 세상은 보이는데 정작 닿지 않는, 잡히지 않는, 만져지지 않는 답답함은 우리를 쉬이 지치게 만든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를 읽으며 나는 '유리벽'에 둘러싸인 인생살이에 작은 희망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에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유리벽 밖 세상으로 나를 인도해주는 작은 비상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만큼 이 책은 삶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다독이고 보듬어준다. 그림과 심리학, 그리고 치유라는 양념을 버무린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아무래도 미술 에세이다 보니 여성 독자가 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남성 독자들이 제법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40대로 여겨지는 남성 독자 한 분이 메일을 주셨어요. 제 책 때문에 그동안 잊고 살던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그 꿈을 찾아 나설 용기를 얻었다고 말이죠. 책을 쓴다는 기쁨, 그리고 그만큼의 책임감을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그럴 만하다. 삶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 그리하여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발견했지만 내 곁에 가족이라는 혹은 그 이상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땅의 남성들에게 이 책은 그 어떤 자기 계발서도 안겨주지 못했던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이었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미술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대중을 위한 '맞춤형' 책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술의 길에 뛰어든 그녀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미술을 왜 어려워하는 걸까, 라는 물음표를 자주 던졌어요. 저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건 결국 미술이 와 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가 자신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걸 꺼려하면서 대중에게 자신의 작품을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던 지요." 이주은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 정답이란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림을 보는 것은 물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자신만의 자유롭고 엉뚱한 시선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글쓰기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안과 밖, 자아와 타자 등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 우리의 '유리벽'을 부수는 작업이라는 말로 풀어 써도 좋을 것 같다. 세상 어디를 보아도 가을임이 분명한 9월의 어느 날, 그녀가 몸담고 있는 이화여대박물관을 찾았다. .
이주은
-『그림에, 마음을 놓다』가 예술서 부문 베스트셀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쁘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쓸 때에는 "이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은근히 바라는 법이니까. 많은 분들이 책을 읽어주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림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귀신 이야기도 머나먼 공동묘지보다는 주변을 배경으로 삼으면 더 가깝게 느껴져 섬뜩하듯이 말이다. 가령 항상 타게 되는 엘리베이터 안이라든가, 늘 보는 화장실 거울 앞 같은 설정을 둔 것에 대해 친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 미술과 심리(학), 그리고 치유라는 성격이 절묘하게 잘 어우러져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는 책이다. 책을 쓰는 동안 저자 스스로도 위로받았던 그림이 있었을 것 같다. "언젠가 내 어리석음에 화가 나서 실컷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 온갖 인상을 다 찡그려가며 내 대신 시끄럽게 엉엉 울어주더라. 원래 나는 집착이 강한 편이었다. 공부를 해도 기왕이면 남보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무엇보다 그림이 나를 안아준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 그런데 정말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 또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떠다닌다. 그러다 어느 하나의 이미지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떠오르곤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상'상'(想'像', 'imag'ination)이라고 하는 모양 말이다.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머릿속의 이미지들을 바꾸어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픽션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간혹 그런 비슷한 생각들을 해본다. 가령 지금 본 장면이 머릿속 화면에 자주 뜨면 좋겠다거나, 아니면 그때 그 일의 이미지가 기억 속에서 영구 삭제되면 좋겠다거나 하는 생각 말이다. 마음의 상처 역시 결국 기억의 문제 같다. 힘들게 하는 상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끊임없이 그 사람을 괴롭히는 것…. 보통 심리치유 전문가는 마음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상을 말로 꺼내도록 유도한다. 그림으로 그려보라고도 하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로선 그때의 상황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사람에게 어떤 그림을 슬쩍 꺼내 보여주면 어떨까?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그 이미지가 혹시 이런 그림하고 비슷하지 않나요, 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림에, 마음을 놓(는)다'라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질문 내용대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에 자기 마음을 내려놓고 들여다보라는 뜻도 있고, 그림을 보고 마음을 평안하게 푹 놓으라는 뜻도 있다." - 언어학을 전공하고 수년 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이력이 흥미롭다. "언어학은 나에게 언어가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기호 체계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언어 소통 체계보다 이미지 소통 체계에 더 심취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맨 처음에는 미술작품은 아니었고, 광고 이미지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 그런데 그 순간 왜 하필 미술이었는가? "광고 이미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더니, 얕게는 사진이 등장하는 1830년대 무렵까지 가더라. 그런데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인간이 이미지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원시 동굴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텐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기호학적 해석과 라틴어 어원 등 언어학이라는 전공이 미술을 공부하는 데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 다음 책 작업이 궁금하다.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한 것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없다. 다만『그림에, 마음을 놓다』기획자와 간혹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이 글은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서 발행하는 e-매거진 51호에 소개된 글임-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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