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봉준호 감독, 송강호 주연의 2003년 최고흥행작 '살인의 추억'이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영화에 대해 말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 얘기하려는 이 작품을 간단하게 설명하려면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라고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접근법이기 때문이다.
| ▲ ⓒ뉴스테이지 |
1996년 초연 당시 연극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그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던 '날 보러 와요'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명의 여성이 희생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극 '날 보러 와요'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국 영화사에 방점을 찍은 '살인의 추억'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해 비상이 걸린 태안서에 동대문 강력계에서 자원한 김반장이 새로 부임한다. 의욕적인 반장의 지휘 아래 시인 출신 김형사, 다혈질 조형사, 능청맞은 박형사, 여기에 경기일보 사회부 박기자까지 끼어 사건을 파헤치고 수사는 활기를 띈다. 그러나 3명의 용의자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수사팀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젊어진 출연진은 오래된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07년 공연에서 반장을 연기했던 손종학이 다시 반장을 맡아 작품에 무게감을 주는 가운데 김준원, 송새벽 등 젊은 연극배우들이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신세대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것. 최재웅, 김재범, 임문희 등 인기 뮤지컬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의욕적으로 도전해 기대 이상의 호연을 펼치고 있는데, 특히 각기 다른 용의자 3명을 연기하는 김재범이 인상적이다. 최근 뮤지컬 배우들의 연극 무대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다양한 무대 경험은 분명 그들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날 보러 와요'가 단순히 실제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에 그쳤다면 이토록 오랜 기간 사랑받지 못했을 터. 살인 사건은 표면적인 소재일 뿐 이 작품이 수작인 진짜 이유는 인간의 다면적인 심리 묘사와 리얼리티에 기인한 진한 페이소스에 있다. '날 보러 와요'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추리물이라기보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여 지는 사람들의 복합적인 감정 묘사에 집중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현실감 넘치는 무대 위 이야기는 관객에게 뜨끔함과 안타까움, 분노와 동정심을 동시에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아시다시피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이제는 영영 범인을 알 수 없는 미제(未濟) 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이 공소시효에 대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듯 '날 보러 와요'를 본 관객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관객들은 저마다 범인을 잡지 못한 충격으로 안면마비가 온 김반장, 끝내 정신줄을 놓고 마는 김형사, 형사직을 때려치우는 박형사의 심정이 되어 공연장을 나설 것이고, 그 비극적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잊지 않는 한,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9월 20일까지. 신촌 더 스테이지)
- 이것만은 놓치지 말자
겁이 많은 관객이라면 세 번, 대범한 관객이라도 적어도 한 번은 '날 보러 와요'를 보며 화들짝 놀랄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지만 경찰서 창문을 예사로 보지 말 것. 엔딩씬에서 무대 중앙의 배우들만 보고 있다간 결정적 장면을 놓칠지도 모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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