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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문제 외면했던 민주당, 왜 반성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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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생문제 외면했던 민주당, 왜 반성은 없습니까?"

[기고] 정세균의 <정치 에너지>를 읽고 묻는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정치 에너지>(후마니타스 펴냄)을 놓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이어서,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전 국회의원)가 서평을 보내왔다. 제1야당 대표가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비전을 제시한 책을 내고, 이에 대해서 정치인, 정치학자가 논쟁적인 서평을 쓰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프레시안>은 최 교수의 서평에 이어서 심 전 의원의 서평을 소개한다. 10·28 재보선 이후의 정국을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 심 전 의원은 현재 진보·개혁 세력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짚는다. (☞관련 기사 :
"정세균 당신과 민주당을 '왜' 지지해야 하는가?") <편집자>

서평을 요청받고 솔직히 망설임이 있었다. 저자는 제1야당의 대표인 데다, 이 책에는 정치 지도자로서 혼돈과 정치 불신의 시대를 대하는 진솔한 성찰과 고뇌가 담겨있다. 나 역시 정치 현실에 책임 있는 당사자의 한사람인데 정세균 대표의 견해에 토를 단다는 것이 격에 맞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쓰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봉하 마을에 조문을 갔을 때 일이다. 조문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데 양복을 입은 분이 격앙된 얼굴로 우리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그 이는 '니들 그렇게 노무현 욕하더니 이제 속이 시원하냐?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린 법이야!'라며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오랫동안 뇌리를 맴돌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 그것도 노선을 달리하는 진보정당이 노무현 정부의 우경화한 정책을 비판했던 것이 어찌 흠이 되겠는가. 그럼에도 그의 원망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절규에는 '(노무현 정부를 비판한) 너희는 또 얼마나 똑바로 했느냐'라는 비판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러한 비판을 도리 없이 받아들이려 한다. 어찌 보면 정권을 내준 민주·개혁 세력이나 대안이 되지 못한 진보 세력이나 이제 모두 국민의 심판대 위에 서 있는 것이 괴롭지만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계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국 사회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이 혼돈의 시기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민주화 20년, 민주·개혁 세력 집권 10년 그리고 진보정당 실험 10년의 한계에 대한 성찰과 평가를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오류, 한계, 실패를 반추하고 정리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참담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것을 건너 뛴 채 국민에게 미래와 희망에 대해 말할 방도를 나는 알지 못한다.

▲ <정치 에너지>(정세균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정세균 대표의 <정치 에너지>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공동의 과제에 풀기 위한 소명의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나 역시 책임 있게 응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서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정세균 대표의 책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 나와 진보 정치에 대한 자성이라는 점을 우선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어려운 조건에서 책을 출간한 정 대표에게 존경과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주변과 담을 쌓고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듯 제1야당 대표의 자리는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기 어려운 분망한 자리이다. 그 와중에 이러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은 강한 소명의식에서 나온 투혼의 결과이리라. 사실 나도 진즉 출판사로부터 시리즈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정치인이라는 무게를 감당하는 만으로도 허덕이는 형편이라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책이 주는 교훈도 교훈이지만, 정 대표의 책은 먼저 나의 불성실함을 부끄럽게 한다.

흔히 정 대표를 보고 사람 좋은 분이란 말을 많이 한다. 부드러운 미소, 정돈된 풍모는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호감을 낳는다. 그러나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만으로 정 대표를 설명하진 못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차곡차곡 정리된 '정치인 정세균'의 성장과정과 고뇌를 보며, 부드럽고 반듯한 정세균에 더해 강한 의지와 에너지를 가진 외유내강의 또 다른 정세균을 발견한다. 또 이 책은 정치인으로서의 고뇌와 성찰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흡사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철학이 잘 정리된 교과서처럼 정갈하다. 정치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 몇 번이고 되새기게 한다.

이 책에서 아무래도 내가 가장 주의 깊게 본 대목은 진보진영에 대한 평가와 정 대표가 제시하는 비전이다.

정 대표는 '타협'은 '보통의 승리'라고 말한 미국의 사회운동가 알린스키를 인용해서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진보 정치 세력의 이상주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치는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서 평가받는다는 것, 따라서 굉장한 신념을 지키기만 하는 것보다 작은 신념이라도 실현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값어치가 있다는 것, 도덕적 우위에 기초해서 상대를 배척하고 모욕 주는 것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그의 비판은 상당부분 근거 있고 옳은 지적이다.

국민들은 목소리 큰 사람에게 박수는 쳐줄지언정 표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세력에게 준다. 문제제기 정당, 실험 정당이란 말은 과정에 대한 평가일 수는 있지만 정당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분명한 비전과 더불어 그것이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증거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 정치 세력이 운동권 정당을 넘어서야 한다는 비판을 운동권을 폄하하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비판과 반대를 넘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야한다는 취지로 받아드리며 깊은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읽으며 줄곧 가시지 않는 갈증과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분명 지난 10년 민주·개혁 세력 집권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 정세균 대표로부터 더 들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 책의 마지막에 새로운 연합을 통해 양당구도를 복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민생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라고 했다. 사실 노무현 정부에게 국민들이 서운함을 토로했던 것도, 그 결과로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것도 결국 민생문제였다. 돌이켜보면 나와 진보정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원망을 듣게 될 정도로 날을 세웠던 것도 역시 민생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야권의 연대, 연합 또는 재편을 가름하는 핵심 의제가 '민생'임을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야권을 힘 있게 묶어세울 '민생'의 내용과 방도에 대해 구체적인 구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그것은 정세균 대표가 개혁과 진보의 거리를 벌려놓았던 핵심 정책들-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정규직, 대형마트 규제 등-에 대해 분명한 성찰이 드러나지 않은데 대한 갈증과 맥을 같이한다.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의 비준을 서두르는 것을 무책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 논리야말로 정세균 대표가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던 시절, 노무현 정부가 만든 것이었다. 한나라당의 비정규직 법안의 개악에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지만, 현행 법안 자체도 비정규직의 눈물을 쏟게 했으며 그 법안을 만든 것은 열린우리당이었다. 개방 성공의 사례로 이마트 등 대형마트를 상찬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고, 산자부는 동네 슈퍼에 대한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민생연합'을 하려면 당연히 민주당도 책임 있게 반성하고 대안을 내 놓아야 하는 것들인데, 책의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지금 중도 서민 정책이란 포장지로 부자 정치를 은폐하려하는 이명박 정부의 책략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어갈 즈음 이런 아쉬움, 갈증과는 다른 좀 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정 대표가 피력한 대로 개혁 진영이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이동하고, 또 나와 진보 진영이 정 대표가 지적한 여러 진보 정치의 한계를 겸허히 성찰하며 현실정치에 다가가면, 정 대표의 바람대로 양당정치의 실현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았다.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은 오랜 세월동안 냉전과 독재에 맞서 싸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공동의 경험은 공동의 언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의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시민권을 제대로 향유하기도 전에 정치독재가 눌러 앉았던 자리를 시장독재가 차지했다. 한발 한발 나아가던 우리의 민주주의가 멈춰선 것도 그 곳이고, 진보와 개혁이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정 대표의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남는 거리는 '노동과 복지'에 대한 인식이다.

냉전은 '노동'을 역사로부터 유배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은 해방되지 않았다. 오히려 냉전과 권위주의가 '노동'에 씌워놓은 칼의 열쇠는 민주화 이후에는 잔인한 시장에 던져졌다. 집권한 민주·개혁 세력은 '노동'을 노동3권의 보장이나 노총의 지위를 인정하는 시민적 자유권의 수준으로 이해했다. 노동은 시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사회적 기본권으로서 자리매김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자유권과 참정권을 넘어 '노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기본권을 확고히 할 때 비로소 멈춰 선 박동을 힘차게 추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에 대해 정 대표는 '경쟁을 촉진하고 탈락한 사람들에 대해 따듯한 배려'를 하겠다고 했다. 정운찬 총리도 총리 내정 후 기자회견에서 "경쟁을 중시하고 촉진하되 뒤처진 사람들에게 따듯한 배려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같다"고 말했다. 배려의 양적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낙오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이른바 '잔여복지'란 개념에서 두 사람의 인식은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절망적으로 토로하는 고통은 '열심히 일해도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애당초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부모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또 어느 지역 출신이든 누구나 자신의 노력에 따라 개성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열망하고 있다. 교육, 의료, 문화, 주거 등 복지는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고 다양성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탈락한 사람들에 대한 온정주의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공정경쟁의 전제조건으로서 보편복지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세균 대표가 영국 보수당의 품격 있는 보수를 상찬하는 대목을 보며 언뜻, 민주당이야말로 그런 보수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는 안정적 양당제도를 꿈꾼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보수 정당으로서의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양립할 정도가 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서평을 마무리하며 <정치 에너지>를 통해 우리 정치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 정세균 대표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나와 진보 정치 세력도 책임 있는 성찰과 대안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도약과 정치를 바로 세우는 길로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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