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국회의장이 버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성인으로서 평균적인 읽기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어보면 국회의장에게 부과된 시정의무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법을 만들고 의무를 이행해야 할 국회의원들도 결정문이 길기 때문에 아예 읽지 않고 앞장만 보거나 읽고 싶은 부분만 읽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헌재가 판단한 위법 해소 방법
결정문은, 신문법과 방송법 모두 절차가 위법하다는 확인청구는 인용하고 무효확인청구는 기각하면서 위법절차 해소문제에 대해서는 두 법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기각결정 자체가 아니라 위법 해소방법에 대한 부분입니다.
| ▲ 한나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의 호위 속에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이윤성 부의장 ⓒ프레시안 |
헌법재판소법 67조 1항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의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고 되어 있고, 헌법재판소가 펴내 법률가들이 실무지침서로 쓰는 헌법재판실무제요에는 이 규정에 대해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는 헌법재판소가 법 제66조 제2항(무효확인청구)에 의거한 취소 또는 무효확인결정을 내린 경우는 물론, 권한침해의 확인 결정만 내린 경우에도 관련된 처분이나 부작위를 결정내용에 맞추어 시정하여야 한다.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준수하고 집행하여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에서 신문법에 대해서는 3명의 재판관이 절차가 무효이니 법도 무효라고 했고, 2명은 "기능적 권력분립과 국회의 자율권 존중의 의미에서 위헌 위법 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국회의장)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1명은 "사후의 조치는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해결할 영역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6명의 재판관이 국회 표결의 효력을 부인하거나 국회가 해결하라고 한 것입니다. 국회가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재판관은 3명으로, 1명은 경미한 하자에 불과해 입법절차에 관한 헌법규정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2명은 법률안 심의 표결권 침해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6:3입니다.
방송법에 대해서는 판시내용이 반대입니다. 2명만 무효라고 했고, 1명은 사후 조치는 국회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해결할 영역에 속하니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는 확인에 그쳐야한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6명 중 3명은 취소 또는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가 아니라고 했고, 3명은 심의 표결권 침해가 없다고 했습니다. 3:6입니다.
결정문을 그대로 읽기만 해도, 신문법에 대해 국회의장이 시정에 나서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은 시정의무가 없다고 계속 주장하니, 방송법 판시내용만 읽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른 시정의무
결정문에는 방송법에 대해 시정의무가 없는 것처럼 나와 있지만,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결정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헌법재판소법 67조 1항에 따르면, 국회의원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결정된 두 법 모두를 시정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되어야 맞습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도, 법제처장도 법사위에서 같은 내용으로 말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해석해준 것입니다.
일이 여기까지 왔는데도 국회의장과 한나라당은 줄곧 버팁니다. 대단한 뱃심이거나 지독한 오독증이거나, 둘 중에 하나로밖에 짐작되지 않습니다.
신문법과 방송법 함께 재논의 해야 하는 이유
헌법재판소 결정이 신문법과 방송법의 위법시정방법에 대해 상반되게 판단했다는 점 때문에 혼동스러울까 싶어 덧붙여둡니다. 이 두 법은 어느 하나가 재논의되면 다른 하나도 함께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되는 법들입니다. 두 법이 같은 내용을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문법과 방송법은 신문과 방송의 이종매체를 동시에 소유하는 것을 세 가지 형태로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한 법인 내 '겸영'금지입니다. 신문법 15조 2항과 방송법 8조 3항을 함께 읽으면,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이 지상파, 종합편성, 보도전문채널을 '겸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방송 입장에서 '교차소유'금지입니다. 방송사 주식 1/2을 가진 지배주주가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 주식의 1/2 이상을 가지는 것인데, 신문법 15조 3항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셋째, 일간신문과 뉴스통신 입장에서 '주식소유'금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간신문이나 뉴스통신 법인이 방송사업 법인의 주식을 갖는 것도 방송법 8조 3항으로 역시 금지되어있었습니다.
강행 통과된 신문법은 15조 2항과 3항을 없애서 겸영과 교차소유를 모두 허용했고, 역시 강행 통과된 방송법 8조 3항은 주식소유방식을 허용하면서 그 상한만 지상파 10%,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30%로 정했습니다. 결국 세 가지 방식의 이종매체 동시 소유를 모두 허용한 것입니다.
이 중 첫 번째 방법인 동일 법인 내 겸영금지는 신문법과 방송법에 함께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만일 신문법만 원점에서 재논의하게 되면, 신문법상으로는 겸영이 금지되고 방송법상으로는 겸영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논의하는 꼴이 됩니다. 두 법이 서로 충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문법과 방송법은 어느 하나가 원점 재논의되면 나머지도 같이 원점에서 재논의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점을 감안하더라도, 또 헌법재판소법 67조 1항에 따르더라도, 신문법과 방송법은 함께 재논의되어야 합니다.
길지만, 헌재 결정만 찬찬히 읽으면 국회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재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장께, 지금이라도 권한쟁의심판사건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다시 읽어보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명백히 내려진 결론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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