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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치던 김영삼, IMF 위기를 부르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⑤] 위기의 도화선, OECD 가입
김영삼 정권의 답변은 간단했다. 경제체질이 멕시코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튼튼해서 그런 사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모르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투였다. 경청은커녕 묵살만 일삼는 자세였다. 외환위기의 거대한 파고가 몰려오고 있었으나 예감조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2012.07.27 07:46:00
김영삼 정권, 세계화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④] 외환위기 부른 무분별 개방
김영삼 정권은 OECD에 가입한다고 외환-자본거래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자유화했다. 개방충격을 흡수할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았으니 그 후유증과 부작용은 심대할 수밖에 없었다. (…) 한국경제가 그 충격을 흡수할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가졌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
2012.07.26 07:56:00
고속철과 새만금은 득표용 날림 국책 사업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③]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것을 기점으로 소비에트연방공화국과 동구권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되었다. 1985년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의 등장은 공산주의의 대변혁을 예고했다. 그가 대내적으로는 개혁(perestorica)과 대외적으로는 개방(glasnost)을 주창하면서 철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했던 것이다.이에 따라 노태우 정권도 집권 초기부터 북방외
2012.07.25 07:53:00
물가폭등-증시폭락 부른 5개 신도시 졸속추진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②] 200만호 건설의 부작용
1986~1988년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에 힘입은 3저호황은 부동산 경기의 주기로 볼 때 사상최대의 부동산 투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13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는 엄청난 선거자금을 살포했고, 또 선거공약으로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했다.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격이어서 부동산 투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노태우 정권 출범을 전후하여 2~3년 사이에
2012.07.24 07:46:00
노태우의 '토지공개념', 왜 실패했을까?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①] 기득권층 반발로 무산
노태우는 산업의 현장, 생활의 터전에서 분출하는 소외계층의 욕구를 진정시키기 위해 형평, 복지, 분배를 강조했다. 지역-계층 간에 첨예하게 노정되는 갈등과 반목의 극복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은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를 양축으로 하는 경제정의를 내
2012.07.23 09:57:00
경제민주화 논쟁, 방향도 내용도 틀렸다
<1987~2012년 경제민주화 실패의 역사> 연재를 시작하며
문제는 양당의 경제민주화 방안이 재벌에 국한되어 전체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새누리당은 단순히 재벌의 신규사업에 대해 순환출자를 규제하겠다는 정도이다. 민주통합당은 경제민주화의 부분개념인 재벌개혁을 전체개념처럼 말한다. 논의의 방향도 내용도 틀렸
2012.07.20 07:5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