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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남을녀 수준의 돈 문제로…"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刀筆吏의 시대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가운데 정치 사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은 유가(儒家)와 법가(法家)였다. 전체적으로는 유가가 더 널리 퍼져 있었지만 진(秦)나라는 법가를 채택해 부국강병을 이룸으로써 천하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김기협 역사학자
2009.04.08 15:31:00
"동백꽃 지는 그 섬, 제주도여!"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解寃相生의 섬, 제주도
지금은 제주에서 동백꽃 지는 철이다. 50년 전의 4월 초에도 그랬다. 강요배 화백의 4·3 역사화전이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전시회의 타이틀 작 '동백은 지다'는 꽃잎이 흐트러지지도 않은 채 통째로 '툭' 떨어져버리는 동백꽃의 낙화
2009.04.03 11:36:00
"대한민국 시민권이 골프장 회원권인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값비싼 국적
외국인의 아이라도 한국 땅에서 출생하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속지권(屬地權)이라 한다. 한편 한국인의 아이는 외국 땅에서 태어나더라도 역시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을 속인권(屬人權)이라 한다. 이 두 가지는 국적 취득 요건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2009.04.01 10:22:00
"커닝하는 음대 교수를 욕하지 못하는 까닭"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사회가 대학을 위해 존재하나
1류 연주자로 이름 있는 음악 교수 P 씨는 동료들에게 놀림 받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입학시험 때마다 커닝을 한다는 것이다. P 교수는 수험생의 연주를 자기가 정확히 평가했는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옆 칸의 동료에게 대충 어느 정도인지 사인을 보내달라고 염치없이 부탁
2009.03.13 14:09:00
"청와대 비서관에겐 간디도 우습게 보이나?"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사탕을 먹지 말거라"
"이 아이의 사탕 먹는 버릇을 아무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아이가 들을 겁니다. 사탕 먹지 말라고 아이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이를 데리고 중년의 간디를 찾아온 어머니가 간절히 부탁했다. 아이의 눈을 그윽이 들여다보며 입을 뗄듯하던 간디가 눈길
2009.03.04 08:43:00
"3·1절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心山 과 김수환
80년 전 오늘 태화관에 모인 33인의 민족 대표는 모두 종교단체를 통해 독립 선언에 참여했다. 일제의 단속을 피해 은밀한 조직 작업을 펼치기에는 아직 탄압이 덜하던 종교 활동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33인 중 개신교가 16인, 천도교가 15인, 불교가 2인이었다. 개신교와 천
2009.03.01 14:46:00
"제 발 찍는 멍텅구리 정책인 줄도 모르고…"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무한경쟁의 시험제도
중국의 발명품으로 서양의 근대화에 큰 공헌을 한 것들이 있다. 나침반과 화약, 그리고 제지술(製紙術)이다. 이것들 없이는 대항해시대도, 근대 전쟁의 발달도, 정보화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섭사가들은 또 하나 중요한 중국 발명품을 지목한다. 과거(科擧) 제도다.
2009.02.27 10:42:00
파국의 한 마디 "우리도 너희랑 똑같이 놀아 볼까?"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중국은 트로이의 목마
1840년경의 아편전쟁에서 1940년경의 대동아전쟁까지 한 세기 동안 중국은 근대화의 후진국이었으며 열강의 침략 대상이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장지에스의 국민당 세력을 타이완으로 몰아넣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움으로써 중국이 오랜만에 국가주권을 세웠지만 아직도 "아시아의 병든 노인"은 힘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의 도움으로 뒤늦은 산업화를 시작했지
2009.02.25 06:00:00
"김수환 추기경, 그는 과연 변절했는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뮈텔 주교
1898년 5월 29일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축성 예식을 집전한 것은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1854-1933)였다. 그는 1881년 조선에 입국해 4년간 선교사로 활동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1891년 조선교구장으로 다시 조선에 들어와 별세 때까지 42년간 조선교구를 지휘했
2009.02.20 09:23:00
"사오정에게 정말 미안하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누가 '영혼 없는 경찰'을 만드는가?
10년 전에 쓴 이 글을 꺼내 보며 글쓰기가 참 조심스러운 일이란 생각을 새삼 한다. 어떤 자들을 보고 사오정을 떠올렸던 것인지 지금 잘 생각도 나지 않지만, 무조건 미안하다. 요즘 한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사람들 몇몇이 보여주는 사오정스러움에 비길 만한 일은 그 시절이고 그 전이고 단연코 없었다. 당시로서는 뭔가 답답한 꼴을 보며 울화통을 터뜨린 것이었겠지
2009.02.18 06: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