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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싸우면서 연대성 회복하는 문제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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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싸우면서 연대성 회복하는 문제 절실"

[이슈 인 시네마] <경계도시 2> 송두율 교수 인터뷰

※ <경계도시 2>가 개봉 한 달만에 관객 만 명을 돌파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이지만, 이 영화가 우리사회에 던진 질문의 파장이 결코 '만 명'의 숫자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또한 영화가 상영되는 기간에만 국한될 질문도 결코 아닐 것이다. 프레시안의 애독자이자 본지에 <경계도시 2>를 지지하는 리뷰를 기고하기도 했던 공연잡지 《씬플레이빌》의 이영규 객원기자가 송두율 교수와 서면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원고를 본지에 보내온 이유 역시, <경계도시 2>가 던진 질문을 오래도록 곰씹고 그 교훈을 잊지 말자는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송두율 사건'이 결코 '과거'의 사건이 아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사건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인터뷰이다. - 편집자 주

▲ 송두율 교수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부인 정정희 여사와 함께 환영인파에 손을 흔들고 있다. <경계도시 2>에서.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 2>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을 듯 하다. 바로 오늘날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경계인' 송두율 교수 얘기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7년 전, 레드 컴플렉스라는 이름의 분단 기득권의 야만과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송두율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거의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영화 <경계도시 2>의 영향으로 송두율 교수의 존재를 극적으로 부활시키며, 그가 던진 시대적 물음을 공유하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때문에 어떻게든 생생한 송두율 교수의 육성을 듣고 싶었으며 아래는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는 야만과 광기가 무섭게 휘몰아쳤던 과거의 생생한 증언보다는 참혹했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에 대해 집중됐다. 송두율 교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남북이 앞으로 화해를 위한 진정한 행보를 옮기려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면 이를 해소하는데 노력에 적극 동참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최근 송두율 선생님을 다룬 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가 개봉, 많은 관객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울림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독일에서 생활하는 근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겨울학기에 정년퇴임해서 강의로부터는 자유스러워졌다. 하지만 아직 지도하는 박사과정 논문들이 남아 있고, 독서와 저술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영화를 보셨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경계도시 2>가 상영됨과 동시에 영화관계자 측에서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보스턴으로 <경계도시 2>를 보내줘 비로소 가족과 함께 볼 수 있었다. 그 때의 고통, 절망 그리고 분노가 다시 살아났다. 영화에 대한 소식을 듣고 친지들이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겠느냐고 문의도 해오지만, 아직도 흔쾌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로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 밀란 쿤레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경계도시 2>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7년 전에 일어났던, 분단 지식인의 잔혹한 수난과 레드 컴플렉스의 광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초상이었음에도 그 동안 사회내부에서 논의는커녕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듯 해 밀란 쿤데라의 지적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레드 컴플렉스는 분단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불가피하고 심지어 정상적이라고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도 지배적이다. 한국사회가 지닌 이러한 병적 고질에 이미 면역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앓고 있다. 어떤 상황이 극도로 '비정상'이라고 적극 인식될 때 이에 대한 기억도 깊이 각인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와는 상관이 없는' 레드 컴플렉스로 여기기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003~2004년의 '송두율 사건'도 쉽게 망각될 수 있었다. 때문에 건강한 미래사회를 위해 기억을 복원하면서 망각과 싸우고, 공유하는 기억 속에서 연대성을 회복하는 문제가 절실하다.

내가 한국사회의 '시민사회' 또는 '시민운동'의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씁쓸해지는 이유는 국가보안법을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이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한 법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건강한 삶의 세계를 황폐화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나치는 데서 희한한 일들이 앞으로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 <경계도시 2>의 카메라가 잡은, 송두율 교수의 고뇌의 시간.

- <경계도시 2>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독일, 겨울동화>의 한 구절인 "국경선이 가까워지자/ 내 가슴은 더 세차게 고동치고/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로 시작된다. 독일 시인 하이네 역시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 독일 땅에서 추방당해 파리에 정착했기에, 경계인이었던 본인 스스로를 하이네에 견주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송두율과 하이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프랑스 혁명정신과 거리가 멀었던 프러시아 독일의 지배체제의 억압성을 고발했던 하이네는 마르크스처럼 망명과 추방이 연속된 운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비록 개신교로 개종했지만 그는 유대인이었으며, 또 사회주의자였다. 이렇게 하이네는 여러 경계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즉, '경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의 숙적인 프랑스 편이라고 비난받았지만, 나는 같은 민족이지만 숙적인 북한의 편만을 든다는 비난을 받고 시달리고 있다. 하이네가 살았던 당시의 세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다 더 열린 세계에서 살고 있는 21세기의 오늘날에도 우리의 민족분단은 사회 내의 갈등과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며 '경계인'이 숨쉴 공간을 아예 허용치 않고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 세르(Michel Serres)는 신인가 악마인가, 배제인가 통합인가, 긍정인가 부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 둘 사이에 있는 끈으로부터 대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0과 1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가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제3의 무엇을 인정하는 이러한 태도는 불확실성이나 애매성을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그것도 당장에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논거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의 헛소리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미적거리는 기회주의자의 억지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경계인'이 때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 송두율,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2007) 중에서


- 우문일 수 있지만 '경계인'의 철학을 견지한다는 것은 지난 2003년의 참혹했던 비극이 또 다시 잉태될 수 있다는 말일까. '경계인'의 운명은 다소 우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37년의 긴 망명 생활 후 잠깐 이루어진 귀향에서 내가 체험했던 충격적인 것은 'tertium datur'(제3자는 주어진다)라는 이념이 분단된 나라에서는 삶의 진지함을 흉내내는 지적 사치에 불과한 것으로 철저하게 매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냉전 시대의 사유가 지배적이었고, 이는 또 후발성 근대화를 추구하는 정신없는 속도와 맞닿아 정신적 여유가 보이지 않았다. '경계인'을 사회로부터 추방하려는 시도는 그러나 우리 삶의 본성을 망각하고 있다. 현실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결코 숫자, 둘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언젠가 존 케이지(John Cage)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경계인'은 훼방적인 요소가 아니라 우리 삶에 필수적인 작동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경계인'은 양다리 걸치고 있는, 신뢰할 수 없는 '이중 첩자'가 아니라, 바로 '생산적인 제3자'라는 나의 확신은 여전하다.

- <경계도시 2>는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09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 때 송두율의 죄는 과연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면서 끝을 맺는다. 송두율의 죄란 결국 '다섯 번째 원숭이'를 자처한 것인 아닐까? '해방 이후 최대 간첩'이니 '말 바꾸는 지식인'이라고 매도하는 네 마리의 원숭이가 벌이는 시끄러운 굿판 속에서도,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죄가 된 셈이다. 어쩌면 그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준엄한 외침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한데.

'다섯 번째 원숭이'는 나 자신을 지칭하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하여 현실 속에서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실천적인 대안을 찾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큰 질문 속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大疑之下 必有大悟)"라는 원(元)나라의 몽산(蒙山)스님의 가르침이 곧 '다섯 번째 원숭이'가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 오늘날 한국의 미래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청년들은 이른바 '88만원 세대'라는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자기 앞가림 하기도 바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젊은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음과 지성은 반항할 권리가 있다"는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의 외침은 내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항상 대신해주고 있다.

- 혹시 조국에 다시 한 번 방문할 계획이 있는가? 또 현재 냉각된 남북관계의 화해를 위해 북녘에 방문할 계획이 있는 지도 궁금하다.

지금 당장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남북이 앞으로 화해를 위한 진정한 행보를 옮기려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면 이를 해소하는데 적극 동참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여러 가능한 길을 모색하고 준비하고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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