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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나라당 2중대'를 말하나"

[기고] 91년 5월에 떠난 꽃다운 청춘들을 기억하며

가슴시린 5월입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2중대'라는 말을 적잖이 듣기에 더 시리고 휑합니다. 신자유주의 우파인 집권 수구정치세력과 그 좌파인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선거경쟁이 고조되면서 '진보대연합', '진보좌파연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진보좌파진영의 독자적인 행보가 '한나라당의 당선을 돕는 2중대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간의 이러한 비난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닌데, 지난 6일에 있은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 모임>이 주관한 한 토론회에서 진보정당을 자임하는 모 정당 연구소의 책임 있는 관계자조차 그런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 재미난 것은 정작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은 이런 '비난의 언술'을 잘 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상대를 자극하는 그런 언술이 '민주대연합', '반MB연대'를 위한 '표 모으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대신 말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생각과 방침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이른바 진보진영의 그 누군가가 그렇게 해준다면, 그런 효율적인 정치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결국 자신들의 입과 손을 더럽히지 않는 것인데, 이것은 '재산과 교양'을 지닌 이들이 고상함과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오래된 행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에게 '2중대'라고 비난할 수 없을 정도의 구질구질한 정치적 행보들이 그들의 역사에 도드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 자신은 이것을 '실용노선'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어찌됐던 '남의 어두운 과거'를 들춘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대중의 고통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한 번 쯤 더 반추해보는 것도 헛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87년 대선을 계기로 자유주의정치세력 내부의 우파와 좌파를 상징했던 김영삼, 김대중이 갈라졌습니다. '군부비토론'이니 '4자필승론'이니 하다가 신군부파시스트들의 재집권을 도운 '일등공신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0년, 김영삼은 5.18민중항쟁을 진압한 신군부파시스트세력이 주축이었던 민정당의 노태우, 유신잔당이라 불리는 것이 마뜩치 않아 '유신본당'을 자처했던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등과 3당 합당을 하여 민자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였고 마침내 어릴 때부터의 꿈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97년에는 자유주의좌파 김대중이 민자당 안에서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김종필과 '내각제'를 매개로, '지역등권'을 모토로 하여 DJP연합을 성사시키며 집권에 성공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동초'의 그 꿈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누구입니까. '영남의 맹주' 김영삼에 발탁되었으나 그의 '3당 합당'을 반대하고 '호남의 맹주' 김대중의 '지역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노무현입니다. 그 또한 '재벌당'인 '국민통합21' 정몽준과 연대하여 집권하고자 하였지만, 그의 합의파기로 못했던 '독자집권의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기치 못한 집권이 오히려 장애가 되었습니다. 집권 기간 내내 확실한 사회정치적 지지기반의 빈곤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탈지역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바보 노무현'의 시련이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련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을 해소,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정치적 행보를 취했는가에 있습니다. 결국 그는 수구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였고 한미FTA 체결, 새만금 사업중지 등 환경/생태문제를 둘러싼 대선공약 등을 폐기하며 그들의 품으로 뛰어들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을 선택하고 탄핵으로부터 구해준 대중의 자발성, '더 많은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결속력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선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대중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푸념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그는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 된 것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이제는 고전이 된, '야합'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손색이 없을 이 역사들을 다시 돌려보는 순간, 그래도 저 정도는 되어야 '2중대'라는 계급장을 붙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혹시 '진보연대', '진보좌파연대'를 말하는 이들이 그들처럼 수구파시스트들과 한통속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들처럼 그 권력의 단맛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니면 혼자 고고한 척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조금 격이 낮은 '2중대'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하기야 2중대로, 아니 주구(走狗)로 부른들 머 크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부르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대신 몇 가지 부탁은 드려야겠습니다.

진정 이명박 정권과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 것조차 싫어서 '진보연대', '진보좌파연대'를 바라는 이들에게 그들의 '2중대'라고 한다면, 저런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자유주의정치세력을 '양심세력'이니, '민주세력'이니 옹호하는 발언일랑 거두어주십시오. 이 순간에도 자본과 권력들에 의해 삶의 근거마저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고 있는 '벌거벗긴 주권자들'에게 진정성이 담긴 연대의 눈길 한번 준 적이 없는, 그리하여 '더 많은 자본과 권력'을 차지하겠다고, 혹은 '삼성공화국'의 눈치를 보며 떡고물이라도 조금 더 챙기겠다고 아우성치는 자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 세상을 가난한 자들과 함께 아름답게 살고 계시는 분들, 또 그들을 거울삼아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명박 정권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이들을 그들의 '2중대'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하기 이전에 그들에 의해 학살당한 용산의 저 죄 없는 철거민들을, 지금도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다는 죄목으로 중형을 구형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그 망자의 아들이 느낄 고통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저 더 많이 벌어 잘 살아보려다 생긴 '이기심의 발로'라고, 따라서 자업자득이라고 하지 말고 그 아픔을 한 번 더 생각해주십시오. 그리고 지금부터 일년 전 당신들이 망자 노무현을 부여잡고 몸부림칠 때,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다가 모든 이가 행복하게 서로 기대는 사회를 꿈꾸며" 스스로 목숨을 놓아버린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란 이를 한 번만 더 기억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라고 매몰차게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랑', '사내 복지 최고의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지금 죽어가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비록 당신들과 아무 면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진정성 있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십시오. 직접 함께 싸우지는 못하지만, 용기를 내라고.

정말로, 진정으로 이명박 정권과 함께 숨 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자유주의정치세력을 비판하는 이들을 그들의 '2중대'라고 호명하는 것이라면, 자신을 그 어떤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물론 당신들이 자기 스스로를 어떤 특권적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특권 없는 세상을 꿈꾼 노무현'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당신들이 최소한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만 당신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벌거벗은 주권자'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부탁일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누구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말을 사용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회정치적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깊이 새겨주십시오.

당신들은 이 부탁을 절대 거절하거나 유보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당신들이 그토록 숭앙하는 '노무현의 꿈', 즉 '평화로운 사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라면 자기화해야 하는 최소한의 '시민윤리적 자세,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너무 이상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혹은 현실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 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입니다."라고 말한 당신들의 군주, '미네르바의 부엉이' 노무현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민이 '재산과 교양'으로 상징되는 부르주아들과 권력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들이 그들을 현재, 미래의 삶의 모델로 삼고 있지 않다면, 그런 시민이 그 어디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은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시민을 의미하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떤 '완성된 시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니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수탈, 억압, 배제, 차별에 눈 감지 않고 연대하여 그것에 함께 항의, 저항, 투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열어가는 그런 이들을 지칭하는 것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평화로운 사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꿈꾸는 당신들이라면, 이 소박한 부탁을 무시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기우에서 말 하건데, 혹시라도 망자 노무현의 말을 따라 '깨어 있는 시민', 따라서 '깨어 있는 정치인'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다시 한 번 그 노무현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자서전'을 쓴 이, 그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듯 외치지만 여전히 기름기 번지지르르 하게 살아 있는 자들의 눈과 귀, 입, 세포가 아니라, 당신들의 그것들로 생생하게 느끼고 생각하십시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그들의 입에 발린 평가, 외침과 달리 노무현은 '깨어 있는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개혁자유주의자'인 노무현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국가와 사회의 분리'라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실제 이 사회에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진정 '깨어 있는 시민, 정치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망에 빠진 정치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안에서, 그 정치 안에서 그 꿈은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삼성공화국'의 건설자로 복무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 갔다.'고 자조하다 결국 '살아 있는 시민만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유언을 남기며 떠났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는, 그 '바보 노무현'이라는 언술에 담겨 있는 핵심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노무현의 죽음에 연민을 가지고 그를 돌아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들이 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한 이상, 그 꿈과 현실 사이의 공백을 매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신들이 지금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말은 독백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기에 진정 무섭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신들은 말과 달리 그 노무현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거 노무현'의 그늘 속에서 숨 쉬려 할 뿐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고요. 당신들은 노무현이 꾸었다는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 똑같은 진보주의자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자유주의의 인식과 행태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근대 이후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노무현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바보 노무현', 즉 '미네르바의 부엉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당신들에게 그가 마지막 남긴, "이제 나를 버리라", "깨어 있는 시민이 되라"는 언술은 그저 빈껍데기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들은 진정 망자를 살리기보다 그를 신성화시키며 스스로의 삶, 정치적 길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한계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순간, 그리하여 '깨어 있는 시민', 따라서 '깨어 있는 정치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순간, 당신들은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고 '내 것'이라고 생각되어졌던 것들과 거리를 두거나 그것을 버려야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자기를 버리는 것보다는 수구세력의 '2중대'라는 말로 다른 이들을 규정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쉽겠지요. 내 가족, 내 지위, 내 재산, 내 권력, 내 국가, 내 민족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하지만 혹시 그것들 때문에 평화를 거스르고 특권에 침묵하고 반칙을 일삼아 온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마음이 조금 무거운 것은 아닙니까.

5월이 되면 항상 가슴이 멍하고 아립니다. 수구정치세력과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크고 작은 야합의 역사 속에서 죽은 이들, 무엇보다 91년 5월에 죽은 꽃다운 청춘들이 어른거리기 때문입니다. 90년 3당 합당 이후 본격화된 공안정국 속에서, 그리하여 91년 5월 정점에 달했던 그 광기의 공안몰이 속에서 죽어간 십 수 명의 꽃다운 청춘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들이 여전히 앙금처럼 마음 저 깊은 곳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개나 소나 말하는, 이제는 화석화된 저 '이기의 도시, 광주' 대신에,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그들의 아픔, 상처가 더 마음 저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런 글의 말미에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한 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정말 비루한 인생살이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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