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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전시 상황이니 입조심하라고요?"

[기고] 자산의 향교와 지록위마

독자 여러분은 지금부터 정확히 42갑자(甲子) 전, 무려 2520년 전인 기원전 511년 경인년(庚寅年)에, 봉건 군주제가 지배한 걸로 알려진 그 아득한 춘추시대에 국민의 여론을 정치의 스승으로 삼아 민본(民本)주의 꽃이 활짝 핀 사실(史實)을 아시는지? 춘추(春秋) 좌전(左傳) 상공(襄公) 31년 기록을 보면, 정(鄭)나라 자산(子産)의 여론정치에 관한 유명한 기사가 나온다.

정나라 인민들이 향교(鄕校)에 모여 노닐면서 집권자의 정치를 왈가왈부 토론했다.
연명(然明)이 자산(子産)한테 말했다. "향교를 헐어 없애는 게 어떻겠소"

자산이 대답했다. "왜요? 무릇 인민들이 아침저녁으로 일없을 때 모여 노닐면서 집권자의 정치가 좋은지 나쁜지 의론하는 걸 왜 없애려고 하죠? 그들이 좋다고 여기는 건 내가 시행하고, 그들이 나쁘다고 싫어하는 건 내가 고칠 수 있으니, 향교가 바로 내 스승이죠. 근데 어찌하여 허물어 없앤단 말이오?

내 듣건대, 선(善)에 충실하여 원망을 덜어가는 게 정치의 도리이지, 권위를 부려 원망을 가로막아 억누르는 게 정치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소.

물론 나라고 어찌 권위로써 정치토론을 확 억눌러 그치게 할 수 없겠소만, 그러나 여론을 다루는 일은 강물을 가로막는 것과 같소. 물을 가로막았다가 홍수로 한번 크게 터지면 사람과 재산의 손실이 반드시 엄청나게 클 테니, 그때는 내가 어떻게 구할 수조차 없다오. 그러니 평소에 물꼬를 조금 터서 흘러내리도록 하는 게 훨씬 낫소. 마찬가지로 내가 여론을 귀담아 들어 인민의 말을 약으로 삼는 게 훨씬 좋다오."

그러자 연명(然明)이 말했다. "나(蔑)는 오늘 이후로 당신을 확실히 믿고 받들 수 있겠소. 소인(小人)이 참으로 어리석었소. 과연 이렇게 행한다면, 정나라 국민 전체가 진실로 믿고 의지하겠소. 어찌 오직 두어 명의 측근 신하만 이롭겠소"

공자(仲尼)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 언행으로 본다면, 사람들이 자산(子産)을 어질지 못하다고 일컫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겠다."

정나라 자산은 참으로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忠言逆耳利於行)'는 지혜로운 잠언을 집권정치에 몸소 실천궁행할 줄 안 위대한 정치가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에서도 자산의 은혜로운 정치를 극찬한다.

그런데 우리는 홍수를 조절하고 수량(水量)을 확보한다는 미명 아래,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퍼부어 4대강을 곧게 뚫고 깊이 파헤치며 높은 보를 쌓아 애써 가로막는다고 한다. 게다가 언론 길들이기와 여론 재갈물리기가 도를 지나친다는 원성이 벌써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만에 하나라도 언젠가 강과 백성의 보와 둑이 한꺼번에 크게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 재앙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려는지?

속담에 "불 지난 곳엔 재라도 남지만, 물 지난 곳엔 재도 안 남는다"고 하는데! 백성을 물로 보다가 그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나 않을까 저어한다. 일찍이 순자(荀子)는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君舟民水)이라고 비유했다. 보통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이 화가 나서 거친 파도가 높이 치면 배를 뒤집어 삼킬 수 있다고!

▲ 4대강 공사 현장 가운데 하나인 문경 퇴강리 상풍교 일대의 준설 현장. 뿌연 탁수가 낙동강 본류에 그대로 유입되고 있다.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국보 제1호였던 남대문(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된 지 2년 남짓 될 즈음, 위풍당당하게 서해를 지키던 천안함이 두 동강나 바다에 침몰하는 불행한 재앙이 닥쳤으니, 비통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민·군합동조사단의 결과보고에 따르면, 천안함은 북한 어뢰의 공격으로 두 동강나 침몰한 걸로 결론을 내린 듯하다. 이에 북한은 남측의 날조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검열단을 보내 조사의 객관성을 확인하겠다고 요구한단다. '모순'처럼 상반된 남북의 두 식견 중 어느 하나는 객관진실과 동떨어진 거짓임이 틀림없다. 과연 누가 진실하고 누가 거짓일까?

둘 중의 하나는 고의든 착오든,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긴다.' 나라 안 백성의 눈과 귀를 가려 권력의 위엄을 과시하고 독단을 강화하기 위해서일까?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극도에 이른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내리 3대째 세습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혈안이 된 듯하고, 남한은 잃어버린 10년을 거울삼아 장기집권을 꾀하려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를 이기고 4대강 등 정책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언론통제에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심리전을 다시 펼치겠다며, 천안함의 좌초설을 제기한 사람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단다. 당대의 유명한 학자 도올 김용옥은 지난달 23일 봉은사 특강 때 천안함 조사결과 보고에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 탓에 일부 보수단체한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고 한다.

또 대통령 담화가 있던 날, 국무총리실에서 지방 국립대까지 "준전시 상황이니 입조심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는 소식이다. 북한 공산당 1인 독재체제는 말할 나위도 전혀 없거니와, 명색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조차, 2520년 전의 봉건군주시대만도 못한 '입조심'이 행정명령과 법치집행의 모습으로 공공연히 행세한다면, 이건 너무 서글프고도 어처구니없어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아이러니 아닌가?

불현듯, 흉노에 투항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이 발분의 의지로 완성한 불후의 명작 <사기(史記)>에 나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가 떠오른다. 진시황이 갑작스레 죽자, 조고(趙高)는 이사(李斯)와 짜고 유서를 위조해 황태자 부소(扶蘇)를 자살하게 만들고 호해(胡亥)를 2세로 옹립한 다음, 승상이 되어 이사마저 죽이고 대권을 장악하기 위해 조정 군신의 의향을 떠보려고 시험삼아 사슴을 끌어와 2세한테 바치면서 말이라고 말한다. 2세가 좌우를 돌아보고 웃으며 "승상이 좀 잘못된 게 아니냐"고 묻자, 신하들은 대부분 눈치만 보고 침묵하는데, 더러는 실권자인 조고한테 아부하느라 말이라고 거들고, 더러는 사실대로 사슴이라고 대답했다.

보기 좋게 황제를 우롱한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정직한 신하들을 곧바로 은밀히 법에 회부해 처형했다. 그 뒤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 감히 말하는 자가 없어지자, 조고는 2세를 처치하고 부소(扶蘇)의 아들인 자영(子嬰)을 진왕(秦王)으로 세웠으나, 얼마 안되어 자영마저 처치하려다 도리어 역습을 받아 죽고 만다.

또 우리는 벌거숭이 임금님의 동화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자만심과 허영심에 가득 차 들뜬 권력자는 간사한 측근의 그럴듯한 아부와 아첨에 쉽게 넘어가 만천하와 만고(萬古)의 역사에 크게 우세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음직하다. 그게 단순히 한바탕 기분풀이하자는 풍자와 해학에 지나지 않을까?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도 인간세상 권력자의 지나친 교만과 무모한 만용의 대가가 어떠한지 넉넉히 일깨우고도 남아돌지 않은가? 그것도 순전히 신화나 전설에 불과할까? 영리한 사람이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인류역사는 숱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고 우기는 권력이 북쪽인지 남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이 눈을 부릅뜨고 위협의 눈초리를 번득이며 삼엄하게 감시하는 속에서, 과연 누가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이건 말이 아니고 사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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