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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안녕하세요 고객님" 상냥한 목소리, 그녀의 소속은…

[은수미, 노동의 재구성] 특수고용으로 돈 벌어 정승처럼 써보라

복고풍 패션부터 복고풍 음악까지 복고풍은 문화예술의 오래된 스타일이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되짚는 드라마 <빛과 그림자> 역시 복고풍 버전이다. 근대 이전의 스타일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거나 재현한다는 점에서 복고풍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의 보고이다. 30년 전 어머니의 옷을 손질하여 입고 다니는 연기자가 패셔니스타로 각광 받지 않는가.
노동에도 복고풍이 있다고 한다. 사내하청, 용역, 위탁, 외주, 분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아웃소싱이 그것이다. 조선시대 지주가 소작을 놓을 때 마름을 끼우는 것처럼, 대형 할인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던 노동자를 외주화하여 업체를 끼운다. 일하는 사람, 장소, 업무 내용까지 똑같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소속이 대형 할인마트가 아니라 (외주)하청 업체로 바뀐다. 대형 할인마트와 노동자 사이에 하청업체가 끼어든 격이니 지주-마름-소작과 외형은 상당히 비슷하다. 복고풍인가? 고개를 갸웃거릴 만 하다.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통신사의 시설관리나 고객서비스는 대부분 외주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안녕하세요, 고객님"이라며 상냥하게 인사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통신사의 노동자로 착각하면 안된다. 그녀 혹은 그는 2분에 한 콜씩 하루 8시간 이상 전화를 붙들어야 월 100만원 남짓을 손에 넣는 통신사 외주업체 노동자이다. 한 겨울 해도 뜨기 전 출근길을 서두를 때 마주치는 환경미화원이나 길을 걷다 보게 되는 가로수 정비 노동자, 출장지나 여행지 콘도의 룸 청소(룸메이드)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또한 인력 파견 하청업을 대기업도 한다. 2010년 고용부 발표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1939개)의 약 16.5%가 인력공급이나 용역 회사이다.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을 공급하는 대규모 업체도 있으니 시간강사에서부터 각종 전문가 공급 업체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돈을 넣고 빼는 금융업처럼 사람을 넣고 빼는 대규모 노융업을 만들어야 한단다. 미국에서도 성업 중이라고 덧붙이니 알바천국이나 러쉬앤캐쉬 광고에 이어 "전국 어디에나 인력 365!" 광고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업체 끼우기 혹은 외주화는 전근대의 외형을 베낀 복고풍이 아니라 근대적 노동관계의 빈자리 이거나 근대적 노동관계 자체의 훼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고든(Gordon)에 따르면 사내하청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고용형태이며 자본주의 발전으로 거의 사라졌다. 노동법학자 박제성은 "프랑스에서는 이같은 노동 착취를 마름짓(marchandage)이라고 하여 1848년에 금지했다"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근대적 노동관계, 노동에서의 근대성은 직접고용의 원칙에 기초한 사용주와 노동자 간의 근로계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노예나 소작인은 주인의 재산이나 지주 소유 땅에 매인 존재이지만 근대적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능력을 팔 긴 하지만 자신을 판 것은 아니라서 노예와 다르다. 물론 노동하는 사람과 노동 능력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판매원의 노동능력을 1일 8시간 시간당 6000원으로 산다고 하나 사실상 그 판매원은 하루 8시간 근무가 끝나도 사용자에게 종속되기 마련이다. 50대 판매원이 근무시간 후 들른 식당에서 30대 사용자나 관리자를 만나면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면서 자리를 비킨다. 40대 회사원은 부인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상사를 만나면 깍듯이 허리를 굽힌다.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우선 순위로 꼽히면 가족의 생계까지 막막해지는데 어찌하겠는가. 노동능력을 파는 순간 노동자마저 얽매이고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지만 끊임없이 상품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헌법에 노동권을 명시하고 노동법으로 규율한다. 호황일 때 1만명이던 종업원을 불황에는 7000명으로 줄이려하는 자본의 반복적인 열정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잘 팔리던 가전제품을 경기가 나쁘면 창고에 쌓아두거나 폐기처분하는 것처럼 노동자 역시 상품 신세로 전락할 수 있음을 그동안의 역사에서 익히 배운 결과 이다.
하지만 그조차 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을 때나 가능하다. 업체가 끼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용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업체가 들어서면 사용자와 노동자 근로계약은 원청과 하청업체 관계로 대체되어 없어지고, 노동자는 원-하청 계약에 따라 처분되는 상품일 뿐이다. 그래서 매년 하청업체 변경에 따른 노동쟁의가 발생한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외쳐보지만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라하고 하청은 이미 사라졌다.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와 같은 개인사업자는 더 심각하다. 당신의 사용자는 당신 자신이라는데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근로계약이 있을 리 없다.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법은 물론이고 사회보험 적용도 어렵다. 일거리가 있을 때는 일정한 소속 없이 버틸 만 하지만 시장이 요동치거나 불경기로 일이 없을 때는 그야말로 백수이다. 일하다 말기를 거듭하다 도저히 안되어 취업준비라도 할라치면 눈높이가 높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작년 11월 12일자 <중앙일보> 칼럼 제목은 "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인가"이고 올 2월 20일자 <한국경제> 기사는 "빈둥 빈둥 니트족"이다. 허접한 일자리라도 가릴 처지가 아니며 좋은 일자리만을 찾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훈계이다. 미국 유학 비용을 대는 부모는 아이양육 성공모델이지만 취업준비생을 지원하는 부모는 청년실업자 양산모델이다. 그나마 부모의 희생 때문에 청년이 거리로 나오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의무방기가 덮어지는데 캥거루 부모가 청년실업자를 만든다고 호통이다. 근대적 노동권과 현대적 일자리가 아웃소싱 기법 앞에 녹아내려,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어 봐도 일자리를 녹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부모들이 벌어준 시간 동안 대책마련을 해도 부족한데 아예 죄인 취급이니 전근대 용역업체와 특수고용에 현대 교육을 받은 청년을 밀어 넣자는 것일까.
파이가 커지는데 근대이든 전근대이든 무슨 상관인가,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부터 하청업체, 특수고용으로 시작해서 정승 되어보자. 1700만 노동자의 1%, 17만 명의 사례만 만들어줘도 다시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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