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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올랐던 노동자들, 송전탑 막으러 밀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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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송전탑 올랐던 노동자들, 송전탑 막으러 밀양 가자"

[기고] 자본에 짓밟힌 밀양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연대를 제안한다

8년 전까지 농사짓고 명절날 손자손녀들에게 용돈 주며 부락 사람들과 친밀하게 살아왔던 '할매', '할배'들이다. 그런 이들이 움막을 짓고, 무덤을 파고,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쇠사슬을 감고 있다. 평생을 함께 일궈왔던 마을 공동체는 송전탑 찬반으로 갈려 해체되고 있다.

언론은 "보상금을 노리는 떼쓰기", "집단 이기주의로 인한 전력 대란 우려"라는 악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검경은 주민들 수의 몇 배에 달하는 3500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히려 폭행을 당한 주민들을 폭력과 공사 방해 혐의로 소환하고 있다. 급기야 '공사 방해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주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조차 제한하고 있다.

외신에 보도된 내용이 아니다. 울산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62.4킬로미터를 달리면 50분밖에 걸리지 않는 '밀양'의 현재 모습이다. 4개면(단장면, 부곡면, 산외면, 상동면) 주민 3476명 중 무려 85%(2962명)가 반대하는 송전탑 건설을 정부와 한전이 무리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노인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전쟁을 선포했다.

▲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몸에 쇠사슬을 감은 밀양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다른 이유, 같은 마음

지난주 처음으로 전쟁터에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싸우기 위해 갔더니 주민 한 분이 물었다.

"어떤 마음으로 여 왔능교?"

뭐라 답해야 할까 머뭇거리는데 다행히 매주 밀양에 연대하고 있는 현대차 정규직 노조 장윤덕 대의원이 답한다.

"밀양 할매 할배가 울산 철탑 고공농성장에 찾아오셨을 때와 같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통해서일까? 자연스럽게 밀양과 관련한 뒷얘기와 절박함을 들을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 모든 것이 자본가에 보다 싼 전기를 공급하는 방안으로 원전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새롭게 건설할 신고리 3~4호기 전력은 이미 기존 송전탑으로도 송출이 가능하지만 신고리 원전을 8호기까지 확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765 킬로볼트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강행한 것이다. 법원 가처분 판결문에서 송전탑 건설이 "경남 북부지역의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땅을 일구고 살았던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을 볼모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자본가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임이 뻔하다.

자본의 탐욕이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절규는 너무나도 정당하다. 너무나 다르지만 자본의 탐욕을 저지하고자 하는 밀양 주민들과 현대차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왜 힘들게 걷지?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12일까지 밀양주민 3명은 송전탑 건설 반대를 요구하며 밀양에서 서울까지 도보 투쟁을 진행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도 연대라는 생각에 11월 3일 영동에서 옥천까지 하루를 함께 걸으며 "왜 힘들게 서울까지 걷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그것도 '국토종단 도보투쟁' 시작 7일 전까지 20일간 단식투쟁을 한 주민 말이었다.

296일 동안 지속한 현대차 명촌 주차장 철탑을 오른 첫날, 나도 밀양 주민과 똑같이 말했다. 10년 동안 수많은 조합원들이 해고, 수배, 구속, 손해배상, 가압류를 당했고, 류기혁 열사가 자결했으며, 두 명의 조합원이 분신했음에도 대법 판결도 무시하는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몸을 혹사하면서 밀양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는 주민들의 한 마디가 마음에 사무쳤다.

8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그런데 나는 이제야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밀양이 투쟁하는 동안 나라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다른 이들에게도 기억하고 살자고 말하고 싶다.

▲ 울산 현대자동차 고공 농성장. 사진은 지난 7월 20일 희망버스 행사일. ⓒ프레시안

보상해준다는데 왜 싸워?

두 차례 만남에서 쉬지 않고 들었던 말은 "보상은 필요 없다. 송전탑 얘기가 없었던 시절처럼 그냥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요구하고, 쌍용차 노동자들도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데 밀양 주민들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냥 이대로 우리를 살게 해달라고 한다.

400만 원 보상받았으니 "술 한 잔 사라"는 친구들의 농담에 오히려 역정을 냈다고 한다. 밀양주민들은 "내가 부모님께 물려받았던 것처럼 자식에게도 물려줘야 내 자식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든셋 덕천 할머니는 지금도 송전탑 127호 부지 앞에서 무덤을 파고, 쇠사슬을 옆에 끼고 움막 생활을 하고 있고, 4개면 주민들은 매일같이 산을 오르며 송전탑 건설을 막고 있다.

한 어르신께서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몸은 지더라도 정신은 질 수 없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야 나이 들어 금방 죽겠지만 자식과 손주들은 평생 살면서 송전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자식들에게 그런 환경을 물려주는 어리석은 부모는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밀양 주민들은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며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희망은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것!

296일 동안 철탑 농성을 하면서 우리는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 동안 불법파견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자식들에게는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 위에 군림하는 저 오만한 현대차에 먼저 무릎 꿇기 싫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게 함께해 주십시오."

우리들의 외침에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 시민, 학생들이 희망 버스로 화답해줬다. 그런 연대의 힘이 이어지면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현대차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해고자들은 매주 밀양 투쟁에 1박 2일로 연대하고 있으며,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해고자들은 매일 2명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최종범 열사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현대차 희망버스는 현대차에 머무르지 않고, 밀양으로 삼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현대차 비정규직 울산, 아산, 전주 조합원들이 앞장서서 밀양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희망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고 확대하는 것이다.

밀양 희망버스는 또 다른 희망을 연결하는 다리가 될 것이다. 11월 30일 밀양 희망버스 타고 희망의 다리를 함께 놓으러 갔으면 한다.

송전탑에 오른 사람과 송전탑을 막는 사람들의 막간 이야기

▲ 덕천 할머니와 최병승 조합원이 함께 찍은 사진. ⓒ최병승

할배 : 비올 때 송전탑에 전기 흐르는 소리가 장난 아니라카더라. 공포스럽데이.

최병승 : 맞아요. 제가 2005년 처음으로 철탑에 올라갔을 때 태풍 나비가 왔어요. 요번에 올라간 15만4000 볼트 철탑보다 약간 작은 철탑이었는데요, 비가 오니까 전선에 자기장이 생겨 전기 흐르는 게 눈으로 보였고, 윙~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번쩍하며 스파크가 일어나는 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이걸 평생 듣고 산다면 제정신인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할배 : 스파크 튀고 소리 나는 걸 누군가 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 좋겠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아쉽다.

최병승 : 제가 철탑에 두 번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해결 못 했어요. 삼세판인데 혹시 세 번째 고공 농성을 하면 찍어서 보내 드릴게요. (웃음)

덕천 할매 : 아이고, 영상 필요 없으니까 다시는 올라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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