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역으로 귀농하든 진짜배기 텃세는 사람보다 땅이 부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땅을 바로 만나기도 어렵지만, 만나서 농사를 짓게 되더라도 그 '땅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했다. 예비농사꾼에겐 다소 겁나는 얘기였다. 땅을 대할 땐 늘 겸허하고 땅에 대한 외경심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 인간이 자기 땅을 만나려면 부자지간 같은 천륜보다도 더 깊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이런 오금을 박는 말도 있었다. 선배의 말에 실감이 안 날 도리가 없었다.
강원 횡성의 한 산골마을. 인연이 있었던 것일까. 어렵사리 한 집을 만났다. 늦가을의 어느 날 마침내 입주를 했다. 마을에서 다소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이 집은 호두나무의 사촌벌인 가래나무가 무척 인상적이다. 집 뒤편에 있는 아름드리의 이 나무는 수령이 100년도 넘어 보였다. 훗날 내가 이 집에 <가래나무집>이라는 문패를 달게 된 내력도 여기에 있다.
이 집에 딸린 밭은 모두 3천여 평. 시골 사람들이 흔히 '도조'라고 부르는 임대료는 1년에 백만 원이었다. 백만 원에 집 한 채와 밭 3천 평이라니! 여기로 들어오기 전 도시에서는 24평짜리 아파트를 7천만 원에 세 들어 살았었다.
도착했을 때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뒷산에 있는 산전(山田)이었다. 이 산전도 내가 임대 받은 밭 가운데 일부다. 지난번에 와서 답사할 때는 워낙 시간에 쫓겨 둘러볼 짬을 못 내고 말았다. 마루에 짐을 부리고 바로 산전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산길이 호젓했다. 길은 굴참나무와 자작나무, 화살나무 따위에 조팝나무와 으아리 덤불까지 어우러져 있었다. 종종 멧비둘기들이 낯선 방문객에 놀란 듯 요란한 날개 짓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산 깊숙이 활처럼 휘어진 길을 다시 U턴을 하듯 꺾어 올라갔다. 느린 걸음으로 15분쯤 올랐을까. 마침내 산전이 보였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 산밭이었구나! 이런 산 속에 이렇게 숨어 있었다니!"
산 아래에서 보면 이런 곳에 밭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밭은 수심이 깊은 바다의 부드러운 파도 같았다. 완만히 솟아올라 둔덕을 이루었다가 다시 골을 이루고 또다시 솟아올라 거대한 둔덕을 이룬 채 누워 있었다. 그 형국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무슨 생명체처럼 보였다. 육중한 힘 같은 것도 느껴졌다.
밭 가운데는 또 마을 사람들이 '묵묘'라고 부르는, 오래된 무덤도 하나 있었다.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작은 무덤이었다. 그 무덤엔 신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고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무성하게 뻗어 오른 노박덩굴도 보였다. 덩굴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작고 둥근, 빨간 열매들을 무수히 달았다. 이 무슨 조화 속일까. 아닌 말로 밭이 너무 예뻤다.
이 밭은 첫눈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우리는 종종 '홀로' 존재해야 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누군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무엇인가에 몰입하거나 혹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그렇다. 이 밭은 그렇게 존재하고 싶을 때 찾고 싶은 곳으로 먼저 다가왔다.
훗날 마을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이 산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밭에 트랙터가 올라 갈 수 있을까? 경사가 심한 '비알밭'이어서 트랙터로 밭을 갈기는 어려울 듯 싶은데. 천상 경운기로 갈아야 하나? 골은 뭘로 타지? 쟁기로 타야 하나? 소도 어느 집에선가 빌려야 되는데, 일을 제대로 배운 소가 드물 걸. 밭에 거름 내기도 만만치 않을 텐데? 밭 가운데는 또 작업하기 불편하게 무덤까지 있잖아.
그 밭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그런 짱짱한 '현실'이 있었다. 물정 모르는 초보농사꾼은 그런 밭에 반해 있었다.
이 집을 소개해 준 전형(全兄․43)이 저녁 무렵 찾아왔다. 저녁 식사는 '주막거리'에 있는 자기 집에서 하자고 했다. 전형도 도시에서 살다가 3년 전 이 마을로 들어왔다. 70을 바라보는 부모님이 장남인 그를 원했다. 귀농이 아닌 귀향이란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못 볼 줄 알았더니만, 이제 우리가 이웃사촌인가?"
지난 여름 뵈었던 전형 부친이 반색을 하셨다.
"요즘 젊은 친구들 말이야, 기계 좋다, 약 좋다 해서 농사를 참 쉽게 생각한데이. 나도 40년 남짓 농사만 짓고 살아왔지만, 농사 그거 우습게 볼 일이 아니야. 이왕에 땅 파고 살겠다고 나섰으니 열심히 해봐요. 그래도 그 집 밭들이 괜찮은 편이니까."
전형 부친은 3년 동안 농사를 배워온 아들에 대해서도 '아직 멀었다'고 말씀하셨다.
저녁 식사 후엔 메주 만드는 걸 좀 거들었는데 전형이 꿀을 넣어 숙성시킨 술을 내왔다. 한 댓 잔 마셨을까. 제법 술기운이 올라온다. 차로 바래다주겠다는 걸 사양하고 집을 나섰다.
귀가하는 길은 어두웠다. 개울을 따라 가다 큰길을 만나게 되면 다시 그 큰길에서 집으로 가는 좁은 샛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래도 반달일망정 달이 떴다. 길게 몸을 누인 길이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 보였다. 수많은 별들도 그 작은 빛들을 보탰다. 길옆에선 개울물이 소리를 내어 기척을 했다.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백제가요로 알려진 정읍사(井邑詞)의 첫 구절. 여인이 달을 보며 행상 나간 지아비의 밤길을 걱정하고 있다.
집을 찾아가는 길은 아무래도 서툴렀다. '가래나무집'에는 여인이 없었으므로 나의 밤길은 혼자서 걱정해야 했다. 가고자 했던 길이 바로 이 '길'이었을까. 이 길은 가보지 않은 길이었고, 그래서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이 길을 가다가 만나게 될 것들이 무엇일까. 어둠 속의 길이 문득 인문적(人文的)으로 다가왔다. 길은 문자 그대로 길이었다가 때로는 '도(道)'이기도 하구나! 기다리는 여인은 없었으나 밤길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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