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비잠>(최제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이러한 상황에 빠져있는 것은 비단 꿈속의 요섭 뿐이 아니다. 꿈을 꾸고 있는 요섭 역시 "폐쇄회로" 안에 갇혀 있다. 요섭은 거대 로펌 사해(四海)의 변호사이다. 그의 하루는 "출근 전 십 초면 완성되는 밑그림에서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는 건강을 위해 흑마늘진액을 마시고, 변론을 준비하고, 아들을 보기 위해 야구장에 들렀다가, 퇴근길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신다. 예측가능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섭이 세상을 거대한 태엽장치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섭은 세상이 "톱니바퀴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정해진 위치에서 회전해야 작동되는 세계. 요섭은 여기서 다만 "좀 더 크고 빛나는 톱니바퀴"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요섭은 "속물의 생명력으로" 힘차게 회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섭은 문득 이 톱니바퀴 바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들이 억울하게 구속"된 가난한 노파를 돕기로 결정한 것이다. 요섭은 "마치 환각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자신의 행위가 인식은 되는데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은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요섭은 이 돌연한 탈선 이후 연이어 찾아오는 불행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는 아내의 외도 현장이 담긴 사진을 건네받는가 하면, 밤늦게 귀가하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되는가 하면, 주식으로 전 재산을 날리게 되었다. 그의 일상은 이제 "십 초면 완성되는 밑그림"에서 "우연과 카오스가 난장을 치는 캔버스"로 변했다. 이제 요섭은 자신에게 익숙한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요섭은 자신을 태엽장치로부터 뽑아내려고 하는, 보이지 않는 기계공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을 몰락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의심했던 것이다. 아내의 "불륜 사진부터 투서, 언론플레이, 해고, 폭행, 주식, 집행유예 선고까지 쿵푸 액션처럼 합을 맞춰 일어난 이 모든 불행이 단순한 '우연'이라는 가정보다는, 그쪽이 훨씬 리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 끊임없이 맞물리는 태엽장치가 아니다. 요섭은 보이지 않는 기계공을 찾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자신이 결코 태엽장치의 움직임에 순응하는 톱니바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과정은 무성이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유년기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루어졌다.
요섭은 어린 시절 무성에서 "잘나가는 패거리"에 소속되기 위해 "악행의 공모"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소녀 '나영'을 무리지어 괴롭혔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불안정한 지위"를 교정하여 더 큰 톱니바퀴가 되기 위한 일이었다. 요섭은 자신의 이름이 세상을 살아가는 요긴한(要) 섭리(燮)라고 설명한다. 속악한 세상의 이치를 누구보다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섭은 마지막 순간에 "잘나가는 패거리"의 우두머리에게 반기를 들고 나영과 함께 도망쳤다. 요섭은 무성을 떠나기 전까지 무수히 두들겨 맞았지만 절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꿈속의 요섭 역시 태엽장치로부터 벗어나는 모험을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요섭은 탈주범이다. 그는 푸른 수감복을 입고 감옥에서 탈출한 후, 빨간 두건, 빠삐용, 피노키오, 돈키호테 등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회전하는 톱니바퀴처럼 과거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빨간 두건은 심부름을 떠나고,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고, 돈키호테는 풍차와 힘을 겨룬다. 그리고 빠삐용은 거듭 탈옥을 한다. 이들은 폐쇄회로 내부를 맴돌고 있다.
| ▲ 거대한 톱니장치. (영화 <모던타임스> 중) ⓒ출처 : doctormacro.com |
하지만 요섭은 폐쇄회로들을 통과해서 무성에 도착했다. 모든 이야기를 거치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무성은 흡사 폐허와 같은 곳이었다. 이 "고대 유물 같은 도시"는 "따분하고 갑갑하고 무미건조"하다. "새로운 이야기란 건 이미 오래전에 씨가"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무성은 골동품처럼 되어버린 이야기들의 무덤이다.
아무리 복잡한 기계장치라고 해도 결국은 제한된 숫자의 톱니바퀴로 구성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도시에 떠도는 이야기들은 유한하다. 그것은 "매 게임 새로운 패를 받아도 결국은 쉰두 장 카드의 조합일 뿐"인 게임과 같다. 이 안에서는 새로운 경우의 수가 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요섭은 무성의 사람들에게 "성 밖에서 들어온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그의 모험담은 완전히 새로운, "조커카드"처럼 여겨졌다. 요섭의 탈주가 새로운 이야기를 무성에 끌어들인 것이다.
이때 무성은 요섭이 유년기의 기억을 회복하는 곳인 동시에, '폐쇄회로'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신생(新生)하는 공간이다. 궤도를 이탈한 톱니바퀴가 기나긴 탈주를 마무리 짓는 곳인 것이다. 따라서 요섭의 불행은 아무리 괴로운 것이라도 복되다. 요섭은 고난을 통해 비로소 무성으로 돌아가 자신의 진면목과 조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에 씨가 말라"버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요섭이 꾸는 악몽은 가치 있다. <나비잠>에서 꿈은 마치 호접몽처럼 현실과 엉켜 요섭에게 영향을 주었다. 요컨대 이 연이은 악몽은 무성에 이르는 길잡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비잠>은 무성에서 빠져나오는 요섭이 돌연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죽음은 기묘하기는 하지만, 요섭이 행한 "선행에 대한 포상"이다. 이제 요섭의 "귓구멍으로 들어간 흙알갱이"에서는 부화한 "나비가 날아오를"것이다. 그는 이제 폐쇄회로에서 끝말잇기와 같은 회전을 반복하는 대신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고, 삶을 종결짓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편안하게 잠이 든 요섭을 상상해야 한다. 마치 아기처럼 편안하게, 두 팔을 머리 위로 벌리고 '나비잠'을 자는 요섭을. 그는 "특급 길몽"을 꾸고 있을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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