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저는 호텔 침대로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저는 호텔 침대로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영화 <선샤인 클리닝(Sunshine Cleaning)>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던 장면이 있다. 주인공 로즈가 모텔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이다.

"역시, 세상사는 다 거기서 거기야"

영화의 주제나 내용보다는 모텔에서의 섹스. 그것도 불륜커플의 섹스를 보면서 세상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 그 진리?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모텔에서 급한(?) 섹스를 해결하는구나."

미국의 모텔과 한국의 모텔은 그 태생과 성격, 사회적 구조가 다르다 하지만, "모텔"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는 "섹스"의 무게감은 인종과 국가, 사회를 뛰어넘어 똑같다는 사실에 안도감 비슷한 걸 느꼈다.

그럼 호텔은? 섹스를 기준으로만 본다면, "밝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젊은 여성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여성들이 원하는 섹스 장소 1위와 2위가 호텔과 펜션으로 나왔다. 음습한 곳이 아니라 밝고 화려한 곳에서의 섹스를 원한 것이다. 팍팍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증거라고 해야 할까? 젊은 청춘남녀(혹은 불륜커플)들이 마음껏 사랑을 하고 싶지만, 대한민국의 높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섹스를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제이콥 톰스키 지음, 이현주 옮김, 중앙M&B 펴냄). ⓒ중앙M&B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선택. 그것이 모텔이다. 그럼 호텔은? 서민들에게는 별세계의 존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섹스"만을 목적으로 호텔을 찾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울러 숙박을 통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호텔업 종사자도 없을 것이다. 호텔의 수익은 객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종 행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행사장을 떠받드는 호텔리어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제이콥 톰스키 지음, 이현주 옮김, 중앙M&B 펴냄)의 내용이다.(돌고 돌아 이제야 책 이야기에 들어갔다. 호텔하면 '섹스'를 먼저 떠올리는 필자의 빈곤한 상상력을 탓하기 바란다. 아니면, 이런 필자에게 청탁을 한 편집자를 탓하든가…)

저자 제이콥 톰스키는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 주차요원으로 호텔 업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10년 간 뉴올리언스와 뉴욕에서 호텔리어로서의 삶을 살았다. 서비스업에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는지, 주차요원으로 시작해 프런트 데스크까지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결말이 예상되지만, 그는 '미쿸사람'이었다. 호텔에서의 사랑, 호텔업계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저항, 이어지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미국사람답게 쿨하게 호텔을 박차고 나와서 내부고발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이 미국에서는 터졌다고 한다.(보도 자료에 그렇게 나와 있다. 아, 책날개에도 이 책이 잘 팔렸다고 적혀있다)

솔직히 말하자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미국에서는 "팁"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팁이란 주로 "밤"에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아닌가? 호텔의 운영체계와 숙박업의 시스템을 개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해도 이게 국내 환경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호텔을 잘 '활용'하는 팁들의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미니바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국내에 적용할 수 있을까?) 차라리 신촌 뒤편 모텔촌 지도가 훨씬 더 실용성이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객실 업그레이드 방법을 한국에서 써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방법을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란 의문이 들었다. 미국인들에게는 흥미로운 "고발"이자 비밀 해제겠지만, 한국인에게는 딴 세계 이야기가 될 것 같다.(미안하다. 팁이라 해봤자, 고기 구워주는 이모님에게 건넨 1만 원 짜리 아니면, 호텔 커피숍의 부가세 포함 서비스 금액 영수증만을 기억하고 있어서…낯설다.)

다만, 이 책의 제목과 이어지는 "감정노동"에 대해서는 한 번 고민 해 볼 수 있었다.(그렇다고, 거창한 의미부여는 하지 말길 바란다) 국내에서도 이제는 익숙해진 "감정노동"이란 단어의 어원은 아마 호텔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서비스업의 대표 업종이 호텔리어가 아닌가? 접객을 해야 하고, 그 서비스의 "균질화"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압박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호텔리어이다.(책에서는 교육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지 않았다). 물론, 저자는 재치 있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런 재치와 성격만으로 극복하기엔 이 사회의 "벽"이 너무 두터워졌다.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주인공은 "옛날"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옛날 인간냄새가 나는 호텔을 말이다.(누군들 안 그러겠는가? 언제나 우리의 추억은 아름다우니) 호텔업을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인간미를 보여주던 옛날 방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적어도 예전 시스템에서는 인간이 끼어들 자리가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든다면, 그 "인간성"이란 게 와인을 집어 간다거나, 비품을 집어가는 것들을 의미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한다. 물론, 프런트 데스크의 재량권이나 인간적인 유대를 기본으로 한 관계의 단절도 분명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많은 부분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 영화 <선샤인 클리닝> 중 한 장면.

역시나 "시선"의 문제였다. 사용자 측에서는 "효율"의 극단을 추구하게 돼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면서 계량화와 수치화의 극을 추구하게 됐고, 철저한 분업화와 이를 통한 매뉴얼의 확보, 그리고 서비스의 균질화를 추구하게 됐다. 더구나 이 호텔의 소유자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사모펀드가 아닌가? 문제는, 사람이란 존재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기계처럼 품질을 균질화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의 매뉴얼은 만들 수 있겠지만, 감정이나 컨디션까지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는 없다. 거기에 함정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받은 모든 서비스 훈련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손님이 내게 팁을 주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 호텔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객실에 있는 안내 책자를 읽어보세요."

아마도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위'에선 효율을 찾는다면, '아래'에서도 효율을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행동 이면에는 인센티브가 작용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공짜점심은 없는 것이다. 이런 당연한 행동을 했던 저자는 결국 해고됐다. 물론 저자는 나름 인정받았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으며(고객에게 감사편지도 받았다), 호텔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단 한 번 빡빡하게 변해가는 효율이란 이름의 시스템에 목소리를 냈을 뿐이다. 그게 끝이었다.

효율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을 팔아야 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효율이란, 기계가 되라는 소리가 아닐까? 그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생계'란 채찍으로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까? 끝을 봐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 사회이니 한 번 어디까지 가는지 봤으면 좋겠다.

(거창하게 썼지만, 이 책에는 이런 내용이 거의 없다. 끝 부분에 살짝 변명 비슷하게 나올 뿐이고, 지금 필자가 쓴 내용은 없는 머리를 쥐어짜내 뭔가 좀 있어 보이려 포장한 것이다. 포장이…덜 된 거 같지만 그냥 읽기 바란다.)

예전 첫 해외여행에서 팁을 안 줬다고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선배와 함께 트윈 베드 객실에 들어갔는데, 아침에 팁을 놓고 가야 할지를 고민했었다.(4박5일 투숙이라 메이드들에게 팁을 줘야 할 상황이었다) 문제는 둘 다 고액권 밖에 없어서 팁을 놓고 가기를 주저했고, "하루쯤 어떠랴, 내일 좀 더 주지"란 가벼운 생각으로 방문을 나섰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온 선배와 난 "개판"이 된 방을 봤다. 아침까지만 해도 좀 지저분한 방 정도였는데, 밤에 돌아와 보니 침대 시트로 이글루를 만들어 놓았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 모습을 보고 난 후 팁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했겠지만, 무식한 선배와 난 절대 팁을 주지 말자며 맹세를 했고, 방을 더 개판으로 만들었으며, 프런트에 가 "좀 과격한 항의"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난해한 설치미술을 그 호텔방에서 창작해 냈다. 남은 3일 동안 선배와 난 침대로 피라미드를 만들고, 샴푸로 그림을 그렸으며, 방 구조를 바꾸는 시도를 했다.

만약 저자가 호텔에서 근무했을 때 나 같은 손님을 받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