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린 잘 있어요, 마석>(고영란·이영 글, 성유숙 사진, 샬롬의집 기획, 클 펴냄). ⓒ클 |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은 우리에게 생소한 마석이라는 공간에 대한 스케치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을날의 수채화처럼 부드럽게, 그렇지만 1500만 화소의 카메라 렌즈처럼 명확하게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생활세계와 한국인과 이주민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관계에까지 침착하게 스며들면서 그려내고 있다.
마석의 정확한 명칭은 '마석 가구공단'이고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녹촌리이며, 마석가구공단이라는 이름 전에는 '성생공단'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이 지명은 이곳에서 집단으로 양계를 하며 생활을 영위했던 한센병 환우들의 공동체였던 '성생원'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60년 전후로 마석에 유입된 한센병 환우들은 양계를 시작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원주민과의 갈등이 심각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 상황은 진정되었고 한센병 환우들의 1차 이주는 잘 마무리 되었다. 한센병 환우들이 집단적으로 마석에 거주를 시작한 지 15년여가 지난 후 축산과 농사를 병행하면서 이주민이 아닌 주민으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 ▲ 초기 한센인들의 정착 마을 풍경. ⓒ클(사진 제공 샬롬의집) |
이렇듯 평범한 촌락이었던 마석이 가구를 생산하는 공단으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부의 상수원 보호정책 때문이었다. 정부에서는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팔당댐 근처의 축사 시설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정책의 파장은 마석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규제에 의해 생업이었던 양계업을 못하게 된 마을 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새로운 생산수단이 필요했다.
주민들은 축사를 개조하여 공장을 만들고 세입자에게 임대를 주면서 월세를 받기 시작했는데, 원주민과의 갈등은 이미 자연스럽게 봉합된 후였으며 건물주라는 공통된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때부터 원주민과 이주한 한센병 환우들과의 관계는 1차 이주민과 원주민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새로운 2차 이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소위 이주노동자라 불리는 2차 이주민은 1990년 전후로 마석공단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3D업종을 기피하는 한국인 노동자를 구할 수 없었던 공장주들과 미등록(불법) 상태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이주노동자와의 필요충분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마석에서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울과 경기 인근에도 이주민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지만 마석처럼 생활세계와 직업공간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은 없었다. 이는 미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에 수시로 실시되는 단속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기도 했다. 여기에 국가별로 공동체가 만들어지면서 이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마석공단으로 몰려들었다.
| ▲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공간은 공장건물들 사이에 위치해 있다. ⓒ클(사진 제공 성유숙) |
그러다보니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문제를 상담하고 도움을 주었던 단체가 지금의 남양주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이다. 성공회 교단에서 운영하는 이 단체의 원래 이름은 '샬롬의집'이었다. 초기 '샬롬의집'은 이주노동자들이 마석에 이주하기 전 한센병 환우들을 위한 복지 사업을 하였는데,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한 복지 서비스로 전환하였다. 이처럼 남양주 외국인근로자 지원센터와 이주노동자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지속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삶만을 집중해서 조명하다보면 이와 같은 공간적·사회적 배경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책에서는 이러한 사실까지도 섬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현주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저자들은 투자한 시간만큼이나 마석공단의 역사와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궤적을 꼼꼼히 추적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의 오늘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주민들은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생활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기를 꺼려한다. 그들은 출신국을 떠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적·사회적 네트워크를 포기했고, 새로운 환경인 유입국의 주류사회 구성원에게 갖게 되는 경계심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주민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은 녹록치 않으며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영란 작가는 1년여의 시간 동안 이주민과의 라포르(rapport, 친밀감)를 형성함으로써 그들과의 사회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그들의 생활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는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마석공단에서 이주민과 함께 생활한 이영 사무국장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덕분에 일반 독자들은 이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는 저자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책의 중간 중간 삽입된 사진들은 글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감성적 부분'과 '사실'을 더 명확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 ▲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 ⓒ클(사진 제공 성유숙) |
책의 말미에는 이주노동자를 규정하는 법제도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2004년 8월부터 시행된 고용허가제와 이전에 시행되었던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고 있으며 제도의 문제점과 시행 과정에서의 모순도 일부 지적하는 등, 현행 제도의 개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은 이주민들의 모습을 글과 함께 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풍경 속의 수채화처럼 담담하면서도 쓸쓸한 색채로 그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주민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적 동시성'과 이주민과 한국인이라는 '사회적 상이성' 사이에서 함께 서 있는 그들과 우리와의 괴리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주민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대와 차별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들에 대한 반감의 원인도 우리 안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힘들고 지쳐가는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대상이 필요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이주민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래 기간 수고로움을 감내한 저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마석공단의 이주민에 관한 사례를 정밀하게 수집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를 토대로 '그들'과 '우리'를 규정짓는 '새로운 다문화주의'의 가능성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쉽다. 마석공단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주민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유입되어 있는 모든 이주민의 문제로 치환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럽과 캐나다의 몇몇 도시에서 발견되는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극복 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개념과 이를 기초로 우리사회에 적용 가능한 '한국적 다문화주의' 모델의 필요성을 제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개념을 정리한 다음에는 '한국적 다문화주의'의 구체적 실천 사례로써 제도 개선을 제안 할 수 있겠다.
먼저, 고용허가제를 대체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의 도입에 대한 강력한 의견 개진이나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사면 방법 등에 관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간단하게 덧붙이자면, 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불문하고 이들이 오랜 기간 동안 산업 현장에서 익힌 기술을 정부의 주관 아래 시험을 치룰 수 있는 '숙련공 영주권 부여제도'를 제안하고 싶다. 더 이상 한국의 젊은 층은 가구 제작이나 염색업을 비롯한 영세 제조업의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들 업종의 기술이 이 땅에서 전수되지 않는다면 한국 산업구조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벤더들의 도산은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일정한 시험제도를 통해 산업현장의 기술이 전수 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둘째, '선택적 다문화가정 지원제도'의 도입이다. 현행 다문화가정 지원법은 가정 내의 경제 상황을 불문하고 지원하고 있으나, 자세한 전수 조사를 통해 소득 수준을 평가하고 가정 형편에 맞는 차등 지원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전문직 미국인 남편을 둔 한국인 아내와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남편을 둔 한국인 아내의 가정경제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역차별에 놓여 있는 한국 저소득층과의 형평성에 조응하는 대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위의 간략한 논의는 다문화주의 개념과 제도 개선에 관한 서평자의 거친 의견일 뿐이다. 기회가 된다면 저자들이 학계와 이민 전문가들과의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새로운 다문화주의'와 세밀한 법제도 구상에 관한 연구, 집필을 앞으로도 지속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서평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다시 한 번 저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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