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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를 사랑했던 소년, 불 붙은 신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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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를 사랑했던 소년, 불 붙은 신을 보다!

[10년 만의 귀환] 소설가 백민석 인터뷰 및 <혀끝의 남자> 서평

백민석의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나는 함께 휩쓸렸다. 내게 백민석은 20대를 함께 했던 동세대 작가였다. 2003년 <죽은 올빼미 농장> 이후 그가 절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여타의 개인적 정황에 대핸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가 잠적해버린 이유가 그의 소설 속에 이미 들어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정도 나쁜 소식은 누구나 듣고 사는 거 아니에요?” (<불쌍한 꼬마 한스>)

▲<혀끝의 남자>(백민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10년이 지났고, 백민석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갑자기 그의 소설집 <혀끝의 남자>(문학과지성사 펴냄)가 출간됐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설레기 시작했고, 나는 일단 그의 예전 소설들부터 다시 읽기로 마음 먹었다.

“유년을 잃어버린 채로 성인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아니?” (<불쌍한 꼬마 한스>)

그 질문 앞에서 쉽게 “안다”라고 답할 순 없었다. 백민석의 소설들을 처음 읽었을 때는 20대 초반이었고, 마지막 샴페인의 거품이 넘쳐흐르던 시절이었다. IMF는 아직 닥쳐오지 않았다. 모두가 화려하고 즐겁게 욕망과 쾌락을 이야기했지만 나 혼자 그 흐름에 속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것 같아 늘 초조하고 불만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민석이 위에서 질문에 대해 내가 “안다”라고 할 순 없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고 잘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세계, 사적/공적 폭력이 도처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난과 불행이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던 세계, “내 가난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가난이 아니다. 내가 겪은 가난은 누구는 가난했고 누구는 가난하지 않던, 그런 시절의 가난이다”라고 서술되는 세계(<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중 ‘이 친구를 보라’)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어 계속 주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백민석은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가장 격렬한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였다. <헤이, 우리 소풍 간다>(문학과지성사 펴냄)와 <내가 사랑한 캔디>(김영사 펴냄),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문학동네 펴냄)의 분노와 슬픔과 환멸의 정서에 희미하게나마 감정의 공명을 느꼈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문학과지성사 펴냄)의 차가운 유머감각과 <불쌍한 꼬마 한스>(현대문학북스 펴냄)의 성숙한 따뜻함을 매우 좋아했고, <목화밭 엽기전>(문학동네 펴냄)의 난폭한 질주에 어쩔 수 없이 매혹됐고 <죽은 올빼미 농장>(작가정신 펴냄)의 기묘한 퇴행적 감각 앞에선 좀 당황하기도 했다.(<러셔>(문학동네 펴냄)는 아직 읽지 못했다.)

“‘나 같은 애? 나 같은 애가 뭐지?’ (…) 사실 나 같은 애가 뭘까, 라는 탐구는 지적 낭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 같은 애, 가 뭔지 알기 위해선 너 같은 애, 가 뭔지 알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걸 알기는 아주 쉽다. 한국사회에서 우린 벌써, 하나의 전형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중 ‘이 친구를 보라’)

어디선가 나지막한, 어떤,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씨발놈들…喜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씨발놈들…喜가 한쪽 구석에서 K들을 노려보고 있다. 홍채가 돌아가고, 뒤집혀져 있다. 흰자가, 충혈된 흰자가 랜턴 불빛을 받아 핏빛으로 번뜩이고 있다. 알겠어, 씨발놈들…
(…) 누가 이 쓰레기들을 치워줄 거지? 喜가 으르렁거린다. 누가 이 쓰레기들을 치워줄 거지? (…) 이제 아주 커다란 장의차가 올 거야, 와서, 와서 너희들을 실어가버릴 거야…喜가 계속 으르렁댄다. 너희, 쓰레기들을 아주 치워가버릴 거야…치워가버릴 거야…
(…) 예, 말씀하세요…나, 뽀빠이, 야…예? 나, 뽀빠이라고…호호, 여자 MC가 호호, 하고 웃는다, 재미있으신 분이네요…그래요, 나, 재미있어요…이 늦은 시간에 차 속에선 뭘 하고 계시는 건가요? 뭘 하긴…아참, 엠씨께선 혹시 미친 뽀빠이 새끼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셨는지? 예? (…) 좋아요,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고 계시는 건가요? 뽀빠이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어딜 가는 중이냐고요? 그래요.
소풍을 가는 거지요…소풍요, 소풍? 이 밤중에요? 어디로요? 어디? 그곳은 이미 다 잊혀진 곳이지요…예/ 씹고 난 껌처럼 버려졌으며, 누군가의 구두 밑창에 붙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져버린 곳이지요…예? (…) 말씀을 똑바로 해주세요, 여자 MC가 짜증난 투로 지껄인다…헤이, 우리 소풍 간다! 뽀빠이가 폭소를 터뜨린다, 우헤헤헤.
우리 소풍 간다, 씨발년아, 가면, 네년 엉덩이가 그리워질 거다, 우헤헤헤…어머, MC가 어머, 하고 외친다…씨발년아, 우린, 누구나 그곳으로 간다…메카, 예루살렘, 부다가야, 쥬래씨파크, 쥬래씨파크…뽀빠이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낸다, 이 쌍놈의,
씨발년들아…어머! 우린 누구나 그곳으로 간다…우린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우헤헤헤…어머! 여자 MC의 당황한 목소리가 뽀빠이의 웃음 소리 새새로 들려온다, 어머, 죄송합니다…청취자 여러분 죄송해요, 이봐요, 연출!…우린 이미, 죽은 지 오래다! 우린 이미 그곳의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안 그래? 헤이! 우리 소풍 간다! 소풍 간다! 우헤헤헤…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백민석의 새 소설집 <혀끝의 남자>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가 단단하게 뒤엉켜있다. 예전의 백민석을 알던 이들 중 일부는 당황할 수도 있고, 예전의 백민석을 알지 못하던 이들 중 일부도 당황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축복받은 골짜기로 가는 골목들은, 지금 내 기억이 그런 것처럼 어디쯤에선가 막혔다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다시 이어지고 있거나, 아니면 영원히 지워져 버렸다.”(<혀끝의 남자> 중 ‘폭력의 기원’) 이미 막혀버린 옛 골목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게 아니라, 백민석이 택한 또 다른 길을 뒤따라 달려가는 편이 좋다.

지난 1월 14일 서울 합정역 인근의 카페에서 백민석을 만났다. 백민석은 유쾌했고, 진지했고, 농담을 잘했다. 질문을 던졌을 때 번번히 예상과 다른 답변이 돌아왔지만, 그런 오해의 과정마저 재미있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며, 백민석의 신작 <혀끝의 남자>에 대한 문학평론가 백지은의 서평도 함께 준비했다. <편집자>

▲소설가 백민석.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이번에 인터뷰 준비 때문에 다시 한 번 당신의 전작들을 죽 읽으면서 느낀 가장 강렬한 감정은 분노였다. 오히려 어릴 땐 잘 이해하지 못했던 그 넘쳐나는 분노의 느낌을,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강하게 감응했던 것 같다. 이렇게 특정한 정서에 휩싸이게 하는 소설을 보면 늘 궁금하다. 작가 본인도 이 작품들을 쓸 때 그 같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을까? 최근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당신은 ‘우울증이 심해진 게 글쓰기를 그만둔 주요한 원인이었고,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라고 했던데.

백민석 : 감정 이입을 안 하면 인물이 안 나온다. 그 사람을 상상하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면서 닮아갈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 그 과정을 어떻게 감당한 건가?

백민석 : 감당을 잘 못했다. 지금도 살벌한 내용의 장편을 쓰고 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어느 정도 컨트롤이 되더라. 예전엔 특히 <목화밭 엽기전>(문학동네 펴냄)을 쓸 땐 내가 살인마 주인공 한창림처럼 되어가는 걸 스스로 느꼈다. 후회도 많이 했지만, 그렇게 안 하면 인물이 살아나질 않으니까 이를테면 나를 좀 희생한 셈이다. 그런 희생 끝에, 그래도 한국문학사에 좀처럼 없던 유형의 인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웃음)

▲<목화밭 엽기전>(백민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목화밭 엽기전> 등이 처음 출간됐을 당시의 독자들 반응은 어땠나? 그 격렬한 감정에 감응했던 사람들이 많았을까.

백민석 : <목화밭 엽기전>은 내 책 중에서 제일 많이 팔렸다. 1만부 넘게 나갔으니, 일차적인 독자 반응은 괜찮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는 인터넷도 활발한 시절이 아니니까, 독자들의 개별적인 반응을 접할 길이 없었다. 이제 와서 사람들이 하는 말로는, 10년 넘게 지나서도 여전히 그때의 내 소설들을 따라하는 후배 작가들이 있다고 하니까 꽤 격렬한 반응이 있었던 걸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목화밭 엽기전> 출간 후에 부산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청중들이 200명 넘게 왔던 기억이 난다. 앉을 자리도 모자라서 막 서서 듣고 그랬다.

프레시안 : <불쌍한 꼬마 한스>부터 소설 속 화자는 ‘도서관 소년’으로 자주 묘사된다. 본인의 유년기를 반영한 문구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데, 그 이후 글을 쓰기 시작한 시기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도서관 소년’이 글 쓰는 사람으로 넘어가는 건 굉장히 큰 변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언제쯤이었나.
백민석 : 고등학교 1학년 아니면 2학년 때부터. 그때 선생님 중 한 분이 시인이었는데, 전교조 소속이었다. 한국에 전교조가 처음 생겼던 시절인데,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시기까지 했다. 그분이 문학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니까, 나도 글을 쓰게 됐다. 그 선생님께 글을 자주 보여드렸다.

프레시안 :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건가.

백민석 : 어두운 이야기지. 사춘기 소년이니까. 어둡고 음침하고 안 즐겁고 안 웃긴 거. 어려서부터 책을 참 많이 읽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써보고 싶었다.

프레시안 : 그 선생님이 당신의 글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해주셨나. 혹시 기억나는 게 있다면.

백민석 : 기억나는 게 없다. 별로 코멘트를 안 해주셨던 것 같다. 선생님 마음에 그리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웃음)

프레시안 : 당신의 소설에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 화자들은 법적 나이로 성인이더라도 소년의 정신에 머물러 있고, 이들의 유년기에서 그나마 강렬하게 남아 있는 어른은 이를테면 안 선생님(<헤이, 우리 소풍 간다>)이라든가, 고릴라 선생님(<내가 사랑한 캔디>) 같은 경우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기억을 잃거나 몸과 마음이 망가지는 상태에 처한다. <불쌍한 꼬마 한스>의 작가 후기에도 당신은 ‘내가 스스로 어른이 되기로 했다’고 쓴 바 있는데, 당신과 화자 둘 다 갈구했던 어른은 어떤 존재였던 건지, 혹은 그들이 제대로 형상화될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이를테면 가장 최신작인 <혀끝의 남자>의 동명 표제작에서 주인공은 이제 40대로 추정되는 남자고 어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백민석 : 나의 반영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에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었고, 지금의 나 역시 나이는 들었지만 남한테 존경받을 만한 어른이 못 됐고.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어른들을 바라봤던 것 같고, 소설적으로 너무 완벽한 어른을 바랐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래서 지금 후회하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싶어서.

프레시안 : 그렇다면 그 ‘어른’의 정체는 주로 선생님들이었던 걸까.

백민석 : 원래 롤 모델은 대개의 경우 부모님이 맡아야 하는데, 나는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좀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 그래서 밖에서 어른을 찾았는데, 학교 선생님이거나 아르바이트했던 술집의 사장님이라든가, 문단에 나와서는 평론가 선생님들에게서 롤 모델을 찾아 돌아다녔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런데 당시엔 잘 못 찾았다.

▲소설가 백민석.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혀끝의 남자> 수록작인 ‘폭력의 기원’에서 <헤이, 우리 소풍 간다>의 동굴을 다시 한 번 맞닥뜨리는 순간, 당신의 소설 속 폭력의 기원을 정말 다시 한 번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부러진 개머리판, 형체를 알 수 없이 삭은 범포 조각, 물 대신 흙이 채워진 수통, 쇳덩이로 된 라이터, 탄피 여러 개, 짐승이 씹은 자국이 있는 군화 한 짝”이 흩어져 있던 그 동굴, 그리고 당신의 여러 소설 속 홍제동 철거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폭력들은 어린 아이들조차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내야 했던 현장이었다. 어릴 땐 그 폭력의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데, 성장하면서 어떤 이해 과정을 거쳤을지 궁금하다.

백민석 : 책 덕분이다. 경험은 누구나 하지만 그걸 의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하는 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 같다. 서울예대 문창과에 입학해서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겪었던 이런 것들이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구나, 혹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이 책과 저 책의 해석은 다르구나 하는 점을 새로 알게 됐다. 경험은 책과 병행하는 것 같다. 직접 경험도 있어야 하고 간접 경험도 있어야 한다. 간접 경험이 독서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내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는 책에서밖에 못 배우는 것 같다. 책이 없으면 사유의 과정을 배울 수 없다. 그게 유일한 매체다. 영화도 만화도 안 된다. 책을 통해 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좋은 소설가는 전부 다독가였던 것 같다.

프레시안 : 당신의 소설에서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공간은, 당신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홍제동 철거촌과 안양이다. 그리고 <죽은 올빼미 농장>에서 고등학교 때 이사 갔다는 암사동 아파트촌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등장한다. 일단 이 세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가장 크게 느낀 차이점은 무엇인가.

백민석 : 홍제동은 근대인 것 같다. 한국이 고도성장하기 이전의 저개발 시대였을 때, 그게 홍제동 시절이다. 암사동과 안양은 고도성장 이후, 아파트 시대가 열린 현대인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10대 시절 암사동 아파트촌으로 이사했을 때, 이전의 홍제동에서 굉장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을 텐데 어떤 차이를 느꼈나.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죽은 올빼미 농장>에 묘사되는 아파트의 묘사가 홍제동과 안양에 비해서는 화자 본인이 깊숙하게 몸을 담그고 있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백민석 :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사실 내가 이사 갔던 곳은 서민 아파트였다. 겉모습은 아파트지만 내부는 그전에 살던 무허가 주택과 다를 바 없다. 그 당시 나라에서 지어준, 극빈자에게 줘버린 아파트, 그런 곳을 가본 적 있나?

프레시안 : 없다.

백민석 : 11평짜리, 상상이 안 갈 거다. 그래서 사실 내 삶이 달라졌다는 큰 차이점을 느끼질 못했다. 여전히 지저분하고 누추하고 비루했다.

프레시안 : <혀끝의 남자> 수록작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를 보면 공장촌이었던 안양의 예전 과거를 이야기하던데, 혹시 당신이 안양에 정착했을 땐 공장촌들이 이미 사라진 이후였나?

백민석 : 맞다. 하지만 과거의 흔적은 남아 있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옛날 구로공단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구 시가지 쪽에 가보면 사람 없는 살풍경한 잿빛 풍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양의 옛날이 이랬던 건가 싶었다.

프레시안 : 특히 안양천에서 산책하는 에피소드가 되풀이되는데, 산책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백민석 : 생각하는 시간이다. 집에 있을 땐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그건 전혀 다른 일이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할 땐 생각을 시작한다. 읽었던 책을 되짚어보고, 쓰는 소설을 고민하고. 지금 내 핸드폰의 메모 프로그램을 보면, (그는 전화기를 꺼내어 직접 보여주었다) 여기 적힌 메모들이 산책하면서 적은 소설의 소재들이다. 그리고 집에 가서 컴퓨터로 옮긴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백민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프레시안
: 실제로 보면 당신은 뚱뚱하지 않은데, 이전작들부터 계속 주인공 ‘나’는 자꾸 스스로를 뚱뚱하다고 되풀이 부정적인 어조로 언급한다. 상대방 캐릭터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굉장히 가냘프고 창백하고 바스라질 것처럼 묘사되고. 그렇게 선명한 육체성의 대비가 왜 자꾸 등장하는지 궁금했다.

백민석 : 나는 의학적으로 비만이 맞다. 상대방 여성이 마른 체형인 건 내 취향이고.(웃음) 1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고도비만일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빠진 거다. 난 뚱뚱하다. 건강검진을 하면 늘 ‘위험’으로 나온다. 한때 60킬로그램까지 살을 뺀 적도 있었다. 그땐 날씬했던 게 맞다. 뚱뚱하다고 되풀이 말하는 게 뭔가 내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스스로가 뚱뚱할 땐 그걸 인정한 뒤에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혀끝의 남자’는 인도 여행기다. <불쌍한 꼬마 한스>를 쓰기 전에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는 안 간 것인가?

백민석 : 안 갔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처음에 인도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백민석 : 죽으려고. 그땐 괜히 좀 그랬다. 인도라는 게 일생의 마지막에 가야 하는 곳 같았다.

프레시안 : 음…그렇다면 15년 전 봤던 인도의 어떤 것이 당신을 그토록 강렬하게 사로잡았을지, 그래서 한참 지난 후에 ‘혀끝의 남자’를 썼을지 궁금하다.

백민석 : 너무 이국적이어서 그랬을까. 상상도 못할 곳이었다. 길거리에서 소가 아무렇지 않게 똥을 싸고, 그곳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똥을 밟았다. 한국에선 전염 위험이 없는데도 한센병 환자들을 국가 차원에서 격리하던 때가 있었는데, 거긴 인도 판 롯데백화점 앞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구걸한다. 서울역 광장 비슷한 곳은 전부 노숙인 잠자리였고. 그들을 따로 데려갈 곳도 없고, 아무도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회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냥 내게는 문화 충격이었다. 그러다가 또 캘커타에 가면, 거긴 전세계에서 IT기술이 가장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곳이잖아.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한국의 대학가는 전부 술집인데, 캘커타의 대학가는 전부 책방이다. 어느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정말 큰 차이가 났고, 너무나 이질적인 곳이었다.

프레시안 :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그렇다면 인도에 갔던 애초의 결심을 꺾고 그냥 돌아온 이유는….

백민석 : 너무 힘들어서였다. (웃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이 정도 고생할 바에야 차라리 사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을 정도였다.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는데, 한번은 사막에서의 일사병 때문이었고, 또 한 번은 보트 타고 갔을 때 강도한테 습격당했을 때다.

프레시안 : 출간 순서대로 책을 읽다보니, 개인적으로 <불쌍한 꼬마 한스>부터 많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민석 : 글쎄, 그때의 변화라면 우울증이 심했던 것밖에 없다. (웃음)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 출간되고 <죽은 올빼미 농장>을 쓸 때가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무렵이다. 그 장편까지 마치고 단편 몇 개를 더 쓴 다음 글쓰기를 그만뒀다. 혹시 <목화밭 엽기전>처럼 센 작품이 안 나왔다는 뜻인가?

프레시안 : 감정적이거나 폭력적 세기의 문제는 아니다. 화자가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화자를 다루는 방식을 좀 더 장악했다는 느낌이었다. 그 전엔 주인공들을 풀어두는 느낌이었다면 이후에는 작가가 그들을 꽉 잡아두고 있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죽은 올빼미 농장>(백민석 지음, 작가정신 펴냄). ⓒ작가정신
백민석
: 잘 모르겠다. 난 우울증밖에 생각 안 난다. 마지막 장편이 <죽은 올빼미 농장>이었는데, 아까 질문에도 나왔지만 암사동 아파트촌이 홍제동이나 안양만큼 실감나게 묘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암사동에 살아서 달라진 게 아니다. 그냥 그때 우울증이 심해서 글을 잘 못 썼던 것 같다. 상상력도, 정서적으로도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작품이 안 나왔다. 지금도 작가정신 출판사에 많이 미안하다.

프레시안 : 90년대 중후반, 당신을 비롯하여 당시 등단했던 수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서구로부터 수입된 대중문화적 자의식이 강하게 드러났지만, 당신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게,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의 이질성 때문이었다. 장원, 저택, 집사, 심부름꾼 소년 이런 소재들은 우리가 어릴 때 <소공자><소공녀> 등을 읽으면서 느끼는, ‘서양은 이런가 봐’라는 상상 속의 이미지 아니었을까. 극동 작은 나라의 아이들이 실제 서양의 현실을 알 수는 없지만, 그쪽 대중문화를 탐닉하며 상상하게 되는 머릿속 윤색된 이미지가 존재하는데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서구 대중문화 차용의 방식이, 백민석이라는 작가를 통과하면서 개인적인 윤색과 재창조를 거친 기묘한 느낌이었다.

백민석 : 글쎄, 재창조라기보단, 아마 <불쌍한 꼬마 한스> 이후로 나의 유년기에 대해 많이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엔 주로 현재를 얘기했고, <불쌍한 꼬마 한스>나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은 직접적으로 내 유년의 이야기였다. 그 유년을 묘사할 때 가져온 소품들이, 내가 어릴 때 보고 들었던 서구 대중문화였기 때문에…

프레시안 : <헤이, 우리 소풍 간다>에서도 유년기를 다루지 않나?

백민석 : 그건 맞는데…그땐 내 유년기를 써야지라는 자의식은 없었다. 그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끌어온 장치였다. 하지만 <불쌍한 꼬마 한스> 이후부터는 계속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까 얘기한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 나오는 대저택 같은 경우, 실제 있던 집이다. 단편 ‘폭력의 기원’에도 등장하는 그 부잣집 친구네 집이다. 실제 인물이고, 내가 걔 대신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에피소드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프레시안 : ‘혀끝의 남자’에는 “남자는 머리에 불을 이고 혀끝을 걷고 있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그 문장을 처음 읽는 순간 소설 배경이 인도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신약 성서의 ‘사도행전’에 언급되는 불의 혀가 떠올랐다.

백민석 : 어, 안 그래도 요즘 ‘사도행전’을 읽고 있는데…그런데 거기 불의 혀가 나왔던가?

프레시안 : 신도들이 불의 혀 모양의 성령을 입고 낯선 방언들을 구사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세계 각국으로 전도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연상하면서, 이번 신작 ‘혀끝의 남자’가 작가 자신이 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던지는 출사표가 아닐까 상상했는데, 이번에도 빗나갔나보다. (웃음)

백민석 : 머리에 불을 이고 있다는 건…글 쓰는 사람들한테 가끔씩 어느 날 갑자기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 이미지 역시 집에 가는 길에 시장 한복판을 걷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헤이, 우리 소풍 간다>(백민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프레시안
: <혀끝의 남자> 수록작 중 ‘혀끝의 남자’와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을 제외한 나머지 7편이 기발표작을 개작했다. 절필 이전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 중 일부를 고른 것이라 들었는데, 이들을 선택한 기준이 무엇이었으며 주로 어떤 부분을 수정한 건지 궁금하다.

백민석 : 발표했던 단편 중 이번에 싣지 않은 게 1/3 쯤 되는데…아니, 절반 가량인가? 어쨌든 버린 기준은 진부하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게 유일한 기준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봤을 때 누구나 다 뻔히 생각할 수 있는 거면 버렸다. 살아남은 단편들도, 당시 워낙 우울증이 심했을 때 썼기 때문에 문장이 죄다 엉망이더라. 문학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요소가 제대로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내용은 그대로지만, 문장이나 플롯의 문제들을 뜯어 고쳤다. 제목도 전부 바꿨다.

프레시안 : 아마 <혀끝의 남자>가 출간되자마자 가장 먼저 읽은 이들은, 당신의 작품과 함께 성장한 동세대 독자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0년만의 새 책이다 보니, 아마 당분간은 그 독자들로부터 ‘왜?’란 질문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던 백민석과 다른데?’라는 질문 말이다. 굳이 독자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고 그럴 이유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백민석 : 난 매 소설마다 달랐다. 자기복제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작가가 뭐 하나 있으면 죽을 때까지 그 스타일로 계속, 지겨울 정도로 반복한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혀끝의 남자>에 실망해도 어쩔 수 없고 독자가 안 늘어나도 상관없다. 난 아마 끝까지 그럴 거다. 매 작품마다 분노나 슬픔의 감정 자체는 공통적이겠지만 작품 형식이나 풀어가는 방식은 매번 조금씩 달라질 테고, 그걸 받아들이는 이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까진 어쩔 수 없다.

프레시안 : 10년 동안 절필했던 이유, 어디서 뭘 했는가라는 질문은 워낙 많이 받은 바 있고, <혀끝의 남자>의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 자체가 거기에 대한 해명글로 작용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묻진 않겠다. 다만 궁금한 건, 절필한 뒤 기존의 인간관계를 끊고 거주지도 전혀 다른 곳으로 옮기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간 그 급작스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을지가 궁금하다.

백민석 : 대부분 그걸 못한다고 하던데, 왜 못할까? (웃음) 난 가능하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 걸까.

프레시안 : 음, 90% 사람들에겐 불가능할 것 같은데….(웃음) 스스로에게 금지한다는 것과 아예 욕망을 갖지 않는 건 다른 문제지 않나.

백민석 : 억압하는 거다. 그러면 거기 대해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아예 없어진다. 스위치를 꺼버리는 거다. 금연도 그런 식으로 성공했고, 살을 빼겠다고 결심했을 때 60킬로그램까지 체중을 줄였다. 20대에 등단해서 8년 동안 8권의 책을 꼬박꼬박 낸 것도, 사실 그런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예전에 회사 동료들이, 내가 여자든 술이든 도박이나 게임이든 무엇에도 중독되지 않았다는 게 참 희한하다고 하더라.

프레시안 : 그럼 10년 만에 다시 글을 쓸 때에는, 글을 쓰는 감각이랄까 습관 같은 부분이 천천히 돌아오진 않았나?

백민석 : 아니다. 바로 가능했다. 스위치를 켰으니까. (웃음)

프레시안 : 그 감각이 바로 부활했다고?

백민석 : 그렇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백민석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프레시안
: 좀 다른 경우긴 한데, 일본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경우 학생운동 참여 전력 때문에 구속됐는데 감옥에서 실어증에 걸렸고, 출소한 뒤 재활 노력으로 하루 종일 한 문장을 내리 쓰면서 실어증을 극복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10년 동안 절필한 작가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땐 틀림없이 적응 단계가 있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또 다시 충격 받았다. (웃음)

백민석 :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다카하시 겐이치로와 나는 다른 케이스다. 그분은 글을 쓰면서 실어증을 치료했고, 난 글을 쓰지 않음으로써 우울증을 치료했다. 그분이나 나나 자가 치료를 했지만, 같은 치료법이 적용될 수 없는 다른 병을 앓았던 거다. 우울증이 생긴 주요 원인이 작가라는 점이었기 때문에, 스위치를 꺼버림으로써 그 원인을 없앴다. 10년 동안에 많이 좋아졌다. 지금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나? 예전엔 우울증 환자 같았다. 눈빛에도 초점이 없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우울증 환자인지 아닌지 딱 알아볼 수 있다.

프레시안 :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금은 걱정이 안 되나.

백민석 : 이젠 자기 컨트롤이 되니까. 물론 지금도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 스위치를 끌 수 있다. 또 힘들어지면 어디 취직해서 회사를 다닐 거다.

프레시안 : 회사 생활이라는 게 일상을 아주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행위이며 신체와 습관조차 바꾸는 조건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 글쓰기를 그만두고 취직했을 때, 또 글쓰기를 재개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쉽게 예전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백민석 : 회사 그만두면서 또 그 직장 스위치도 꺼버렸으니까. 요즘도 그때처럼 6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긴 하지만, 직장인 생활과는 완전 달라졌다. 그땐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고독에 익숙하다. 이렇게 바뀌는 게 정말 안 된단 말인가? (웃음)

프레시안 : 2000년대 초반까지 교류했던 문단과 절연한 뒤 10년 만에 다시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을 텐데, 확연하게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나.

백민석 : 새로운 얼굴, 못 보던 얼굴이 많이 나왔다는 것 정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작가들이 술자리에 거의 안 나오더라. 얼마 전 문학과지성사 망년회에 갔을 때 아는 얼굴이 없었고, 나는 졸지에 대선배 취급을 받았다. 어처구니가 없지. 그만두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웃음) 새로운 얼굴이 많다는 게 기분 좋기도 했지만, 또 그들 중에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들이 날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 하는 생각도 혼자 해보고. (웃음)

프레시안 : 현재 집필 중인 장편이 종교와 폭력을 주제로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혹시 이 자리에서 조금 소개해 준다면.

백민석 : 종교와 폭력은 떨어질 수가 없다. 종교 자체가 폭력이기 때문에 언제나 붙어 다니게 된다. 지금 쓰는 소설도 아마 꽤 폭력적일 것이다. <목화밭 엽기전>의 주인공 한창림이 여기 또 등장한다. 지금까지 1/4 정도 썼는데, 한 마디로 말하자면 미친 사람들, 제 정신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프레시안 : 요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

백민석 : 책 읽는 건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배었기 때문에 끊기가 어렵네.

프레시안 : 오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소설을 통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종이·활자 매체에 대한 강고한 지지 입장을 밝힌다는 점이 놀라웠다.

백민석 : 난 책을 사랑한다. 꼰대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얼마 전에도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트위터의 140자 공간 안에서 어떻게 사유가 가능하냐고 잔소리했더니, 바로 누군가가 트위터에 “백민석 꼰대”라고 올렸다고 하더라. (웃음)

프레시안 : 사실 트위터가 사유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렇게 누군가에게 “꼰대”라고 놀리기 위한 공간이니까….(웃음)

백민석 : “꼰대”라고 욕을 한 마디 하기 위해, 그걸 증명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지금은 140자 안에서 누군가가 꼰대라는 결론을 써버리면 그만이다. 난 그게 싫다. 사유가 140자밖에 안 된다는 게, 그만큼 축소가 됐다는 게.

병든 기억의 구도(構圖/求道)

글 백지은(문학평론가)

그가 영영 안 돌아오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한국 문학의 꾸준한 독자들이라면 계절에 한 번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릴 일이 생기곤 하지 않던가? '믿거나말거나박물지사', '한스', '캔디', '목화밭', '장원', '농장' 등 백민석 표 고유명사들의 파장이 여전히 한국 문학이 탐구하는 어떤 분위기와 정서 안에서 수시로 발생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테고, 그 이유만으로도 10년의 공백에 잊히거나 사라질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데 '진짜로' 백민석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별로 기다릴 새도 없이 그의 새 소설집을, 10년 전보다 10년 쯤 원숙해진 작가의 사진도 실린 그의 세 번째 단편집이자 아홉 번째 책 <혀끝의 남자>를 손에 쥐게 되자, 놀라움과 반가움을 넘어 나는 조금 당혹했다. 소문과 실물 사이의 시간이 짧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텐데, 그를 지나간 작가로 여긴 적이 없었다지만 바로 '지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어떤 급박함을 느낀 건 나만의 일일까.

그의 '귀환'이 갑작스럽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라진 것도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이상한 절실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간다는 말도 없이 말끔히 자리를 비웠던 그는, 무성한 소문만 피우다 말곤 하는 요란스러움 한 번 없이, 올 때도 곧바로 확실하게 돌아온 듯하다. 왜일까, 그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집 <혀끝의 남자>에는 십년 만에 새로 쓴 두 편과 십년 전 이미 발표했던 작품을 이번에 고쳐 쓴 일곱 편이 실려 있다. 기발표작이 더 많다지만 현재의 손길이 충분히 가해진 그 작품들에서 과거적 의미를 부러 불러낼 필요는 없다. 작가 자신이 이전 작업과의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고.(좌담 ‘헤이, 백민석이 돌아왔다’, <문학과사회> 2013년 겨울호)

▲소설가 백민석. ⓒ프레시안(최형락)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상징 세계의 불필요한 장식들에 대한 염오와 문명 이면의 청렴한 야만에 대한 경사 같은 것은 여전한 듯하다. 진실도 없고 목적도 없는 세계와 그곳을 견뎌내는 격렬한 무의미, 그 무의미를 대면하는 거센 정직은 10년 세월에도 낡지 않았다. 그리고 신작 두 편, 그 중 단편 ‘사랑과 증오의 이모티콘’은 그가 쓰기를 놓았던 10년 전 정황에 대해, 허구의 형식을 거의 빌리지 않은 채로 밝히고 있는 글이고,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까닭이 전면에 드러나 있는 것이 단편 ‘혀끝의 남자’다. 그의 급박한 '귀환'의 변을 이 소설에서 기대해도 될까.

‘혀끝의 남자’는 인도 여행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가는 1998년에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2000년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되었던 <러셔>에도 그 인도 여행의 흔적이 스며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전면적이지는 않았다. 10년의 공백을 여는 이야기로 15년 전의 체험을 소설화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인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나라이기보다 만신의 나라, 인도 여행은 흔히 신성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로 의미화되곤 한다. 그런데 그의 여로는 어떤가. 폭염과 폭우에 지친 신체들이 바가지 상혼에 물든 악다구니 속을 똑같은 가이드북을 들고서 무료하게 흘러 다닌다. 지독한 소란과 악취에 귀도 코도 무뎌진 채 해시시를 말아 피우며 견디는 날들의 무의미는, 카스트 제도와 인종 차별만큼이나 난폭할 정도. 신은커녕 믿을 만한 어떤 신성한 것도 진실한 것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길에서 그가 구하는 것은 구원이라기보다 구도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델리의 붉은 성채도 보았고 타지마할도 보았고 갠지스강의 화장터도 보았고 히말라야 설산도 보았지만 그런 따위들은 벌써 기억이 흐릿"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구원이고 구도고 다 안 될 일만 같았다.

신을 찾아 나선 인간이 오직 신만을 만나고자 했다면 끝내 이 순례는, 아무것도 깨우치지 못하고 아무것도 구하지 못한 채 여행 사진으로나 박제된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느새 스스로 구도를 행하는, 어쩌면 구원의 길조차 어렴풋이 알아버린 이야기가 되고야 말았다. 어째서인가. 어느 날, 태양만 빼곤 모든 게 더러웠던 시 외곽의 빈민가에서 그는, 저 "태양" 같은 것, 그 찬란하기만 한 의미이거나 아니면 내리쬐기만 하는 무의미인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렇지만 나는 무슨 생각인가 하고 무슨 말인가 해야 했다"고 다급한 어조로 털어놓는다.

"발작처럼 찾아오는 어떤 인상들", 인도에서의 첫날 밤 이후 내내 기억의 틈새에 박혀버린 구겨진 형상의 검은 소년과, 대형 슈퍼마켓 벽면에 파리 떼처럼 달라붙어 있던 실업자 신세의 사내들과, 기차역 광장을 뒤덮은 갈 곳 없는 거지와 노숙자들…. 신들의 사원이 아니라 인간들의 진흙탕에서 마주친 그것들을 그는 "기억의 질병들"이라 부르며, 바로 "그것이 내가 하고픈 말이었고 해야 할 말이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은, '병든 기억'의 구도(構圖)가 병과 함께 살아가는 구도(求道)의 길이 되리라는 깨달음이기도 했으니, 15년 전 그때, "십년, 이십년 뒤에도 발작처럼 찾아올 기억들"이라고 예견했던 그 '병든 기억'은 진짜로 1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렇게 ‘혀끝의 남자’라는 소설로 쓰여 그때의 깨달음을 증언해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돌아온 백민석의 출사표 ‘혀끝의 남자’는 신 없는 시대의 구도기(求道記)처럼 읽히고 말았다. 그가 15년 전의 인도 여행에서 구도에 성공한 사례를 이제 와서 적었다거나 그가 글을 안 쓰는 10년 동안 구도에 정진했다는 뜻일 리 없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는 그의 마음이 '길을 구하는' 마음과 같았으리라는 뜻이다. 인도 여행의 기억은 그런 그의 현재 상태를 드러내기에 알맞았을 뿐이리라.

이 소설은 인도 여행의 (아그라-바라나시-보드가야-콜카타-자이살메르-뉴델리로 이어지는) 여정을 나열하고 그 앞뒤에 '나는 혀끝의 남자를 보았다'는 내용의 문단을 붙여 놓은 단순한 구성처럼 보이지만, 두 번 읽고 세 번 읽다 보면 심층적으로 무척 정밀하게 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얼핏 보면 여정대로만 적은 것 같지만, 공허한 만남과 잡담과 담배와 술과 구경꾼들 사이에서 그는 분명, 자기 나름의 순례를 진행 중이다. 갠지스강, 불교 유적지, 회교 예배당, 힌두교 사원, 가톨릭 성당, 자이나교 성채가 보이는 모래 황무지까지 신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는 신을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을 질문했던 것이다.

여정의 끝부분에는, 마침내 그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 신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바하이교' 사원, 신상도 없고 "허공 말곤 아무것도 없"는 예배당에서 그는 "그저 좋았다"고, "가능하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하늘색으로 스며들고 싶었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피곤했고 너무 뚱뚱했고 너무 더러웠고 너무 잘못한 게 많았다. (…) 또 다른 잘못들을 저지르기 위해 항상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고도.

앞에서 말했듯 작가의 인도 체험은 1998년이므로 이때의 심경은 절필에 앞선 심리로 생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그의 '귀환'의 변으로 듣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에서 그는 불현듯 '2013년, 서울 사당동'으로 시공을 건너 '혀끝의 남자/여자' 혹은 '혀끝의 신'을 이야기하는데, 그 많은 신들을 지나 그가 종국에 맞이한 신이 "내 혀끝에서 태어난 신"이고, "그러니 이제 모든 것은 다시 씌어져야 한다"고 똑똑히 밝혔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쓰는 그의 신, 2013년 '사당(祠堂)동', 신들의 집에 모셔진 이 '혀끝신'의 정체는 물론 그의 말, 글, 그의 소설이다. 이 신은 속세의 병든 기억을 주재하는 신이므로, 그는 신과 함께 돌아왔지만 그것은 탈속이 아니라 귀속이다. 속세의 신은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사랑으로만 겨우 신일 수 있으니, "나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라는 맨얼굴의 고백도 성사(聖事)처럼 들어야 한다고 하면, 내가 너무 호들갑인 것일까?

<혀끝의 남자>의 다른 작품을 포함하여 그가 들려주는 아픈 기억의 이야기들은, 그것이 이 폭력적인 세계의 비참을 드러내어 더러 읽는 우리를 성나게는 할지언정, 말하는 자 자신은 분노를 표출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구도를 실현하는 듯 느껴지기에 해 본 말이다. 불타오르는 머리로 완벽하게 고요 속을 걷는 '혀끝남'의 긴장 역시도 분노 폭발 직전의 그것이라기보다 동요 없이 자기 길을 가는 구도의 자세에 가까운 것 같고. 어쩌면 이것이 돌아온 백민석이 이전의 백민석과 달라진 점인 게 아닐까? 신을 구하는 인간의 갈증이 병든 기억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으로 치환되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분노의 표출에서 구도의 실현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아닐는지.

여하간 한번 혀끝신을 본 이상 머리에 불을 이고 고요 속을 걷는 구도의 길을 더 이상 마다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아니,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그 길을 따랐는지, 얼마나 급박하게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을지, 여전히 그는 무표정이라지만 이 책은 꽤 친절히 알려준 편이다. 무표정의 부드러운 속정을 알아챈 느낌이랄까. 이제 그의 무표정은 분노와 증오를 감춘 '표정 지움'이 아니라 곧 어떤 표정으로나 바뀔 수 있는 '표정 직전'처럼도 느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중에 두말할까봐 한 번 더 적어두겠는데, 전에는 잘 듣지 못했던 것만 같은 착한 목소리로 그가 "글쓰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쉿, 아직은 다그치지 말고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미 시작된 그의 종교는 일파만파 퍼지는 중인 듯.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백민석의 <불쌍한 꼬마 한스>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 백민석이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 개인적인 까닭이 이 두 권의 책에 있다. 두 권을 통해 일관적으로 이해되는 하나의 인간(형)이 생겨날 것이다. 그것은 이 작가에 대한 항간의 이해와 오해를 동시에 뚫고서, 가령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록을 만든다면 거기에 추가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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