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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통치자 비난 노래의 '배후'를 찾아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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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통치자 비난 노래의 '배후'를 찾아 나서다

[프레시안 books] 로버트 단턴의 <시인을 체포하라>

로버트 단턴은 1960년대 말부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쳐오며 자신의 독창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미국의 역사가이다. 그의 주요 연구 대상은 풍파가 심했던 18세기의 프랑스이며, 그 중에서도 책을 비롯한 지식의 매체가 여론 형성의 촉매가 되어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작용했던 방식을 추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그가 연구하는 주제는 협소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과정에서 그는 대단히 신선한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그것은 방대한 역사 자료에 대해 친숙한 지식을 갖고 있음은 물론, 인접 학문 분야에 대한 밀도 높은 이해를 통해 그 지식을 처리하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는 숙련성에서 온다.


결과적으로 그는 '인류학적 역사’, ‘관념의 사회사', '밑으로부터의 역사', '미시사', '책의 역사', '내러티브 역사' 등등 이른바 '신문화사'와 관련된 세부 영역 전반에 알찬 자양분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명망 높은 미국 역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시인을 체포하라>(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다양한 방면에 다양한 방식으로 큰 영향력을 미쳤음에도 그의 역사학에 대한 관점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든 시대는 나름의 방식을 갖고 있는 정보의 시대였으며, 언제 어디에서건 의사소통의 체계가 사건을 결정해왔다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저작 <시인을 체포하라>(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도 그러한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18세기 중엽에도 사람들은 시를 암송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메시지를 교환하고 여론을 끓어오르게 했다. 트위터가 없어도 사람들은 의사소통망을 발전시켰으며, 그를 통해 권력투쟁의 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인을 체포하라>는 그 구두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그물을 한 땀 한 땀 세밀하게 복원시키려는 시도이다.


1749년 7월 31세의 의학도 프랑수아 보니는 영문도 모르는 채 경찰에 체포되어 바스티유에서 심문을 받았다. 죄목은 국왕을 대놓고 비방하는 시를 낭송하고 유통시켰다는 것이었다. 치안총감은 베르사유의 직접적인 명령을 받아 이 시의 원저자를 추적하려 했다. 그리하여 이 시를 전달해준 사람들을 역으로 추적하여 차례로 체포했다. 14명까지 추적했으나 결국 원저자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바스티유에 수감되었고 이것이 '14인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단턴은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의 기록을 추적하여 18세기 중엽 파리의 의사소통 체계를 분석한다.


단턴이 특히 이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파리 시민들과 관련된 일에 경찰이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비롯하여 단턴의 책에 친숙한 독자라면 그가 파리의 경찰과 관련된 자료를 얼마나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경찰력이 이 사건에 투입되었다.


게다가 이 사건의 기록은 체제를 비방하는 시와 노래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은 14인을 추적하며 6개의 금지된 시를 색출했다. 단턴도 14인을 추적하는 경찰의 발자국을 따랐다. 그는 그 시들이 어떤 관계의 그물 속에서 낭송되고 암기되고 종잇조각에 기록되어 친지들에게 전파되었는지, 또한 그 과정에서 그 시들이 어떻게 윤색되고 노랫가락이 붙여졌는지 살핀다. 한 마디로 단턴의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파리 당국은 물론이고 베르사유 당국은 왜 시를 추적하는 일에 그토록 열을 올렸을까?"(7쪽)


단턴은 14인이 어떤 개인적 연유로 연결되었는지,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어떠했는지 살핀다. 그리고 왕을 비방한다는, 다른 많은 파리 시민들도 했던 일 때문에 왜 그들이 인생의 경력에 종지부를 쳐야 할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되었는지 의문을 던진다. 다음으로 그는 이 문제를 당시 전개되던 정치적 위기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


▲<고양이 대학살>(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1749년 루이 15세는 여러 측면에서 궁지에 몰렸다. 전쟁 끝에 맺은 평화조약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세금 인상에 대한 저항, 평민 출신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에 대한 탐닉 등등이 국왕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 경멸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 국왕은 그것을 시와 노래의 형태로 듣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1749년 봄에 이미 국왕은 대신 모르파를 유배 보낸 일이 있었다. 35년간 국무를 맡았던, 정치적으로 기민했던 모르파가 퐁파두르 부인을 비방하는 시와 노래의 출처라는 혐의를 받아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14인 사건이 일어났고, 베르사유의 지시 아래 경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왜 특히 시와 노래가 그렇게 위험했을까? 역사가로서 단턴의 일관적인 경력에 <시인을 체포하라>가 새로움을 더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다. 구전은 기록에 비해 흔적이 별로 남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의 관심을 빗겨나 있었다. 그러나 단턴이 초점을 맞춘 곳은 바로 그 '구전성'(orality)으로서, 손쉽게 기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율과 노랫가락의 장치가 그 시와 노래를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문맹률이 높았던 구체제의 프랑스와 같은 사회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컸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그러한 시와 노래는 베르사유의 궁정에서부터 가난한 파리 시민의 방에 이르기까지 널리 낭송되고 불렸다. 베르사유가 시의 출처인 적도 있었다. 정치적인 적을 제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궁정의 귀족이라 하여 간과할 리는 없었다.


그러나 경찰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그 시와 노래의 저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니, 알 수가 없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진원지가 어디였던 한번 발설된 시와 노래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며 계속 적응하며 진화해 나가기 때문이었다. 손쉬운 각운에 맞춰 비방의 대상을 바꾸거나, 시에 익숙한 가락을 붙여 노래로 만들 때 그것은 손쉽게 기억되며 폭넓은 파급 효과를 지니게 되었다. 14인 사건이 보여주듯 원래의 시는 지식인들의 서식처인 라탱 지구에 국한되어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구전성과 결합되면서 더 큰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 루이 15세의 연인 퐁파두르 부인을 그린 프랑수아 부셰의 초상화(1750년 경). ⓒ출처 Wikimedia Commons

이제 결론적으로 이 시와 노래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살펴야 할 시간이다. 그것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을까? 1749년의 프랑스가 아무리 큰 정치적 위기들을 겪었다 할지라도 그 시와 노래가 1789년의 혁명에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고 상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장기적인 정치적 함의를 찾기에는 충분하다. 그 시와 노래들을 통해서 루이 15세는 나약하고 우둔한 인물로 기억되었다. 그는 자신의 실제 행적이 아니라 그 비방의 시와 노래들이 축적시켜 형성한 집단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14인 사건의 관련자들은 어느 누구도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프랑스 민중으로 하여금 왕에 대한 충성을 포기할 수도 있는 맥락을 만들어내 혁명을 위한 토양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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