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갑상샘암)이 과다검진 되고 있다는 기사가 최근 보도되었다. 병의원이 수익을 노리고 과잉검진을 하여 애꿎은 환자가 양산된다는 얘기는 충격적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과잉진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갑상선암 뿐 아니라 항생제 사용, 제왕절개, 척추수술과 치질 등 여러 분야에 논란이 있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서도 이게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처방인지, 혹시 안 써도 될 돈을 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혹시 가까이에 알고 지내는 의사가 있다 해도 내가 받은 진료에 대한 의문을 속시원히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첫째 이유는 직접 진찰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지 않고는 선뜻 환자 상태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없는 의료의 특성 때문이다. 둘째 이유로는 ‘병원도 먹고 살아야’ 하므로 어느 정도는 돈을 벌기 위한 진료를 하기 마련이라는 상식(?)에 우리 모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 상식과 함께 병의원이 행하는 진료 일반에 대한 막연한 의구심을 마음 한 자락에 깔고 있다. 이 의구심이 검사나 치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진료 후에도 딴 병원으로, 지방보다 서울로, 더 큰 시설로 먼 거리를 오가며 많은 검사를 반복하게 한다. 각 병원에서 설사 과잉진료를 전혀 하지 않더라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결과적 과잉을 빚게 된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는 수험생이 줄을 잇고 의사가 선망의 직업인 나라에서 정작 의사의 진료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는 젊은 사람만 산다면 이런 불신도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인구 고령화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현실에서는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위협에서 벗어날까? 어떻게 하면 나를 진료하는 의사와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병원이 내 몸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고 나를 위해 필요한 진료만 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갑상선암 과잉진단, 애꿎은 환자를 양산하는 과잉진료 등이 딴 나라 얘기가 되게 할 수 있을까?
공공성 확대로 걱정 없게
답은 공공성에 있다. 이미 유엔 인권선언(1948), 세계보건기구 보고서(2000)에서 건강이 국민의 권리이며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보건의료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시했고, 실제로 OECD 회원국 다수는 이를 구현하는 사회 제도를 운영 중이다. 선진국 중 예외가 미국으로, 국민 중에 아무 의료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고 의료비는 무섭도록 비싸니 적어도 의료제도에서는 본받지 말아야 할 나라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공공병원을 관리하는 등 공공의료 정책을 일부 시행하고 있으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60%에 머물고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 중 6%에 불과하여 미흡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의료의 보편적 실체가 되어버린 특성들-과잉진료에 대한 의구심, 빈약한 설명에 대한 불만족, 여러 병원을 다니는 의료쇼핑,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림 등을 해소하려면 의료 공급의 주체인 의원이나 병원이 ‘이윤을 목표로 하는 사적(私的) 업체’인 현재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 20세기 초 우리 스스로 근대적 사회를 건설할 기회를 잃고 외세 지배 및 군사 독재의 비틀린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공공적 의료제도를 만들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의사들은 전문적 의료와 동시에 이윤추구 활동을 병행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고 국민들은 신뢰할 의사와 의료기관을 갖지 못한 채 온 나라를 헤매며 병원을 다니게 되었다.
누구나 건강하고 걱정 없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 건강에 대해 내 편에서 진료하고 세심하게 상담해 줄 동네 의사,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도 과잉이 아닌 꼭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적정하게 제공할 우리 지역 종합병원, 대형병원의 몸집 불리기에 요긴한 인력이 아니라 국민의 일상 생활공간에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킬 의료인을 키우는 의과대학, 이런 방식으로 진료하는 의사・병원・대학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건강보험, 이러한 공적(公的) 의료제도 전반을 지키고 관리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다.
최근 정부가 밀어 붙이는 의료 영리화 정책은 불행히도 정 반대를 향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한 상업적 의료와 엄청난 의료비, 심각한 건강불평등을 초래할 정책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교통, 교육, 주거 등과 마찬가지로 의료에서도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확대해야 우리의 노후,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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