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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신화, 거짓된 역사, 진실된 허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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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신화, 거짓된 역사, 진실된 허구 사이

[프레시안 books] 다닐로 키슈의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

0.
가끔 너무 아름다워서 감히 어떻게 평을 쓰기 힘든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다닐로 키슈 지음, 조준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도 그런 작품이다.

1.
종교적 사고방식은 언제나 이분법으로 이루어진다.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인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따르면 그 이분법은 "성(聖)과 속(俗)"이다. (엘리아데의 유명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을, 우주 전체를 성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여, 성스러운 것을 중심으로 "우주를 재편성"하는 것이 종교적인 사고방식이다. 여기서 성스러운 "것"은 일종의 상징이기 때문에 장소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면 누가, 무엇이 성스러운지, 무엇이 속되었는지 결정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흙바닥에 나뒹굴어 있었다. 깨진 두개골, 부러진 손과 발, 갈라져 피가 흐르는 얼굴, 도살된 소의 그것처럼 바깥으로 불룩 튀어나온 그의 내장들. 땅 위에는 부러지고 흩어진 뼈와 갈기갈기 찢긴 살 무더기가 너부러져 있었다. […] "인간의 삶은 '추락'이자 지옥이며, 세계는 폭군들의 손에 놀아나지. 그리고 모든 폭군 중에서 가장 가증한 폭군은 엘로힘이다!" (<기적을 행하는 자 시몬> 중에서, 29쪽)

▲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다닐로 키슈 지음, 조준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에 수록된 <기적을 행하는 자 시몬>에서 제목대로 "기적을 행하는 자" 시몬은 기독교의 신을 믿고 영생을 추구하는 베드로에 대항하여 자신이야말로 기적을 보여주겠다며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그러나 시몬은 하늘에 닿아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시몬을 따르는 창녀 소피아는 "울부짖으며 사막으로 떠난다."

작가는 "이 전설의 또 다른 각편"을 제시하는데 (책 속의 여러 작품들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관점이나 변주된 줄거리들을 공평하게 보여준다) 여기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시몬은 "나사렛인처럼 사흘 안에 부활하겠다"고 장담하며 관에 들어가 땅에 묻힌다. 그러나 사흘 뒤에 파낸 그의 몸은 부활은커녕 완전히 썩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부패해 있다. 이 "각편"에서 소피아는 "육신은 매음굴로 되돌아갔으나 영혼은 또 다른 환영을 좇아 계속 나아갔다"고 전해진다.

인간의 세계가 고통과 괴로움과 죽음과 추악함으로 가득하다는 경험적 진실을 모두에게 깨닫게 하려는 시몬과 소피아, 그리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신의 세계와 영생을 주창하는 베드로 중에서 진정 성스러운 자는 누구인가. '인간적인 성스러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사람의 육신을 지배하는 물리의 법칙에서 결국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시몬이야말로 가장 인간답게 성스러운 자였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이처럼 실존적이고 더없이 인간적인 관점이다.

2.
엘리아데보다 조금 전 시대 사람인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종교적 사고방식에 대하여 엘리아데의 알쏭달쏭한 "성과 속"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정의를 내놓는다. 뒤르켐에 따르면 인간이 살아가는 불완전한 세계를 지배하는 더 완전하고 이상적인 고차원의 세계가 존재하여, 그 고차원적인 세계가 인간이 살아가는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이 종교적 사고방식이라 하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그 고차원적인 세계, 성스러운 세계에 맞닿으려는 열망으로 이어진다. 살아 있는 인간의 현실 속에서 완전하고 무구한 신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종교적 신비주의의 근원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이 아닌 것,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과 마주했을 때 인간은 과연 그것을 이해하거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아아, 꿈과 현실, 낮과 밤, 밤과 여명, 기억과 환영을 분별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있을까?
잠과 죽음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누굴까?
오, 주님, 현재, 과거, 미래를 누가 뚜렷이 갈라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잠자는 자들에 대한 전설> 중에서, 110쪽)

그리스-로마 시대의 분위기와 그리스도교적 신화가 뒤섞인 <잠자는 자들에 대한 전설>에서 작가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이교(異敎) 시대에 기독교를 위해 희생한 주인공들이 "망자의 잠"에 빠진 모습을 우연히 대면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도망칠 것이다. 두려움에 한껏 짓눌린 채"라고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서 꿈과 현실, 환영과 실제, 기억과 현재는 전부 뒤섞이고, 이교의 전설과 그리스도교의 교리도 차별 없이 혼합되어 버린다. 결국 신의 세계, 이상적인 관념의 세계는 "잠자는 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이며, 그 세계를 대할 때 얻는 평온함과 찬란함은 순간적인 착각에 가까우며 절대 지속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죽음과 두려움뿐이다.

3.
완전함이나 이상이나 구원을 추구하는 것,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모두 불완전하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어떤 맥락과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종교적이든 아니든, 성스럽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역사의 흐름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신화와 전설이 생겨난다. 인간이면서도 세계와 역사의 흐름을 이끌거나 바꿀 만큼 강력한 힘이나 거대한 능력을 가진 자는 영웅으로 숭배되고, 역사와 세계의 흐름을 어떻게든 예견하고 바꾸어 보려는 염원 속에서 예언과 마법과 주술이 탄생한다.

이러한 관점은 거대하고 아름다우며 여러 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세계를 구성하고 매일의 일상 속에 역사의 흐름을 만들며 살아가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왜곡된 관점이기도 하다. 군주나 영웅은 그가 지배할 백성이나 이끌고 나아갈 군중 없이 혼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이나 군중 안의 한 명인 보통 사람은 왕이나 영웅이 없어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을 받지 않는다. 그러한 평범한 개인, 보통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서 국가를 이루고 세계를 이룬다. 역사를 이끄는 것은 왕이나 영웅이 아니며 국가나 민족도 아니고 그러한 집단과 흐름을 이루는 개인이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의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사람들의 운명의 합계, 덧없는 사건들의 총체지요. 그래서 거기에는 각각의 몸짓, 각각의 생각, 각각의 창조적 영감, 각각의 시세(時勢), 각각의 삽에 가득 담겨진 진흙,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벽돌을 골라내는 각각의 노동이 세세하게 적혀 있는 것이랍니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 중에서, 70쪽)

그러므로 작품 속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에는 화자의 아버지가 겪었던 삶의 사건들이 아무런 가치판단이나 첨삭 없이 전부 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느 술 취한 병사에게서 산 고무장화에 붙어 있던 진흙, 싸구려 식당에서 먹은 상한 고기만두 때문에 했던 심한 설사" 등의 개인적 사건들은 "베오그라드 폭격, 여러 번에 걸친 독일군의 동진과 후퇴"와 같은 역사적 사건만큼 중요하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어떤 것도 되풀이되지 않으며, 처음에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그 모두가 전혀 비슷하지 않지요. 따라서 개개인은 저마다 하나의 별이고, 만물은 언제나 새로 태어나는 동시에 절대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며, 만물은 무한히 반복되는 동시에 절대로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 중에서, 63쪽)

작가 후기에 따르면 이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는 사실 종교적인 시도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미국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일명 모르몬 교)는 "생존해 있거나 고인이 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마이크로필름에 기록하여 죽은 사람까지도 소급적으로 세례를 받게 하여 전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문서고에 여러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상을 얻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에서 진행하는 계보학 프로젝트. ⓒwww.ldsgenealogy.com/

본래는 당사자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알건 모르건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특정 종교의 세례를 받게 하겠다는 다분히 강압적인 종교 교리에 근본을 둔 시도였으나 작가는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그 기록에 적힌 하나하나의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에서 백과전서에 기록된 한 명 한 명은 본래 모르몬 교의 시도처럼 특정 종교의 교리라는 큰 흐름에 일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삶을 살며 사람과 사물과 장소에 영향을 주고받고 자기 나름의 흔적을 세상에 남긴 "하나의 별"로 재해석된다.

4.
인간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현실을 넘어선 세계를 갈구하는 신비주의란 결국 인간이 한정된 경험으로 '자기 주변의 세계' 이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낯선 세계가 비치는 거울>은 괴담과 전설의 중간쯤에 속할 만한 이야기이다. 두 딸을 좋은 학교에 맡길 수 있게 되어 기뻐하는 아버지와, 기숙사 방은 마음에 들지만 이유 없이 깐깐하게 구는 노처녀와 함께 생활하게 되어 불만인 어린 딸들이 마차로 여행하다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처참하게 살해된다. 여기까지는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인 범죄 사건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소녀가 거울을 통해 이 사건을 목격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지구상에는 지금도 살아가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한 명 한 명의 숫자만큼 수많은 사건과 상황과 사정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세계 외에는 알지 못하며, 체험으로 얻은 한정된 지식과 얄팍한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그러므로 한 명의 개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 중 몇 가지 정황이나 사건들이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과 논리를 거쳐 맞아 떨어지는 것을 인간은 자신의 관점에서 멋대로 '우연'이라고 이름 짓는다.

소녀가 거울을 통해 먼 곳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은, 만약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괴하고 초자연적으로 보이겠지만, 인간이 전부 다 알지 못하는 세상의 여러 변수들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소설 속의 허구일 뿐이지만, 허구의 이야기 또한 하나의 개연성으로서의 세계를 보여준다. 문학이란 본래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있을 법한 일'을 다루므로.

5.
'있을 법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관련된 사람들이 정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영예롭도다, 조국을 위한 죽음이여>에서 작가는 주인공이 진정 고귀하고 용기 있는 영웅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영웅을 연기하면서 마음속은 두려움과 갈등으로 가득한 보통 사람이었는지 끝까지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한 사람의 내면에 대하여 그렇게 깔끔한 결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떤 목적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주인공의 "영웅적 결말"을 퍼뜨린 것은 "과격 공화파와 자코뱅 당원 등 반정부 인사들"이었고, 반대로 주인공이 "어떤 기적적인 반전을 기대하며" 끝까지 죽음을 피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은 주류 지배자들이었던 "합스부르크 왕조의 공식 사가들"이다.

역사는 승자의 손으로 쓰이고, 신화는 평민 대중의 입으로 창조된다. 작가는 몽상이 업이다. 확실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영예롭도다, 조국을 위한 죽음이여> 중에서, 146쪽)

책의 뒤표지에도 인용되어 있는 이 문구는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보기보다 굉장히 단순한 뜻을 담고 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양쪽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비겁자의 죽음 혹은 영웅의 순교를 만들어낸다. 진실은 당사자 외에는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그 인물이 죽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그 죽음과 삶에 하나로 결론지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전후 사정과 복잡한 생각들이 얽혀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않은 "몽상가"인 작가뿐이다.

그러나 몽상가가 지어낸 '있을 법한 이야기'에 실존 인물의 이름이나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와 집단의 디테일이 더해지면 이 이야기는 이제 허구를 넘어 현실에서 상당히 강력한 힘 - 이야기 하나로 역사를 날조하고 민족이나 국가를 멸망시킬 만한 힘을 가지게 된다.

<왕들의 서(書) 또는 광대들의 서(書)>는 기독교 문화권을 멸망시키려는 "적그리스도"의 "거대한 음모"를 파헤친 한 권의 책이 서구 사회를 휩쓸며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설명한다. 신비롭고 거대하며 비밀스러운 진실을 담은 것으로 여겨진 이 책은 사실 전부 거짓이지만, 그 책을 진실이라고 믿었던, 혹은 믿고 싶었던 사람들 때문에 러시아의 유대인 학살인 포그롬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까지 여러 번의 인종학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 <시온 현자들의 의정서>의 1934년 판. ⓒWikimedia Commons
작가가 후기에도 밝히는 바, 작품에 등장하는 "음모"라는 책은 《시온 현자들의 의정서》라는 현실의 위서(僞書)를 모티브로 한다. 《시온 현자들의 의정서》는 기독교 세계를 뒤엎기 위해 유대인들이 오래 전부터 꾸며온 거대하고도 은밀한 음모라는 설정인데,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흉내 낸 현학적인 내용으로 무척 그럴 듯하게 쓰여 있으며 누가 언제 어떻게 조작해서 집필했는지 정확히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적인 책이다.

작가는 본래 이 책의 역사에 대한 에세이를 쓰려고 했으나, 그 역사 자체가 너무나 불분명하고 환상적이라서 결국 소설의 형태로 이야기를 바꾸어야 했다고 고백한다. 날조된 신화, 거짓된 역사가 현실의 여러 비극적인 사건들을 거쳐 진실된 허구로 다시 태어난 것이 <왕들의 서 또는 광대들의 서>인 셈이다.

6.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문학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던 일"이라 구분하고 여기에 근거하여 역사와 문학의 우열을 논하였다.

다닐로 키슈는 이와 반대로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와 <잠자는 자들에 대한 전설> 그리고 <왕들의 서(書) 또는 광대들의 서(書)> 등에서 인간의 삶과 현실도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나타낸다. 개인의 역사도, 세계의 역사도 그것을 직접 겪지 않고 읽거나 들은 사람에게는 이야기로 인식될 뿐이다. 반대로 잘 짜인 이야기는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현실과 맞먹는 생생함과 무게를 가질 수 있다.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체험과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사이의 거리로부터 신화와 전설이 생겨난다. 있었던 일과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복잡하거나 단순한 이야기, 흥미롭거나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 현실적이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 모두 이야기일 뿐이다.

7.
무척 재미있고 독특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라는 점 외에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인 사건들과 비현실적 혹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섞여 있다는 점에서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도 있다. 혹은 역사나 신화, 전설이 주창하는 민족적 구원 등의 거대한 이상을 해체하고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개개인의 고유한 경험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측면에서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리고 역자가 해설에도 썼듯이, 작가 자신은 이러한 라벨을 무척 싫어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고유하므로 그 인간이 경험하거나 생각한 이야기들 하나하나도 모두 고유하다. 이 복잡하고 기묘하고 독특한 이야기들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이야기는 가치가 없어진다. 게다가 시각이나 청각 등 감각의 묘사에 의존하지 않고 종이 위의 글자만을 통해서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 이야기의 힘 하나만으로 아름다움과 신비함과 두려움과 기묘함 등의 온갖 감정을 빚어낸다는 측면에서도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는 설명이나 논평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읽어보아야 하는 작품이다.

덧붙여 역자는 한국에서 찾기 힘든 남슬라브 문학 전문가이므로 번역의 깊이와 해설의 충실함은 믿어도 좋다. 지속적인 사회적 변혁과 불안정을 겪었기 때문인지 동유럽과 슬라브권 작가들의 작품 중에 역사의 소용돌이와 개인의 삶의 관계에 천착하는 뛰어난 작품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도 그러한 작품의 예로서 한국 독자들에게 공감이 가면서도 색다른 이야기들을 맛보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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