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콘래드는 소설 <암흑의 핵심> 첫머리에 주인공 말로의 어릴 적 이야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런데 꼬마일 때 나는 열정적으로 지도를 보는 취미를 갖고 있었어. 몇 시간이고 남아메리카니, 아프리카니, 오스트레일리아니 하는 지역을 살펴보면서 그곳을 탐험한 모든 사람의 영광스러운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지. 그 당시만 해도 지구상에는 빈 공간이 많았다네. 나한테는 지도에 그려진 모든 지역이 유혹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특별히 유혹적인 지역을 발견할 때면 그 지역에 손가락을 대고 '커서 이곳에 가볼테야'라고 말하곤 했지."
말로는 지도를 보면서 미지의 세계를, 지도에 아직 표시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표현한다. 하지만 말로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클릭하면서 가고 싶은 곳을 찾고 있을 것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여행지 지도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고 있다. 스마트 폰에서 제공되는 정보나 지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종이로 만든 지도를 보는 것에서 웹에서 지도를 보는 방식으로의 변화는 세계 어디를 가든 길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나게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활양식의 변화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존재한다. 지도가 담고 있는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가치이다. 지도는 단순한 사실적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한다. 배리 로페즈(Barry Lopez)(2000)가 지적하고 있듯 지도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곳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단지 잠깐 쓰이다가 버려지는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토대를 밝혀준다.
제리 브로턴의 <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이창신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이하 '욕망하는 지도')는 우리가 과거의 지도에서 구글 어스와 지피에스(GPS)로 대체되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날 톨레미(Ptolemy)로 알려진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umeus)의 <지리학 입문(Geographike Hyphegesis)>(줄여서 <지리학(geography)>으로 알려짐)에서부터 구글 어스에 이르기까지 12개의 지도를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지도제작은 정확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에서 특정한 시점의 특정한 세계관을 반영"(39쪽)하면서 발전한다고 말한다.
할리(J. B. Harley)와 우드워드(D. Woodward)는 "지도는 인간세계의 사물, 개념, 조건, 과정, 사건을 공간으로 이해하게 하는 도식적 표현"(28쪽)이라 정의한다. 제리 브로턴은 이 같은 정의를 통해 지도가 필연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집단의 행동의 산물이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가령, 우리는 지도에 표현되어 있는 '방위'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역사적 상황이 있음을 안다.
"알이드리시의 <유희> 속에 수록되어 있는 지도는 그가 12세기 중반에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남쪽을 지도위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102쪽)
"이슬람교가 빠르게 확산되던 시기인 7, 8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한 공동체 대부분이 메카의 북쪽에 살았고,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는 정남쪽이 키블라"(102~103쪽)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알이드리시의 지도를 비롯해 이슬람의 세계지도 대부분이 남쪽을 지도 위쪽에 두었다는 것이다.
▲ 알이드리시의 <유희>에 실린 일흔 개의 지역지도를 모두 붙여 재구성한 세계지도. ⓒ알에이치코리아
13세기에 제작된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동쪽을 위에 두는 새로운 방위를 선택한다."(144쪽) 유대-기독교 전통은 "태양을 숭배하는 다신교 문화는 동쪽을 부활과 삶을 뜻하는 방향으로 숭배"(102쪽)하는 전통을 발전시켜 "동쪽은 궁극적으로 지상 천국이 있는 장소였다"(102쪽)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서쪽은 죽음과 연관된 방향이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마주한 방향이기에 죽음과 연관된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14세기에 작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북쪽을 지도 위에 두고 있다."(186쪽) 역사적으로 동양에서 임금은 세상의 중심이어서 계절의 변화에도 별자리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북극성(polaris)과 동일시하였고, 그 때문에 북쪽을 지도위에 두었던 것이다.
나아가 제리 브로턴은 지도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에 대한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세계지도를 이용해 지도 제작자의 상징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음"(564쪽)을 지적한다. 가령 1525년 카스티야의 선박 조종사 디오구 히베이루가 작성한 세계지도는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이 몰루카를 둘러싸고 벌이는 영유권 논쟁에서 카스티야의 우위를 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요한 블라외의 <대아틀라스>는 세계를 이해하는 특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책이 아니라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매킨더가 <역사의 지리적 중추>에 게재한 세계지도는 "축척이나 경위선이 없고, 기본적인 지명조차 없다."(514쪽) 그렇기에 그것을 지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그의 심장부 이론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는 지도제작자가 갖고 있었던 "지리학을 정치적 삶에 자리 잡게 하려는 야심"(512쪽)이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지도 가운데 하나로 기억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지도 가운데 하나인, "메르카토르의 1569년 지도는 지리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로 꼽히지만, 가장 별난 지도이기도 하다."(356쪽) 이 지도에서는 유럽은 실제보다 두 배는 넓고, 아프리카는 이 시대의 다른 지도에서보다 작게 표현되었으며, 동남아시아의 경우 모양과 크기를 과장했던 기존의 톨레미 지도를 보고 자란 사람은 식별이 불가능하였다.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유럽을 중심에 놓고 유럽 문명화의 가치를 찬양한 것이라 비판받지만, 이 지도는 루터 파를 지지하고 있었던 메르카토르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메르카토르가 최초로 시도한 세계지도, 1538년. ⓒ알에이치코리아
그렇기에 1973년 5월 아르노 페터스(Arno Peters)가 "자신의 새 지도가 지난 400년 동안 주도권을 장악한 메르카토르 도법과 그 뒤에 숨겨진 '유럽 중심적 사고'를 대신할 최고의 대안이며,"(534~535쪽) 각 나라와 대륙의 크기와 면적을 '정확하게' 유지하는 정적도법을 구현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국가에서 '평등'을 실현했다"(535~536쪽)고 주장했을 때, 그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도 제작에 정확성이나 객관성보다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가치가 투사되어 있다는 제리 브로턴의 주장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다. 저자는 카시니 가문에서 만들어진 182장의 지도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메시지는 "단일지도, 단일 언어, 그리고 풍습과 믿음과 전통을 공유하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475쪽)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카시니 가문에게 프랑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프랑스 모든 주의 동질적인 요소를 토대로 지도를 제작하는 일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지도를 제작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각각의 지역을 정확하게 측량하고, 자료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카시니 가문은 강박적으로 보일 만큼 지도 제작의 객관성과 정확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화 속 지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부가적인 소득이다. 얀 베르메르(<욕망하는 지도>에서는 '페르메이르'로 표기했다.-편집자)의 <군인과 웃는 소녀>(1657년)에 그려져 있는 지도는 빌럼 블라외가 1605년에 만든 '유럽해도'와 똑같다. 네덜란드 지도제작들이 만든 다양한 지도가 얀 베르메르의 그림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에 왜 지도가 많이 들어가 있는지도 이 책은 알려준다. 게다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년)에 등장하는 지구의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림 속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 베르메르의 <군인과 웃는 소녀>(1657년). <욕망하는 지도>에 실린 소개에 따르면, 네덜란드와 프리슬란트를 묘사한 베르켄로더의 지도(1620년)가 벽에 걸려 있다. ⓒwikipaintings
또 하나의 부가적인 소득은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하 <강리도>)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도는 조선 초(1402년)에 제작되었고, "동아시아에서 제작된 현존하는 세계지도 중 가장 오래된 지도로, 조선을 표현한 최초의 지도이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럽을 표시한 지도"(185쪽)이다.
<강리도>와 함께 제작되었던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조선을 새 하늘 아래 두는 의미를 갖는다면, "<강리도>는 조선을 새롭게 표현한 땅에 올려놓았다."(186쪽) 저자는 <강리도>가 "세계 최강의 고대 제국에 지도 제작으로 대응한 것이며, 조선이 자국의 자연 지형과 정치 지형을 동시에 인식해 만든 지도라"(218쪽) 평가한다. 나아가 <강리도>와 그 사본은 "작지만 당당했던 새 왕조가 덩치가 큰 제국의 영역 안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이었음을 알려준다.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70년). 전 세계와 유럽, 조선을 그린 동아시아 최초의 지도. ⓒ알에이치코리아
<욕망하는 지도>는 지도에 대한 일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세계지도'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특히 12개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를 토대로 세계 지도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지도에 대해 조금 더 일반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제레미 하우드의 <지구 끝까지 : 세상을 바꾼 100장의 지도>(이상일 옮김, 푸른길 펴냄)가 도움이 될 것이다. <욕망하는 지도>가 주제를 중심으로 세계지도를 설명해가면서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세계지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가 어릴 적에 지도를 보면서 미지의 세계를 가고 싶어했던 욕망은 단지 낯선 곳에 대한 동경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을까. 사람은 자신의 위치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주하고 있는 곳이 곧 나를, 우리를 대변한다. 지도 제작에 과학이 동원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한다. 하지만 세계지도는 과학이 아니다. 만드는 사람의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어디에 거주하고 있고,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따라 세계지도의 모습도 달라진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지도는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담아내고 있으며, 우리가 지도를 그린다고 한다면 어떤 색으로 우리 삶의 모습을 표현할지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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