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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산만, 분산, 산책, 그것이 산문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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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산만, 분산, 산책, 그것이 산문의 매력

[프레시안 books] 프루스트, 보들레르, 졸라 등의 '위대한 생각 시리즈'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펴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유년기의 독서 경험에 대한 절묘한 통찰로 말문을 연다. 그에 따르면, 책 읽기에 흠뻑 빠진 어린 독서가에게는 종잇장 위에 아른거리는 꿀벌이나 햇빛, 와서 같이 놀자는 친구, 집안사람이 벤치 위에 밀어두고 가는 간식, 해질녘에 예고된 저녁 식사 등 책 이외의 모든 것이 몰입하는 기쁨의 방해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나이 들어 돌이켜 보면, 이런 조바심 나는 훼방꾼들이야말로 바로 독서의 시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유쾌한 요소들로 남아,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10쪽) 된다.

▲ <독서에 관하여>(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프루스트의 통찰을 풀어내면, 어린 날 읽은 책에 쓰여 있는 것은, 기입되는 것은, 우리의 어린 날 그 자체다. 그렇다면, 어린 독자가 책을 읽을 때 그는 그것을 자기의 생으로 다시 쓰는 중이다. 쓴다기보다는 영상을 찍고 이미지를 그려 넣는다. 어린 독자는 자기가 읽는 모든 책을 자기만의 사진첩과 그림책으로 다시 만든다.

또 하나 짚어낸다면, 아무리 책에만 몰입하려 집중한들 독서는 의식의 분산을 피할 수 없다. 주의산만이야말로 쾌락의 진정한 원천이다. 이처럼 외부 세계로 자잘하게 분산하는 감각과 그것에서 유발되는 내면의 생각을 사후적으로 통합할 때 책의 내용과 의미도 비로소 생성된다. 읽은 책의 다시 쓰기와 지속력 있는 생의 기억은 몰입이 아닌 분산, 집중이 아닌 산만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도 정확해질 것이다.

散. 얽매이지 않게, 흩고, 풀다. 프루스트의 감각 분산 독서법에서 추출한 이 낱글자는 ‘위대한 생각 시리즈’ 전체를 지배한다. 감각과 사고를 흩고 푸는 데, 타인의 책에 자기의 이야기를 겹쳐 쓰는 데, 산문보다 적합한 글쓰기가 있을까. 시리즈는 현재까지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를 포함해서 에밀 졸라의 <전진하는 진실>(박명숙 옮김, 은행나무 펴냄),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연>(서동석 옮김, 은행나무 펴냄), 찰스 디킨스의 <밤 산책>(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펴냄), 샤를 보들레르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정혜용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이렇게 다섯 권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오웰, 와일드, 피츠제럴드 등 유명 작가들의 산문집이 이어질 예정이다. 은행나무의 ‘위대한 생각 시리즈’는 문학사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문체의 아름다움도 빼어나지만 시나 소설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각종 산문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는 점에서 반갑다.

▲ 보들레르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화가 콩스탕탱 기스의 대표작 중 하나, <오페라 칸막이 관람석>. ©Wikimedia Commons

‘위대한 생각’이라는 이름은 이미 장르를 규정한다. 프랑스의 문학 연구자 마리엘 마세에 따르면, 산문은, 특히 에세이는, “생각과 위대한 정신과 글쓰기의 만남으로 정의”된다(Marielle Macé, Le Temps de l'essai: Histoire d'un genre en France au XXe siècle, Paris, Belin, 2006, 6쪽). 자기만의 고유한 문체로 “생각”(idée/pensée)의 표현을 “시도”(essai)하는 산문은 파스칼에 따르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으며 가장 자주 인용되는”(8쪽) 문학 장르다. 인용의 질료로 사용된다는 것은 어떤 글이 그만큼 자기 파괴적 분절과 이산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파편적 분산과 이질적 언어들 사이의 자유로운 접합이 산문의 힘이다.

이 장르의 매력을 가장 아름답고 힘 있게 옹호한 산문가는 벤야민이다. 그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1928년의 어느 가을 저녁, 벤야민은 환각제를 흡입한 채로 마르세유 시내를 배회한다. 그리고 다음 날 의식이 돌아온 상태에서 자기의 행적을 되짚어 기록한다.

하시시 흡연으로 경험하는 행복감의 수수께끼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리아드네의 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색해보아야 한다. 실 뭉치를 굴려 푸는 단순한 행위인데도 얼마나 큰 즐거움이 있는지. 이 즐거움은 창작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흡연의 즐거움과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진입하는 동굴의 굽이돌이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실 뭉치가 풀리는 데서 오는, 희열에 찬 다른 리듬감에만 기인한 이러한 발견자의 행복을 향유한다. 우리가 풀어헤치는, 교묘하게 감긴 실 뭉치의 이 같은 믿음직스러움이야말로 모든, 적어도 산문의 형식을 한, 생산성의 행복이 아닐까. 하시시를 피울 때 우리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향유하는 산문-존재다. (Walter Benjamin, "Protokolle zu Drogenversuchen," GS VI, Frankfurt am Main, Suhrkamp, 584쪽)

벤야민이 산문에 대한 생각의 샛길로 빠지는 순간은 전날의 환몽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산문은 환몽과 치환된다. 의식이 분산되는 상태를 넘어 환몽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것을 기술하는 언어가 산문의 정수다.

散. 분산과 산문에 더해 산책. 벤야민의 논지에서 하시시 흡연과 미로 탐색은 거의 등가적이다. 벤야민에게 하시시의 쾌락은 흡연 행위 자체보다는 그것이 유발하는 외출의 충동과 배회의 환각에 있다. 따라서 하시시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측량하거나 구획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답사하면서 우리는 산문-존재로서의 역량을 시도해볼 수 있다. 어둠 속으로 전진하면서 풀어내는 실의 정묘한 휘돌이가 산문이다. 발걸음의 궤적을 수놓으면서도, 둥글게 모아 쥔 두 손바닥 사이에서 데굴데굴 풀려나가는 실 뭉치의 리듬. 산문은 그것을 번역해야 한다.
▲ <밤 산책>(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마치 산책과 산문의 내밀한 관계를 입증하는 듯, ‘위대한 생각’ 시리즈에는 산책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의 산문집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미 출간된 보들레르와 디킨즈 외에, 출간 예정작으로 포함된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소로우의 일기>가 그것이다.

산책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는 상당 부분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고, 19세기 파리의 산책객이자 산문시의 실험자 보들레르와 베를린, 파리, 마르세유, 모스크바 등 유럽 도시들을 산책하고 방랑한 벤야민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풍부하다. 디킨스의 <밤 산책>은 앞의 두 사람의 시선과 발길이 미처 닿지 않은 동시대 런던의 풍경을 펼쳐낸다는 점에서, 도시와 근대성에 대한 기존의 담론을 더욱 확장된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번역자의 친절한 해설을 참조하면, <밤 산책>은 소설가를 넘어 저널리스트로서 디킨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책에 실린 산문들은 1859~1870년에 디킨스가 “비상업적 여행자”(uncommercial traveller)라는 제목으로 쓴 신문 연재물 중에서 발췌했다. 디킨스는 아마추어 여행자이자 불면증 환자로서 노숙자들과 함께 런던의 밤거리를 배회하거나 자발적으로 빈민 구역을 탐방함으로써 대도시에서의 비참한 삶의 실태를 증언한다.

디킨스가 활동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공업이 성장하고 노동자들이 공업 도시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확연히 나뉨에 따라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두 계급은 주거지, 복장, 식생활, 취향 등을 전혀 공유하지 않아서, 문필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마치 한 영토 안에 두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고 고발할 정도였다. 디킨스는 구빈원, 부두, 매독환자 병동, 납 공장 등 노동자와 빈민의 생활 구역을 다니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록하고 독자들에게는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문제 개선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디킨스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무관한 도시 산책자를 넘어 아마추어 순찰꾼의 역할을 떠맡기를 서슴지 않는다. 비상업적(uncommercial) 여행자이되, 결코 무심한(unconcerned) 산보객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 찰스 디킨스의 연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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