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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적응 못한 '韓아줌마' 결국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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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적응 못한 '韓아줌마' 결국엔…

[살림이야기]장터‧② 프랑스 동네 시장 이야기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에 와서 집을 구할 때, 집 주인이 집의 장점에 대해 설명하며 시장 이야기를 꺼냈다. 일주일에 두 번, 집 근처에 장이 선다는 것이다. 파리의 무시무시한 물가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 아줌마'인 나는 '옳거니!' 무릎을 치며, 시장이야말로 생활비를 줄이며 알뜰살뜰 살아갈 방법일 거라고 믿었다.

가격도 비싸고 거리도 먼데 왜 시장에 갈까?

"부자들은 시장에 가고, 서민들은 마트에 간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 문장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프랑스에 있는 마트에 가면 같은 품목이라도 보통 세 가지 정도로 가격을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세에 맞게 책정된 가격대로 내가 골라 담은 만큼 돈을 내는 일반적인 상품이다. 두 번째는 '프리미엄'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 브랜드에서 생산지나 당도 등을 엄선하여 포장한 상품이나 마트에서 고급화한 기획상품 등이 이에 속한다. 마지막은 가난한 유학생이나 서민을 위한 상품으로, 품질이 별로 안 좋거나 오래되었거나 작은 크기 등의 이유로 상품성이 없는 것들을 낮은 가격에 묶어서 파는 것이다.

▲ 프랑스 보르도의 주말 동네 시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안정민

그런데 시장에서 파는 물품의 값은 일반 상품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프리미엄 상품의 가격을 가볍게 넘기도 했다. 시장 주변에 마트가 없거나 멀기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가는 시장은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인 '까르푸'와 '심플리' 앞에서 열리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시장에 간단 말인가? 여는 시간에 맞춰 가야 하며, 대체로 마트보다 더 멀리 있고 가격도 싸지 않은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체로 동네 시장 물건이 마트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새콤달콤 침이 고이는 포도, 고소한 풍미와 함께 가끔은 코를 찌르는 '발 냄새'가 진동하는 치즈(이런 종류의 치즈만 먹는 고수가 많다) 등을 먹어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시장 손님은 대부분 단골손님이고 대를 이어 나가는 가게 주인도 흔히 볼 수 있어서, 장 보러 가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판매자와 소비자를 넘어 이웃이자 친구다. 하루 이틀 얼굴 보고 말 사이가 아닌 상황에서, 손님이 오늘은 어떤 생선이 좋으냐고 물을 때 질이 안 좋아서 안 팔리는 것을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선 전문가 친구가 권해 준 물 좋은 생선,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직접 기르고 만든 거니까, 비싸도 살 수밖에

내가 계속해서 시장에 가기로 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시장에 가면 마트에서는 할 수 없는 "이거 맛있어요?", "이거 1킬로그램(kg) 주세요" 등의 대화를 하면서 프랑스어를 연습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예외'를 찾기 위해서인데, 마트의 시세를 어느 정도 알아둔 후에 그보다 싸게 파는 곳을 찾아서 일주일 동안 먹을 식량을 사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과일을 싸게 파는 한 과일 코너에 몇 주 연속 가게 되었다. 시장 초입에 있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갖추고 큰소리로 호객행위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맛 보라며 과일을 쓱쓱 잘라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 주중에는 굴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말에는 시장에서 직접 굴을 판다. 굴 가게 옆에 있는 시장 식당에서는 신선한 굴과 화이트 와인을 싼 가격에 먹을 수 있어 손님이 많다. ⓒ안정민

그렇게 몇 주를 보내고, 조금 더 찬찬히 시장을 둘러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같은 시장에서 같은 과일을 파는데, 가게마다 가격이 너무 달랐다. 더 이상한 것은 조금만 둘러봐도 품목별로 붙여 놓은 가격 차이가 훤히 보이는데, '왜 사람들이 이 과일 코너에 몰리지 않는 걸까?'였다. 이건 뭔가 시장 원리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이 사과 몇 상자를 늘어놓고 파는 곳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사과에 '금딱지'나 프리미엄 마크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유기농 인증마크인 '바이오'도 없는데, 가격은 앞집보다 훨씬 더 비쌌다. 사과상자 옆에는 사과주스가 몇 병, 그 옆에는 사과 발효주인 '시드르'가 또 몇 병 있었다.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사과로 유명한 노르망디 지역에서 직접 사과농장을 하는 사람들이고, 직접 기른 사과와 그 사과로 직접 만든 주스·발효주를 가져온 것이었다. 한우로 유명한 강원 횡성에서 평생 소를 키우며 살아온 가족들이 직접 기른 소를 잡아서 시장에 내놓았다면, 그것도 매주 같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그 소고기에 손이 가지 않겠는가?

나 역시 가격 차이를 뛰어넘는 경험을 했다. 비싸게 산 이 사과가 다른 사과에 비해 극적으로 맛있거나 먹고 나서 위장이 튼튼해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후 사과 상태를 보고, 정말 신선한 사과라는 건 확신하게 됐다.

동네 시장에는 '사람'이 있다

보르도라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서도 종종 시장에 가는데, 며칠 전 양상추 하나와 제철 과일 한 종류를 사려고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아저씨 가게에 들러서 양상추 하나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는 물건을 건네주면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프랑스에서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면, 대개 그다음 질문이 뻔하다. "남한 사람이냐, 북한 사람이냐?"이다. 한국 사람이라고 대답한 뒤 다음 질문을 기다리며 남한사람이라는 대답을 이미 입 안에 머금고 있는데, 아저씨는 의외로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분단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한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진다는 것, 가족·친척·이웃들과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서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딱히 거기에 대해 유창하게 답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정말 슬픈 역사지요"라고 짧게 대꾸했다. 아저씨는 만일 지금 프랑스가 남북 혹은 동서로 나뉜다는 걸 상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부족한 프랑스어 실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뭔지 모를 시큰한 느낌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눈 대신 바로 앞에 있던 미라벨이라는 자두과 과일에 묵묵히 눈길을 주었다. 아저씨는 내 눈길을 보고는, 갑자기 톤을 바꾸어 아주 밝은 목소리로 "이것도 내가 생산자야"라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다. "이걸 직접 기르셨다고요?"라고 물으며 봉지에 몇 개 담아 계산하고 뒤돌아 오려는데, 포도 한 송이의 작은 가지를 손으로 부러뜨려서 건네준다. 이것도 우리 집에서 나온 건데 맛있을 거라고.

양상추와 미라벨을 사고는 예상치 않게 포도를 덤으로 얻었다. 직접 기른 생산물을 내게 들려 보내는 아저씨의 긍지를 느끼고, 투박한 손에서 전해지는 내 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얻었다. 동네 시장에서 물건만 산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났다.

▲ 종이 접시에 과일 가격들이 써 있고, 커다란 노랑 간판에는 판매자가 직접 생산했다는 의미로 '생산자의 멜론'이라고 적혀 있다. ⓒ안정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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