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올 가을 개나리꽃의 만개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올 가을 개나리꽃의 만개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작은것이 아름답다] 땅의 겨울잠, 땅의 부활

나는 농사의 시작을 동지(冬至)부터라고 얘기한다. 동장군이 시작되는 동지부터 농사 시작이라고 하니 뭔 말인가 하겠다. 어떻게 보면 역설이라 하겠는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내년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말이다.

보통은 11월 하순인 소설 앞뒤로 김장을 담그고 나면 메주를 쑨다. 그러면 한 해 농사를 다 마무리하고 겨울 날 준비를 하면서 봄을 기다리니 일 년이 다 간 것이라 해도 된다. 그런데 한 해 농사 마무리는 이것 말고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땅을 위해 해야 할 일이다.

겨울은 모든 생명이 겨울잠 자는 계절이지만 땅도 겨울잠 자는 계절이다. 겨울잠을 자야 생명이 봄에 부활하듯이 땅도 부활한다. 땅이란 생명의 집이요 둥지여서 땅과 생명은 그 리듬을 같이 한다. 땅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겨울잠을 잘 자게 해주는 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땅에게 좋은 겨울잠일까?

▲ 땅도 겨울잠을 자야 비옥해진다. ⓒ연합뉴스

우선 좋지 않은 땅의 겨울잠 버릇을 들어보자. 소설 추위가 오기 전에 김장을 담그기 위해 배추를 수확하는데 푸른 겉잎은 다 버리고 노랗고 하얀 속 배추만 다듬어 가는 것도 문제인데 다듬고 남은 겉잎들을 밭에다 아무렇게나 내동이치고 간다. 어떤 사람들은 거름이 되라고 정성을 들여 배추 조각들을 이어 붙이듯 땅에 이불 덮어주고 간다. 배추는 수분이 대부분이라 햇빛에 말라버리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병해충들 겨울 잘 나라고 이불 깔아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땅에 좋을 리가 없다. 풀 나지 말라고 덮는 검은 비닐을 거두지도 않고 그냥 밭에 방치하고 가는 사람들은 더 양심이 불량하다. 이것은 배추보다 더 따뜻한 이불을 병해충들을 위해 덮어주고 가는 셈이다.

어떤 사람들은 탄저병을 비롯해 갖은 병 다 걸린 고춧대를 그냥 방치해두고 간다. 고춧대만이 아니다. 가짓대, 오이, 호박, 고구마 줄거리 같은 것을 그대로 버려두고 간다. 그리고 한 해 농사 잘했다고 자화자찬한다. 다들 땅의 겨울잠을 방해하는 버릇들이다.

땅도 겨울잠을 잔다

우선 동지에 대해 좀 더 설명하고 나서 땅의 겨울잠을 얘기해보자. 동짓날은 무조건 추울수록 좋다. 동지가 춥다는 것은 한겨울 추위가 매서울 거라는 신호다. 동지는 맹추위가 찾아오는 '소한'과 '대한'이라는 겨울 추위로 접어드는 문턱이기 때문이다. 동지는 세 종류가 있다. 바로 애동지, 중동지, 노동지가 그것이다. 애동지는 음력으로 11월 초순에 오는 것을 말하고, 중동지는 중순에, 노동지는 하순에 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음력으로 동지를 분류한 것은 달력을 양력과 음력의 통합으로 보았던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원래 애동지에는 동지 팥죽을 먹지 않는다 했다. 왜 그럴까? 동지팥죽은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해주는 보양식이다. 팥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팥죽 속의 찹쌀로 만드는 새알심도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이다.

어쨌든 겨울은 추워야 좋다. 우선 겨울이 따뜻하면 이듬해 벌레가 많이 발생한다. 겨울에 벌레 알들이 잘 버티었기 때문이다. 추석 때 벌초하다 말벌 떼에 쏘여 죽은 일들이 많이 생기면 이전 겨울이 따뜻했다는 얘기다. 겨울이 추우면 벌레알들이 많이 죽어 봄여름에 병해충들이 극성을 덜 부린다.

그런데 벌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겨울이 추워야 땅이 제대로 겨울잠을 자고 이듬해 봄에 힘차게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겨울은 무조건 춥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삼한사온' 같이 추웠다가 따뜻했다 반복해야 땅이 더 좋아진다. 땅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 거친 흙이나 돌들이 부서진다. 이것은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지는 원리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비와 눈이 와주면 더 좋다. 습기를 머금어야 거친 흙이나 돌들이 추울 때 얼어서 터져버려 고운 흙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겨울잠을 잘 자게 만들기 위해선 땅에게 겨울 추위가 잘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지저분하게 비닐이 찢긴 채 땅에 덮여 있거나 배추 다듬고 남은 겉잎, 병든 고춧대 등 농사 부산물들이 치워지지 않고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거나 하면 추위가 땅에 오롯이 스며들지도 못할뿐더러 땅에 좋지 않은 병해충들이 봄까지 살아남아 땅을 괴롭힐 가능성이 많다.

▲ 겨우내 자란 양파는 이듬해 봄 싹을 틔운다. ⓒ연합뉴스

다음으로 땅에게 좋은 겨울잠은 겨울 작물을 심어놓는 일이다. 벼 수확 뒤 심는 대표 이모작은 보리이다. 논에는 보리를 심지만, 밭에는 밀이나 마늘, 양파도 좋다. 요즘은 녹비작물(綠肥作物, 농경지에서 식물을 일정 기간 자라게 한 후 지상부를 직접 갈아 엎어 녹비로 사용하는 작물)이라 해서 호밀이나 헤어리베치를 심는 경우도 많다.

보리는 특히 땅의 환경을 좋게 해준다. 뿌리를 깊게 내려 땅속을 갈아주는 역할을 하며 보리의 기운이 땅에 좋은 영향을 준다. 호밀은 2미터(m)까지 뿌리를 깊게 내린다 하니 그 효과가 더 좋다. 마늘이나 양파는 겨울나기 위해 볏짚, 왕겨를 덮어주기 때문에 그 효과가 보리와 호밀 못지않다.

보리 이모작을 하지 못하는 중부지방에선 벼 수확 뒤 남은 볏짚을 땅에 깔아 갈아엎었다. 그리고 물을 찰랑찰랑하도록 살짝 대었다. 겨울에 물을 논에 담아 놓으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흙이 고와져서 봄에 물이 더 잘 가둬진다. 흙이 고와지면 흙 사이 틈이 메워져 물이 잘 새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을 담아 놓으면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논의 대표 해초인 둑새풀 씨를 죽인다. 세 번째는 물을 담아놓으면 논 생태계가 다양해져 논에 다양한 벌레들이 모여들고 이를 먹으려고 철새들이 모여든다. 철새들은 벌레만이 아니라 볏짚을 갈아엎은 논에 떨어진 벼 이삭 줍기를 하면서 겨울을 난다. 그리고 새들은 볏짚을 쪼아 부숴주고 똥오줌을 누면서 땅에 거름을 제공해준다.

땅을 갈아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땅을 깊게 갈아주는 것은 동지 전에 했다. 봄에는 깊게 갈지 말라 했다. 땅을 겨울 되기 전에 갈아주면 땅을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 앞에서는 겨울 추위가 땅에 오롯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겨울의 건조한 기운과 찬바람은 토양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건조한 겨울 기운은 땅을 건조하게 만들고 찬바람은 토양의 유실을 촉진한다. 이로부터 땅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모작 겨울작물을 심어 작물을 이용해 땅을 보호하는 것이고 이를 못하면 표토층을 갈아주어 갈아준 표토가 땅속을 보호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겨울 찬바람에 의한 토양 유실은 제주도가 심하다.

겨울의 건조하고 찬바람에 토양을 보호하기 위해선 비닐 같은 것을 깔아주면 좋지 않겠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겨울 찬 기운에 의한 토양의 청소 효과를 반감시켜 역효과만 부른다.

겨울 날씨를 잘 보면 땅이 보인다

지난겨울, 그러니까 2013년에서 2014년 겨울은 참으로 가물면서 따뜻했다. 눈비도 오지 않고 기온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겨울이 따뜻했으니 청소 효과가 반감된다. 게다가 가물었으니 지상 위 벌레들이 많을 것이라고 보았다. 말벌레가 극성을 부릴까 걱정을 했는데 무서운 장수말벌은 많지 않았지만 좀말벌은 꽤 많았다. 진딧물도 많아 배추에 피해를 많이 주었다.

지지난 겨울, 그러니까 2012년에서 2013년 겨울은 눈비가 적당히 왔고 날씨도 별로 춥지 않았다. 이런 겨울을 지난 이듬해 봄에는 땅속 벌레들이 많이 생긴다. 역시 그해 봄에는 땅속에 '거세미'라는 벌레가 많았다. 밤나방 애벌레인데 작물 모종을 심어놓으면 모종 모가지를 싹둑 잘라 먹는다. 농사에선 대표 해충이다. 게다가 2013년 봄에는 여름 되기 전까지 비가 계속 왔다. 보통 여름 장마 전에는 가뭄이 오는데 그러질 않았다. 보통 장마 전에는 가뭄이 와야 수확철을 맞은 보리와 밀 익는 데 좋다. 그런데 이때 비가 오면 벼 모내기하기는 좋다. 그래서 자연은 둘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했다. 막상 여름엔 큰 비가 오질 않더니 가을에도 비가 쏠쏠 왔다. 벌레가 끊이질 않더니 가을배추에 난리가 났다. 배추를 갉아 먹는 청벌레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벌레를 손으로 잡아주었다. 또 배추를 아주 좋아하는 톡톡이, 잎벌레가 배추에 구멍을 내는데 이놈들은 손으로 잡아주기도 힘들어 애타게 구경만 해야 했다.

몇 년 전엔 겨울 되기 전에 눈이 많이 내려 땅을 하얗게 뒤덮더니 겨우내 날씨가 영하에 머물러 그 눈이 녹질 않았다. 춥기는 꽤 추웠지만 벌레들이 잘 죽을 것 같지 않았다. 눈이 이불처럼 땅을 덮고 있으니 그 속에서 벌레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잘 나기도 한데다 날씨가 계속 추우면 벌레들이 땅속에서 꼭꼭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한사온 식으로 추위가 오면 따뜻할 때 속아서 벌레들이 깨어났다가 찬 기운이 뒤통수 쳐서 죽이는 원리인데 추위만 오니 그 효과가 떨어지는 것이다.

2014년 갑오년 동지는 앞에서 소개한 이른바 애동지다. 음력 11월 1일이 동지이니 애동지 중에도 상 애동지다. 이런 해는 겨울이 따뜻할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올 가을엔 윤9월이 끼어 있어 가을은 길고 여름은 짧았는데 그렇다고 겨울도 짧은 게 아니라 따뜻한 겨울이 일찍 오는 꼴이다. 그렇지만 비나 눈이 올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본다. 따뜻하다면 눈보다는 비가 더 많이 오거나 눈이 와도 금방 녹아버릴 가능성이 많다. 올 가을엔 개나리꽃이 봄에 만개한 것처럼 피어 따뜻할 징조이기도 하지만 땅속에 물이 많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그리 좋은 겨울이 올 것 같지가 않아 내심 걱정이 많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