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부터 이번엔 우리 SK와 LG비정규직 노동자 1000여 명이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기' 3차 행진에 나선다. 1, 2차에 함께했던 쌍용차, 스타케미칼, 기륭전자, 콜트콜텍, 학교교육공무직비정규직, 세종호텔, 보건복지개발원, 한솔…. 그리고 얼마 전 다시 폐업을 당한 삼성전자서비스 마산센터 사람들 등이 모두 다시 함께 나선다.
한 번 더 오체투지다. 아무런 답이 없는 국회와 청와대를 향해서, SK브로드밴드 본사와 LG유플러스 본사를 향해서 나아간다. 낮에는 오체투지요, 저녁엔 노숙 농성이다. 온몸으로 비정규직의 부당함을 뚫고 나가겠다는 결의다. 10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두고도 비정규직을 더 확대양산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국회에 온몸으로 맞서 나갈 것이다.
ⓒ프레시안(선명수)
지난해 3월30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에 SK비정규직지부가 생겼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15년 2월이 시작됐다. 그동안 지나온 시간들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솟구칠 것만 같다. 가슴 답답한 울분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아니, 더욱 강고해져야만 한다. 그만큼 사측은 견고하고 교활하다. 끝낼 것 같이 끝낼 것 같이 하면서, 그들은 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들며 자신들의 권력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말로만 듣던 거대 자본과의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이다.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SK비정규직지부는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그 하청업체인 전국의 서비스센터를 상대로 임단협 요구안을 만들어 성실하게 교섭에 임해왔다. 그러나 원청인 SK브로드밴드는 경총을 앞세워 교섭을 차일피일 미루고, 뒤에 숨어서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SK브로드밴드에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뒤늦게나마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절박한 현실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일한 만큼 벌고 싶다!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근로조건과 생활임금을 보장해 달라! 이것이 과욕이란 말인가? 이것이 진정 불합리한 요구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은 그동안 빼앗기고 짓밟혔던 노동자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노동자다운 소박한 요구일 것이다. 소박한 만큼 절박한 절규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들 SK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법에 명시된 근로기준법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심각한 노동 착취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프레시안(선명수)
이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어쩌면 고객일 것이다. SK란 대기업의 브랜드를 믿고 지금까지 인터넷과 TV, 그리고 전화를 사용했던 가입자들일 것이다. 고객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SK비정규직 노동자들이 SK와는 전혀 상관없는 하청업체의 직원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SK비정규직 노동자들은 SK의 정직원이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SK의 직원이란 자부심을 갖고 최고의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자부심은 산산조각난 지 오래됐다. 아니,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IMF 이후 우후죽순처럼 양산된 비정규직이란 이름이 갖는 태생적인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애 말이다.
고객과의 접점에서 일하는 최전방 노동자들에게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의 결여는 곧바로 고객의 피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회사에 대한 불신을 안고 고객을 마주하는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양질의 서비스를 바라겠는가. 어떻게 최고의 품질을 바라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싸움의 최종적인 피해자는 고객임이 분명하다. SK브로드밴드나 그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SK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닌 고객, 바로 일반 시민들일 것이다. 더불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우리들의 바람도, 다시 고객과 마주하고픈 우리들의 소망도, 스스로에 대한,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과 신뢰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저 신기루와 같은 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비스의 목적은 고객만족이다. 그 고객만족의 출발점은 노사관계의 정상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노와 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노와 사를 떠난 모두의 승리로 가는 길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까지 사측의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겉으로는 성실하게 노동조합과 대화에 임한다고 하고서 속으로는 극심한 노조 탄압을 일삼았다. 근로기준법 위반, 직장폐쇄, 부당해고, 교섭 해태, 대체인력투입, 온갖 회유와 협박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열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 까닭으로 2월2일부터 SK텔레콤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한겨울 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숙식을 하며 자신의 인내력을 테스트하고 있다. 극한의 고통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 것이다. 그리고 222명의 동료들이 함께 SK본사가 있는 서린빌딩에 올라가 면담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222명의 조합원들 모두 괘심죄가 적용돼서 꼬박 48시간을 유치장에서 생활하다 어렵게 풀려나왔다. 그렇게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디 그것이 SK비정규직지부만의 일이겠는가. LG유플러스 노동자들도 여의도 쌍둥이빌딩 앞에서 똑같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말이다.
오체투지….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상황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온몸을 땅에 닿게 하는 행위. 종교적인 의미가 배제된 이 말은 바로 절박함을 상징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막막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만큼 우리들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절대적인 자본과 막강한 권력이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오체투지란 말속에 담긴 깊은 뜻을 말이다. 그것은 육체적 한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한계에 대한 것이리라. 고행을 자처한 수행자의 위대한 정신 말이다. 정신이 살아있을 때 모든 육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맑고 깨끗한 정신이 언젠간 현실적 벽을 허물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이 지금 우리들의 행렬 속에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도심 한가운데서 오체투지의 행렬을 길게 이어가고 있다.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를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던지듯 엎드려서 간절한 소망을 기도하고 있다. 거룩하다는 표현이 과할까? 위대하다는 표현이 심한 것일까? 땅과 하나가 되어 엎드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 생각만 해도 한순간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데…. 나는 차마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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