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퇴비만 쓰는 유기농법을 10년쯤 해보니 감자·고구마·옥수수 같은 식량 작물은 그런대로 잘 되지만, 김치와 관계된 채소류는 아주 어렵다는 걸 알겠다. 배추·무·고추·파·마늘 등은 병충해가 정말 심한데, 특히 마늘이 그렇다. 마늘은 저장 기간 푸른곰팡이에 감염되기 쉽고, 창궐할 기회를 엿보는 온갖 바이러스가 이미 몸에 잠복하고 있으며, '고자리파리'인가 뭔가 하는 벌레의 유충이 성장기에 뿌리를 갉아먹는다.
나는 항상 제일 굵고 좋은 것을 씨마늘 용으로 골라 바람 잘 통하는 시원한 곳에 매달아뒀다가 심는데, 캐서 보면 마늘통은 커봤자 탁구공만 하고 쪽은 밥풀떼기보다 클까 말까 하다. 그래서 마늘 수확 철에는 며칠간 아내의 잔소리에 시달려야 한다. '이것도 마늘이냐!'고. 씨알이 장아찌용으로 쓰기에도 너무 작아서 두어 시간 까봤자 서너 줌밖에 안 된다고. 그렇다고 애써 지은 농산물을 그냥 버릴 수도 없으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다음부터는 부디 마늘 경작만은 건너뛰라 한다. 뿌린 것보다 거둔 것이 더 적다면 그게 농사냐면서….
하지만 마늘 재배를 접을 수는 없다. 마늘마저 없다면 겨울 밭이 너무 쓸쓸할 것이고, 이른 봄에 비닐 밑으로 돋아난 마늘 싹을 밖으로 꺼내주는 한 해 농사의 첫 행사를 놓칠 수는 없으며, 마늘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계절에는 그것밖에는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마늘은 자급을 못 해 이웃들이 주는 것으로 부족분을 메우곤 한다. 내 마늘밭이 늘 황폐하다는 것은 동네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마늘 캘 때만 되면 으레 가까이 지내는 주민들이 한 접씩 선물하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먹는 게 해마다 서너 접은 됐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무려 여덟 접이나 얻었다. 실은 강탈한 거나 다름없지만….
마늘을 가져오는 분들은 대체로 나나 아내가 집에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외출할 때가 잦았다. 6월 어느 날 아침, 면에 다녀와 보니 현관에 햇마늘 한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전하려면 누군지 알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두 집 건너에 홀로 사시는 메주 할머니(우리 집에서는 된장과 메주는 그 할머니가 손수 만든 것을 사서 먹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였다. 할머니는 마늘을 수확하면 우리 집부터 보내오신다. 점심을 먹고 밭으로 올라가면서 할머니 댁에 잠시 들렀다.
"마늘 갖다 두셨지요? 잘 먹을게요."
"난 아직 안 갖다 뒀는데…."
"그러세요? 그럼 누군지 아세요?"
"모르겠네요."
"……."
메주 할머니가 아니라면, 찬기네 할머니가 틀림없었다. 그분도 늘 이맘때가 되면 메주할머니에 이어 마늘 한 접을 들고 오신다. 찬기네는 메주 할머니 바로 뒷집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집에 인기척이 있었다.
"마늘 주셨지요? 고맙습니다."
"난 아닌데…."
"그러세요? 혹시 누가 갖다 뒀는지 아세요?"
"글쎄요…."
"……."
'그렇다면 중하 고모네? 중하네? 부녀회장댁? 혹시 새마을지도자?' 밭으로 올라가면서 집마다 들러 마늘의 출처를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서로에게 야릇한 무안함이 남았다.
'도대체? 아, 뒷집이겠네!'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침 그 집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분도 해마다 거르지 않고 마늘을 건네주곤 했다.
"마늘 두고 가셨지요? 감사합니다!"
"아닌데! 그런 적 없어요…."
"예? 그럼 누가?"
"글쎄, 난들 아우?"
지난해, 우리 동네에서 마늘을 경작한 농가는 나를 빼면 모두 여덟 집이었다. 그중 일곱 집에 들러 물어봤으나, 모두 아니라고 했다. 남은 곳은 연지네 뿐인데, 그 집은 우리 집에서 가장 멀고 아주머니가 몸이 불편해서 마늘을 들고 오기가 쉽지 않다. 어떻든 내일 아침에 밭에 가면서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현관문 앞에 뭔가 묵직한 게 놓여 있었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마늘 서너 접이 돌돌 말려 있었다. '이건 또?' 누구네 마늘인지 확인하는 일은 잠시 미루고, 우선 어제 아침 마늘의 출처부터 밝히려 서둘러 연지네 집으로 갔다.
"혹시 어제 아침에 마늘 두고 가셨어요?"
"응, 그랬지! 일전에 사준 참외가 하도 맛있어서 뭐로 보답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그 집 마늘 농사가 올해도 안 됐다고 해서."
"참외라니요?"
"아, 달포 전인가? 괴산 장에 갔다가 우리 먹으라고 한 봉지 사다 준 것 있잖우? 마침 그때 참외가 굉장히 먹고 싶었었는데, 어떻게 알고 딱 가져왔는지, 정말 잘 먹었다우!"
우리 동네는 차가 없는 집이 많다. 연지네도 그런데, 워낙 오지라서 차가 없으면 장 보러 가기가 쉽지 않다. 큰 장이 서는 괴산까지 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데, 그나마 동네까지 들어오는 노선은 하루에 세 번밖에 없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할 때가 많다.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에 또다시 서너 접이 놓여있었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들어온 게 모두 일곱 접이나 되었다. 이젠 출처가 분명했다. 결국 모든 집에서 한 접씩 보내온 거였다. 점심을 먹고 일터로 가면서 어제 낮에 돌아다닌 경로를 되밟으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먼저 메주 할머니.
"마늘 갖다 두셨지요?"
"아! 예, 간밤에. 일찍 자는 거 같아 현관에 두고 왔수. 본래 한 접 주려 했는데, 내가 한발 늦었지 뭐예요."
다음, 찬기네 할머니.
"마늘 주셨지요?"
"아, 글쎄, 올해 마늘이 잘 돼서 맛이나 보라고 조금 갖다 뒀수."
중하 고모네.
"그 집 마늘이 안 됐다고 해서 좀 나눠 먹으려고. 좋은 건 팔고 안 좋은 거 한 접 갖다 뒀어요. 그래도 먹는 덴 괜찮을 거유."
"안 좋다니요! 저희 것 중 제일 큰 거보다도 훨씬 크던데요. 저희 건 탁구공만 한데, 고모네 건 달걀만큼 되던데요!"
"그러우?"
아무리 흉작이라도 내 자신이 마늘을 재배하니 서너 접만 얻으면 한 해 먹을 양으로는 충분했다. 그러니 네댓 접이 오히려 남는 셈이었다. '이건 어떻게 하나?' 시골에 머물 때는 손님이 자주 온다. 대부분 도시에 사는 나나 아내의 친구들이지만 제자들도 나들이 삼아 종종 들른다. 그날부터 손님이 올 때마다 한 접씩 다시 선물로 줬다. 우리 동네 마늘은 한지성 밭마늘이기 때문에 품질이 좋고 가격도 일반 마늘과 비교하면 상당히 비싸다. 산지 가격이 마트에서 파는 일반 마늘보다도 높을 정도이다.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은 원산지 마늘 값이 왜 이리 비싼지 의아해한다.
요즈음이 마늘이 쑥쑥 자라는 시기다. 대체로 이맘때쯤이면 올해 마늘 수확량이 어림 짐작된다. 그런데 올해 작황도 예년과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 내 밭과 이웃집 밭은 멀리서 보아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우선 색깔부터가 다른데, 이웃집 마늘은 꼿꼿하고 전체가 파릇파릇하지만 내 마늘은 벌써 잎끝이 누렇게 시들며 돌돌 말리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발병한 탓이다. 이제 기온이 더 오르고 비라도 듬뿍 내리면 고자리파리 애벌레들이 왕성하게 뿌리를 갉아 포기 째 말려 죽이기 시작할 거다. 곰팡이에 감염되었는지 씨마늘 가운데 3분의 1은 싹조차 나지 않았는데, 그나마 돋은 것들도 줄기가 젓가락처럼 가냘프다. 이웃 것들은 엄지손가락만큼 굵은데….
올해도 내 마늘은 형편없다는 게 벌써 할머니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피하려면 뭔가 근본적인 조치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젠 마늘 농사만큼은 유기농법을 포기해야 하나?
바이러스 피해를 줄이려면 무균 씨마늘을 쓰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난번 주말농장 시절에는 그걸 구하러 경북 예천군의 어떤 산골짝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과연 그 해는 수확량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왕복 연료비와 씨마늘 값이면 한 해 먹을 양을 사고도 남을 만큼 타산이 안 맞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냥 보통 마늘을 심었다.
곰팡이는 마늘을 파종하기 전에 살균제 용액에 몇 시간 담가 두면 상당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살균제도 엄연한 농약이다. 곰팡이는 조금 귀찮더라도 감염되지 않은 마늘을 잘 골라 심으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다.
곰팡이나 바이러스보다 더 큰 타격을 주는 게 고자리파리인데, 유기농법으로는 피해를 막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일반 농가에서는 마늘을 심기 전에 예방 차원에서 토양 살충제를 충분히 뿌려준다. 그렇게 하면 물론 유기농법은 아니지만 해마다 심은 것이나 건질까 말까 할 만큼 소출이 빈약하고 그래서 본의 아닌 민폐를 반복하게 되는 걸 피하려면 나도 토양 살충 정도는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 환경 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 생활 문화 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 종이 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 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바로 가기 : <작은 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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