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참 좋은 단어다.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을 푸는 것. 반목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평화로운 상태가 좋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은 화해와 평화가 포기와 순응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도 있다. "지겹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적당히 좀 해라". 정부의 잘못을 따지는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사람들은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왜 그만두어야 하는지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정도가 '적당한 수준'인지 알 수도 없다. 화해는 좋은 것이라는 '당위'만 존재할 뿐이다. 여기 비슷한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해고 노동자들.
보건복지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2012년 12월28일 고객지원센터에서 상담 업무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42명에게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 해지 통보의 이유는 명확하다. 무기계약 전환을 막기 위한 것.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기간제법에 따라, 이들 대부분이 2013년 상반기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그러자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이들에게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3개월 초단기 계약직으로 신규 입사하라고 종용했다.
일순간 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개월 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쓰는 대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복직 투쟁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벌써 2년 반이 넘었다. 기자회견, 항의 집회, 피켓팅, 1인 시위, 간담회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합원 대부분이 싸움을 그만두었다. 몇 명은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해서 신규 채용되는 것으로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 재입사하기도 했다. 남은 노동자들에게는 고소·고발과 소송이 이어졌다. 여전히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도 있지만, 적당히 화해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화해는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고 감정을 푸는 것이 당사자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좋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싸움에는 화해가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이 싸움에서 책임은 오로지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 있기 때문이다. 상시·지속적 업무에는 정규직을 채용함이 원칙이다. 비정규직은 말 그대로 규정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직무 형태'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업무 공백이나 간헐적인 업무에만 예외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도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계속해서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정부 기관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이를 어겼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의 잘못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이 책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둘째,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해고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무기계약직 전환을 막기 위해 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사직서를 쓰게 하고, 신규 채용 형식으로 재입사하도록 하는 것. 그래서 5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언제나 '신입 대우'를 하는 나쁜 관행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심지어 중앙정부인 경찰청마저도 지난 5월 전의경의 급식을 담당하던 비정규직 영양사 37명에게 전원 근로계약 해지 통보를 하고 신규 채용에 응시할 것을 종용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을 해야 이 땅의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6월17일이 되면 이들의 싸움은 900일을 맞는다. 참 오래 싸웠다. 그 의지와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부탁하건대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꼭 복직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권리이자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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