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도시가 되지 못하는 곳, 시골은 도시-자본주의의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도시는 시골을 도시 주민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2등 계급의 집단 거주지로 만드는 동시에 공장의 노동자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이른바 '노동자들의 서식지'로 만든다. 도시가 그런 꼴을 하고 있는 한, 시골은 자본주의의 배설물을 닦아내는 무엇일 따름이다.
그런 시골에서 뭔가 일이 벌어진다. 가령 이런 식.
장면 1. 꽤 높은 산을 끼고 있는 A라는 시골 마을은 전통적으로 임업에 기반을 두고 그 삶을 영위해 온 마을이다. 과거 임업은 건축 재료와 연료 생산으로 활황을 누린 바도 있지만 철과 콘크리트, 석유와 가스 등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사양 산업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을 지탱하고 있던 산업이 그렇게 되자 주민들의 삶 역시 위태로워졌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저 남아 있을 뿐이다.
장면 2. 사양 산업이었던 임업에서 발상의 전환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무를 원료로 하는 발전소를 세우는 것. 그 발전소에서 만들어낸 전기는 마을 전체를 수용할 뿐 아니라 잉여 전력 판매로 수익까지 올리는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제재 과정에서 나오는 나무 부산물로 '펠릿'이라는 난방용 연료를 판매해 이 역시 높은 수익을 올리게끔 된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 A라는 도시는 최첨단 에너지 혁명의 현장으로 인정받게 되고 마을은 이전과 달리 활기를 되찾게 된다.
"일본어로 '마을 숲, 마을 산'을 의미하는 '里山'을 이 책 본문에서는 '산촌'으로 번역했다. '산촌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 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원가 0엔으로 경제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이다."(<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12쪽 각주)
사실 '산촌 자본주의'는 '자연 자본주의' '환경 자연주의' 등으로 읽어도 크게 그 뜻이 왜곡되지는 않을 듯 싶다. 위 인용에서 알 수 있듯, 자연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게 가장 핵심이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산촌 자본주의"와 "머니 자본주의"를 곧잘 대립적으로 붙여 쓰고 있기도 하다.
"산촌 자본주의"를 말하는 이들은 과격하지는 않다. 곧 "산촌 자본주의야말로 지금 이곳의 자본주의를 갱신하고 혹은 자본주의의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식으로 발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책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자체가 일본 공영방송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데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들의 발언은 부드럽고 또 진중하다.
"'산촌 자본주의'라는 것은 돈의 순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구축된 '머니 자본주의' 경제시스템과 함께 돈에 의존하지 않는 서브시스템도 재구축해두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돈이 부족해져도 물과 식량과 연료를 계속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시스템, 이른바 안심과 안전의 네트워크를 미리 준비해두기 위한 실천이다."
물론 그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지적한다. "산촌자본주의는 누구나 어디서나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가능성이 큰 지역들이 바로 '산촌'이라는 것이다. 일본 특유의 작고 섬세한 것에 대한 천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산촌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사면 된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중요하다"(125쪽)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말은 자칫 비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가령 "산촌자본주의를 충실히 추구해나간다면… 돈으로 움직이는 경제시스템 전체의 안정성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높아지고 있다"(126쪽)라는 식으로 이 '산촌 자본주의'의 쓰임새가 미리 규정돼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위험한 구멍을 막는 하나의 방편임을 안다.
p.s. 방편에 대한 불편함. 물론 방편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담화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생각해보라. 이 상황이 도대체 방편만으로 풀릴 수 있겠는가. 하물며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또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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